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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기 2

괴소문 (2)

경재네 집은 우리 동네에서 손꼽히는 부자다. 경재 아버지는 서울서 대학까지 마치고 유명한 은행에서 근무하다가 내려와 지금은 사업을 하신다했고, 경재네 엄마도 서울 큰 병원에서 일했었다고 들었다. 경재네 과수원 부지는 우리 동네에서 가장 넓다. 아빠와 엄마 둘이서 일하는 우리 집과는 다르게 부리는 일꾼만 스무 명이 넘었다. 동네 사람들 모두가 경재할아버지에게 굽실댔다. 동네에서 가장 큰 어르신이기도 하고.. 할 일없는 백수들에게 일거리를 던져주는 고마운 고용주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따라 걷는다. 은근한 똥내는 과수원 특유의 냄새다. 길 옆으로는 사과나무, 감나무, 포도나무, 복숭아나무, 매실나무 등등이 쫘악 늘어섰다. 나무에 올라타 사과를 따고 있던 백수삼촌들이 경재와 우리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경재가 꾸벅 인사를 했다. 우리도 경재를 따라 도미노처럼 목을 숙였다.


김태형은 뭐가 그렇게 신기한지 주위를 휘휘 둘러보면서 정신없게 굴었다. 휘둥그레진 눈에 과수원의 풍경이 가득 담긴다. 내가 빨리 오라고 재촉하니 정신을 차리고 내 옆으로 바짝 따라붙었다. 경재네 집 대문은 활짝 열려있었다. 우리는 그 대문 안으로 뛰어 들어가면서 우렁차게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어머~ 니들 왔..”


마당에서 고추를 널고 있던 경재 아줌마가 일어서다 말고 까닥 멈췄다. 아줌마의 눈이 김태형한테 고정되어 있었다. 김태형이 주춤 뒤로 물어나면서 내 가방 끈을 붙들었다. 경재랑 다른 애들은 이미 집 안으로 사라진 뒤였다. 나는 일부러 다시 크게 허리를 굽혀 인사한 다음 김태형은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김태형은 경재네 집에 들어와서도 내 가방 끈을 놓지 않았다. 사람을 경계하는 들짐승처럼 어깨를 잔뜩 옹송그리고 눈을 내리깔았다.


우리들은 커다란 거실 TV 앞에 쪼로록 앉았다. 경재가 비디오를 되감기해서 VTR에 넣는 동안 우리는 각자 가방을 내려놓았다. 제 집처럼 발을 쭉 펴고 자리 잡은 우리와는 다르게 김태형은 쇼파와 테이블 사이에 끼어 무릎을 꿇고 있었다.


“너 벌 서냐?”


내가 그렇게 묻자 화다닥 아빠 다릴 한다.


“TV에 너무 가까이 앉지 마라~ 눈 버려~”


아줌마가 과자랑 과일을 잔뜩 가져다주면서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대충 네네 대답하고 저마다 과자를 하나씩 손에 집었다. 유희왕 노래가 흘러나오자 약속이나 한 듯 다 같이 따라 불렀다. 흘끗 옆을 보니 김태형은 입도 뻥끗 안하고 과자만 처다 보고 있다. 버터링과 비슷한 모양의 외국과자는 가운데가 초콜렛으로 채워져 있어 버터링보다 훨씬 맛있다. 김태형이 꼴깍 침을 삼켰다.


“야. 왜 안 먹어?”

“..으응?”

“이거 먹어. 맛있어.”


내가 과자를 들어서 앞으로 내밀어도 도통 받아가질 않는다.


“그게 네 거냐?”


경재놈이 비꼬는 목소리로 심술을 부렸다.


“쪼잔하게!”


난 김태형의 손에 억지로 과자를 쥐어주고 유희왕에 집중했다. 한참 재밌게 보고 있는 와중에 뒤에서 누가 등을 콕콕 찔렀다. 김태형이었다. 김태형이 아까 내가 준 것과 똑같은 모양의 과자를 내밀었다. 별 생각 없이 받아먹으니 하나 더 준다. 또 준다. 계속 준다.


“야. 그만 줘. 나 그만 먹을래.”

“응..”


김태형은 그 뒤로 과자엔 손도 대지 않았다.


유희왕이 끝나고 우리는 경재네 방으로 몰려갔다. 경재 방에는 컴퓨터가 있다. 게임씨디도 엄청 많다. 일빠로 경재 방문을 연 나를 영식이가 밀쳐내고 컴퓨터 의자에 제 엉덩이를 찰싹 붙였다. 비겁한 돼지새끼! 영식이가 신나게 소닉을 하는 걸 지켜만 봤다. 내가 좀 삐진 체를 하자 영식이가 마일즈라도 하라며 2P를 권했다. 나는 냉큼 그러겠다고 했다. 마일즈는 소닉 옆을 뽈뽈뽈 따라다니는 얜데, 꼬리 프로펠러로 하늘을 날 수 있어 소닉을 공중으로 띄워주는 요긴한 다람쥐다. 하도 게임에 집중하다보니 김태형이 어쩌고 있는지는 신경을 못 썼다. 첫 판 왕을 다 깨고 나서야 번뜩 정신이 들어 뒤를 돌아봤다. 김태형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 서서 모니터를 훔쳐보고 있었다. 에잇..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야! 네가 마일즈해!”


나는 경재한테 마일즈를 넘기고 뒤로 빠져나왔다. 김태형이 서 있는 곳 주변에 철푸덕 앉으니 김태형이 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내려다본다.


“너 다리 안 아파? 왜 서 있어?”

“잘 안 보여서..”


김태형이 엉거주춤 앉았다. 과연.. 앉으니 정말로 할 게 없다.


“너도 게임 해볼래?”

“엉? 아, 아니.. 아니..”


어차피 경재랑 영식이가 자리를 비켜줄 것 같지도 않다. 뭐 할게 없나? 앗! 저거다. 경재 책장에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책이 1권부터 17권까지 촤르륵 꽂혀있는 걸 발견했다. 우리 집엔 1권이랑 3권 밖에 없다. 엄마가 안 사줘서.. 닳도록 봤던 1권을 가져와 폈다. 왠지 김태형네 집엔 1권도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이거 읽자!”


내가 만화책을 바닥에 펴놓고 엎어지자 김태형도 느릿느릿하게 바닥에 엎어졌다. 나는 한 장 한 장 천천히 책장을 넘겼다. 김태형은 내가 다 읽었어?라고 물을 때마다 응! 이라고 대답했다. 뭔가 이상했다. 나는 내용을 다 알아서 그런다고 쳐도 글자가 이렇게나 많은데 벌써 다 읽었다구?


“넘긴다?”


글자가 가장 빽빽한 페이지를 10초도 안 돼서 넘긴다고 했는데도 김태형이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확신이 들었다. 난 김태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경재랑 다른 애들이 들을 수 없게 목소리를 최대한 죽이고 속삭였다.


“너 한글 모르지?”


김태형의 얼굴이 화르륵 빨개졌다. 그럴 만도 했다. 5학년이나 되어서 한글을 모른다니.. 멍청이도 보통 멍청이가 아니다.


“그럼.. 내가 가르쳐줄게. 이리 가까이 와봐.”


난 김태형과 바짝 머리를 맞대고 다음 페이지에 있는 그림을 조용조용 설명했다.


“얘는 프로메테우스라는 애야. 원래 인간들한테는 불이 없었거든? 근데 얘가 인간한테 불을 가져다줘. 그래서 대빵신인 제우스한테 혼나. 이것 봐. 완전 화났어.”

“응응.”

“제우스가 프로메테우스한테 벌을 줬어. 이 산에 묶여가지고 까마귀한테 쪼임을 당하는 거야.”

“아..”

“봐봐. 간이 뜯겨져 나가고 있지?”


김태형이 작게 프로메테우스.. 라고 되뇌었다. 얘기가 너무 충격적이었나? 하긴 나도 처음에 읽었을 땐 무서워서 한동안 엄마아빠랑 같이 잤다. 아무한테도 말 못할 비밀이지만.


우리가 1권을 다 읽었을 무렵에 건욱이가 집에 간다고 일어섰다. 건욱이가 일어서자 다른 애들도 다 일어섰다. 나도 가방을 챙겨 나갔다. 막 신발을 갈아 신으려는데 경재 방에 실내화 주머니를 두고 온 게 생각나 도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경재는 우리가 어지럽힌 방을 치우고 있었다.


“왜 왔어?”


경재가 불퉁하게 물었다.


“나 신발주머니.”


내가 경재 발밑에 있는 신발주머니를 가리키자 경재가 그걸 집어 들어 나한테 건넸다. 신발주머니를 잡아 나가려는데 도통 신발주머니가 움직이지 않았다. 경재가 반대편에서 잡고 놓아주지 않은 탓이었다.


“야. 놔아!”

“나한테 사과해.”

“뭐어?”

“나한테 사과하라구.”

“내가 왜?”

“너 오늘 거지새끼랑만 놀았잖아. 빨리 사과해.”

“..싫어!”

“사과해!”


경재가 이제는 신발주머니를 제 쪽으로 당겼다. 힘에서 밀린 나는 경재 쪽으로 주욱 끌려갔다. 그때였다. 뒤에서 무언가 튀어나와 신발주머니를 확 낚아챘다. 무시무시한 힘에 경재와 내가 나가떨어졌다. 경재는 뒤에 있던 침대로 넘어졌고 나는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아이그 내 꼬리뼈!


“나..난..”


김태형이 내 신발주머니를 가슴에 꼬옥 안고 말을 더듬었다. 경재는 화가 나 씩씩대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으악. 한 대 치겠다. 나는 김태형의 등을 떠밀었다. 경재가 우리를 쫓아 달려왔다.


“야아!!!”

“히이이익!!!”


잘 달리던 김태형이 별안간 딱! 멈춰서는 바람에 나는 김태형의 뒤통수에 코를 박았다. 때를 놓칠세라 경재는 내 허리를 꽉 끌어안았다. 갈비뼈가 터질 만큼 꽉..!


“이노옴!!!”


으악새 할아버지.. 아니 경재네 할아버지다. 한바탕 쏟아질 꾸중을 대비해 눈을 꼭 감았다. 무슨 일인지 쩌렁쩌렁한 호통이 들리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이노옴~!!!을 끝으로 말이 없었다. 우리 셋은 일렬로 서서 할아버지 눈치를 살폈다. 할아버지는 우리를 부리부리한 눈으로 몇 초간 노려봤다.


“오셨어요 아버님? 시장하시죠? 저녁 금방 차릴게요.”


경재네 아줌마가 소쿠리를 옆에 끼고 나타났다. 할아버지는 대답하지 않고 꾀죄죄한 몰골의 김태형을 아래위로 훑었다. 괜히 내가 긴장해서 꿀꺽 침을 삼켰다.


“얘들 밥 먹여라.”


할아버지는 그 한 마디를 하고 우리를 스쳐 방에 들어가셨다. 나랑 김태형은 졸지에 경재네 식구들이랑 저녁을 먹게 되었다.


저녁은 푸짐했다. 갈비탕에 고등어구이에 온갖 나물반찬 그리고 돈가스와 계란 옷을 입힌 햄도 있었다. 할아버지가 숟가락을 들자마자 우리는 허겁지겁 저녁을 해치웠다. 햄을 입안에 잔뜩 우겨넣고 우물우물 씹고 있는데.. 경재할아버지가 김태형 쪽으로 고등어구이를 스윽 밀어주는 게 보였다. 김태형은 젓가락질도 잘 못했다. 생선뼈를 못 발라 끙끙대는 게 보여 큰 가시를 들춰내고 살을 빼내어 줬다. 김태형이 또 입을 헤에 벌리고 나를 쳐다봤다. 씹다만 밥알이 다 보여서 좀 드러웠다.


“아야!”


식탁 밑에서 경재가 나를 발로 찼다. 내가 휙 노려보니까 또 심통한 표정이다.


“나도 줘.”

“네가 먹어.”

“나도 달라구.”

“넌 젓가락질 잘하잖아.”

“지민아. 네가 태형이만 챙기니까 경재가 서운한가보다.”


아줌마가 살풋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김태형을 챙겨? 그랬나?


우리가 식사를 반쯤 마쳤을 때 경재 아버지가 귀가했다. 나는 벌떡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아저씨가 지민이 왔냐면서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난 경재 아빠가 좋다. 아저씨는 맨날 폼 나는 양복을 입고 다닌다. 무스를 발라 깔끔하게 넘긴 머리도 멋있구 은테 안경 너머의 눈은 늘 따듯하다. 비료냄새랑 땀 냄새가 나는 우리 아빠와 달리 시원한 화장품 냄새가 나는 아저씨의 손은 굳은 살 하나 없이 부드럽다. 울 아빠한텐 미안한 말이지만 아저씨가 내 아빠였음 하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여보 식사 차릴까요?”

“아냐. 먹고 왔어. 아버님, 저 다녀왔습니다.”


아저씨가 할아버지한테 인사를 하다말고 흠칫 멈췄다. 아까 아줌마도 마당에서 저랬었다. 김태형을 본 것이다. 아저씨의 눈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아범아. 애들 밥 다 먹으면 보람이네 가서 씻기고 와라.”

“예?”


보람목욕탕은 우리 동네에 유일한 대중목욕탕 이름이다. 아저씨가 반문했지만 할아버진 두 번 말하지 않았다. 시계를 보았다. 여섯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각인데 목욕탕에 간다구? 엄마가 허락지 않을 일이었다. 경재 아줌마는 조용히 일어나 거실 전화기를 들었다. 우리 엄마랑 통화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허겁지겁 남은 밥을 우겨넣고 아줌마 옆에 섰다. 아줌마를 올려다보니 아줌마가 통화를 하며 난처한 미소를 지었다.


“응.. 그래그래.. 다 씻기고 경재아빠 차 태워 보낼게. 너무 걱정하지 말구. 응응..”


웬일로 엄마가 허락을 했나보다. 아줌마가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엄마가 된대요?”

“응. 아저씨랑 목욕탕 갔다가 다 씻으면 아저씨가 데려다 줄 거야.”

“아항~”


아싸~ 경재네 아빠랑 가면 맛있는 것도 많이 사줄 거다. 울 아빠는 이 썩는다고 초코우유도 안 사준다. 아싸아싸~ 나는 신이 나서 엉덩일 씰룩 거리면서 쇼파에 가 앉았다. 경재도 밥을 다 먹었는지 내 옆에 와서 찰싹 붙어 앉았다. 경재가 리모콘으로 TV를 켰다.


“너 진짜 사과 안 해?”


이 지긋지긋한 놈.


“아, 알았어. 미안해. 미안해. 됐지?”


경재가 씨익 웃으면서 내 머리를 마구 흩트려 놓았다. 기분이 풀린 모양이다.


“야야~ 우리 냉탕 가서 수영시합하자.”

“그래그래!”


경재랑 한창 떠들고 있으니 김태형이 굼뜬 걸음으로 거실로 와서 쇼파 한켠에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경재가 또 귀찮게 굴까봐 김태형한테 가까이 오란 말은 하지 않았다. 부엌을 보니 할아버지는 아직도 식사중이셨다. 할아버지의 눈이 김태형의 뒤통수에 가 있었다. 할아버지와 경재엄마가 나누는 대화가 은근히 들렸다.


“오늘 일하러 나왔어?”

“아뇨.. 오늘 일이 있다구..”

“어제는?”

“어제도..”

“그냥 둬라.”


이름을 듣진 못했지만 김태형네 엄마를 얘기하는 것 같다. 나는 김태형을 살폈다. 어른들 얘기를 못 들었는지 억울한 표정으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다. 에그.. 불쌍하게 생겼다 증말.














“야! 박지민! 빨리 와!”


경재가 냉탕에 몸을 담그고 손짓했다. 막 비누거품을 씻어낸 나는 냉탕으로 달려가 다이빙했다. 김태형은 경재아빠 손에 붙들려 억지로 열탕에 들어갔다. 쟨 때 좀 불려야 한다. 보통 때 같으면 나도 열탕에서 고생해야겠지만 경재 아빠는 곧장 냉탕에 들어가는 경재랑 나를 보고도 별 말 하지 않았다.


“으앗! 차거차거!”


찬물에 몸을 몇 번 담금질 했다. 대야를 두 개를 포개서 가지고 놀며 첨벙첨벙 물장구를 쳤다.


“야. 내가 신기한 거 보여줄까?”

“응?”

“이리와 봐.”


경재가 냉탕의 구석진 곳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그러더니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내 눈앞에 경재의 고추가 딸랑거렸다.


“뭐해 너?”

“자세히 봐봐.”


경재가 민망스러운 요구를 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경재의 고추를 봤다. 흐걱... 검은 털이 가닥가닥 나 있다.


“나 여기에 털 났어.”

“허얼..........”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털은 어른들만 나는 건 줄 알았는데..


“나 이제 여탕 못가~!”


경재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게 자랑할 일인가?


“너는 털 안 났어?”

“...응.”

“진짜? 한 번 봐봐. 자세히 보면 났을 수도 있어.”

“안 났어.”

“내가 봐줄게.”

“싫어.”

“나도 보여줬잖아.”

“누가 보여 달래?”

“봐봐!”


경재가 막무가내로 덤볐다. 나는 놀라서 욕탕 끝으로 도망쳤다. 경재가 몸을 날리는 바람에 미끄러져 풍덩 빠졌다. 코와 입으로 꼬륵꼬륵 물이 들어왔다.


“하지마아!”


경재가 내 고추를 아프게 꼬집었다. 어찌나 힘이 센지 눈물이 찔끔 다 났다.


“함만 보자니까!”

“싫어!!”


싫다고 하니까 잡아당기기까지 한다. 너무 아파서 경재의 팔뚝을 손톱으로 벅벅 긁었다. 경재 이 황소 같은 놈은 꿈쩍도 안했다.


“앗!! 뜨거!!!”


경재가 소리를 지르면서 주저앉았다. 경재가 서있던 자리에 커다란 대야를 든 김태형이 보였다. 저걸로 뜨거운 물을 뿌렸나보다. 김태형은 도망가지 않고 물끄러미 나를 내려 봤다. 깨끗이 씻은 김태형의 얼굴이 낯설었다. 피부가 무척 뽀얗고 깨끗하다... 늘 눈꼽이 껴서 지저분했던 눈은 엄청나게 까맣고 맑다.


“싫다잖아....”


경재가 벌떡 일어나 김태형을 한 대치려했다. 나는 경재의 종아리를 붙들었고 경재는 내 위로 넘어졌다. 경재가 나한테 화를 낼 줄 알았는데 화내지 않았다. 오히려 키득대며 내 겨드랑이를 간질이고 장난을 쳤다. 경재 아저씨가 멀리서 김태형을 불렀다. 김태형은 얌전히 아저씨한테 갔다. 아저씨는 때 밀어주는 사람에게 김태형을 맡겼다.


“얘들아. 너희도 나와.”


경재아저씨는 경재도 때 미는 아저씨에게 맡겼다. 이 욕탕에 때밀이는 한 명 뿐이라 경재는 김태형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지민이는 아저씨가 밀어줘야겠네.”

“네?”


아저씨가 부드럽게 웃으면서 나를 욕탕 의자에 앉혔다. 경재를 놔두고 왜 나를 밀어준다는 건지.. 잘 이해되지 않았으나 아저씨가 하란 대로 했다. 아저씨를 마주보고 팔을 내밀었다. 아저씨가 비누를 묻힌 때밀이로 살살 때를 밀어줬다.


“너는 아직도 아기 같다.”


아저씨도 경재 거시기에 털이 난 걸 아나보다. 나도 모르게 아저씨 다리 사이로 눈이 갔다. 무성한 검은 털 사이로 살짝 검붉은 고추가 비쳤다. 흐익.. 놀라서 시선을 재빨리 위로 했다. 아저씨랑 딱 눈이 마주쳤다. 훔쳐본 걸 들켰나보다.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저씨가 소리 없이 웃었다.


“지민아. 다리 줘봐.”


아저씨가 내 다리를 들어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비누를 듬뿍 묻혀서 거품을 낸 때밀이로 살살 다리를 문질렀다. 비누 저만큼 묻히면 때 안 나오는데.. 게다가 아까 냉탕에서만 놀아서 때가 한 가닥도 밀리지 않았다.


“아저씨.. 저 온탕 갔다 올게요.”


하도 때가 나오지 않아 그렇게 말하니 아저씨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그냥 하자. 아저씨가 해줄게.”

“네에..”


살살... 아저씨는 계속 비누칠만 했다. 아저씨의 손이 사타구니로 들어왔다.


“너 아직 포경 안했구나?”

“에에...아빠가 이번 겨울에 한다고..”


아저씨가 때밀이를 낀 손 위에 내 고추를 올려놨다. 경재랑 다를 바가 없다. 부끄러워서 몸을 베베꼬니 아저씨가 또 진한 미소를 짓는다.


“경재는 작년에 했거든.”


그건 나도 알고 있다.


“지민이는 고추도 귀엽네.”


아저씨가 내 콧망울을 건드리며 그렇게 말했다. 칭찬일까?


“지민아. 일어서서 뒤로 돌아봐.”


아저씨 말대로 따랐다. 아저씨가 등부터 시작해서 엉덩이까지 샅샅이 밀어줬다. 아저씨가 한쪽 엉덩이를 세게 잡고 나머지 엉덩이를 때밀이로 박박 밀었다. 잡힌 엉덩이가 너무 아팠다.


“앗..”

“아프니?”

“네.. 살살..”

“알았다.”


알았다고 해놓고 힘이 더 세졌다. 아저씨의 엄지가 자꾸 엉덩이 사이로 들어와 똥꼬 부분을 긁어서 불쾌했다.


“아저씨이...”


대답 없는 아저씨가 무섭게 느껴졌다. 두리번두리번 경재를 찾는데 경재놈은 머리 꽁다리도 안 보였다. 주변에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갑자기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차올랐다. 왜 그런지 모를 일이었다.


“저 다 밀었어요.”


김태형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저씨가 움직임을 뚝 멈췄다. 돌아보니 김태형이 입술을 꾹 깨물고 아저씨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아저씨가 수건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가렸다. 하얀 수건 아래로 아저씨의 검붉은 고추가 흔들거렸다. 아까보다 훨씬 커져있었다.


“그래? 그럼 냉탕에 가서 놀고 있어. 지민이는 더 밀어야하거든.”


나도 모르게 김태형을 쳐다봤다. 김태형이랑 눈이 마주쳤다. 김태형이 도리질을 쳤다.


“여기 있을래요.”


김태형이 욕탕의자를 가져와서 내 옆에 앉았다. 마치 무언가를 지켜보는 사람처럼 나와 아저씨한테서 눈을 떼지 않았다. 나는 그게 다행이라고 느꼈다. 아저씨가 뒤에서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저씨는 아까와 같은 짓을 하지 않았다. 경재가 때를 다 밀고 왔다. 아저씨는 우리 머리에 샴푸를 찍찍찍 짜주고 깨끗이 헹궜는지까지 검사했다.


욕탕을 나와 물기를 닦았다. 아저씨가 초코우유를 사줬다. 내가 먹고 싶다고 하자 코코팜이랑 바나나 우유도 사서 들려줬다. 나는 두 개를 가방에 고이 챙겨 넣었다.


내가 가장 먼저 아저씨 차에서 내렸다. 차에서 내리기 직전에 가방에서 김태형의 책들을 꺼내줬다. 김태형이 책들을 자신의 허벅지 위에 올려놓았다. 갑자기 저학년 때 쓰던 낡은 가방이 떠올랐다. 101마리 달마시안이 그려진 빨간 가방 말이다.


“너 내일 아침 8시까지 우리 집으로 와! 올 수 있어?”

“응..”

“좋아. 학교 같이 가자!”

“박지민! 나는!”


경재가 뭐라뭐라하기 전에 얼른 차문을 닫았다. 차가 출발했다. 김태형이 뒤 창문으로 나를 봤다. 나는 크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김태형이 작게 손을 들어 마주 인사했다.


“다녀왔습니다아~~~”


집에 들어가니 드라마를 보고 있던 엄마가 벌떡 일어났다.


“왜 이렇게 늦게 와?”

“경재네 아저씨가 데려다 줬어.”


경재 아저씨를 방패막이로 삼았다. 엄마가 다시 쇼파에 드러누웠다. 아빠가 막 화장실에서 나오며 우리 아들 왜 이렇게 늦게 왔어?하고 물었다. 아빠 몸에서 술 냄새가 났다.


“나 목욕탕 다녀왔어!”

“그랬어?”

“아빠 경재 꼬추에 털 났다?”

“허허.. 요즘 애들은 발육도 빨라. 그치?”


아빠가 나를 옆구리에 끼고 쇼파로 갔다.


“여편네.. 좀 비켜봐.”


우리는 엄마를 밀어내고 앉았다.


“아빠 근데 나 이번 겨울에 포경해?”

“해야지.”

“그렇구나..”


엄마가 좋아하는 드라마가 끝났다. 엄마가 부엌으로 가서 감을 가지고 왔다. 엄마는 감을 깎으면서 오늘 있었던 일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나는 경재네 집에 놀러간 것부터 할아버지는 마주친 일 그리고 목욕탕에 갔던 일까지 다 말했다. 왠지 창피해서.. 경재 아저씨가 때를 밀어준 건 말하지 않았다.


“지민아. 너 태형이랑 놀지 마라.”

“왜?”

“그냥 놀지 말라면 놀지마. 오늘 경재네 집에 데리고 간 것도 너라며?”


흐걱.. 어떻게 알았지? 경재가 지네 엄마한테 말했나?


“하여튼 애가 물러 터져가지고.. 누굴 닮았나 몰라.”


엄마가 아빠 들으란 듯이 말했다. 아빠는 발끈하며 애가 날 닮아서 착해서 그렇지! 라고 대꾸했다. 엄마가 혀를 쯧쯧 찼다.


“엄마들끼리 얼마나 말이 오가는 줄 알아요? 글쎄 그 과부가 동네에 나이 지긋하신 분들 찾아다니면서 수작을 걸고 있대요..”

“무슨 수작?”

“아.. 왜.. 경재 할아버지 들먹이면서 병 고쳐준다고..”

“미친 여편네. 근데 할아버지는 진짜 나은 거래? 지민아. 할아버지 어떠셨어? 잘 걸으셔?”

“응응! 지팡이도 없었어!”

“허어..”


아빠가 놀란 표정으로 엄마를 봤다. 엄마가 아리송하단 얼굴로 인상을 찡그렸다.


“내일 어르신 서울로 병원 다녀오신다니까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게 되겠죠. 박지민. 너 얼른 가서 자.”


11시다. 나는 방으로 들어와서 내일 책가방을 챙겼다. 그리고 옷장을 뒤져 달마시안 가방을 꺼냈다. 조금 후레하지만.. 그런 대고 들고 다닐만 해보였다. 나는 내 책가방 옆에 달마시안 가방을 나란히 놓고 침대로 쩜프했다. 목욕을 하고 와서인지 금세 잠이 왔다.













“이거 너 가져.”


김태형은 내가 시킨 대로 8시에 우리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가 김태형이랑 놀지 말라고 했기 때문에 나는 김태형의 등을 쭉쭉 밀어 집 앞을 벗어났다. 그리고 달마시안 가방을 건넸다.


“나 가지라구?”

“응. 너 가져. 가방 없지? 이거 깨끗해.”


나는 가방을 뒤집어 까서 보여줬다.


“얼른 여기다가 책 넣어!”


내 호통에 김태형이 제 품에 있던 책을 우르르 쏟아 넣었다. 자크를 꼼꼼히 잠그고 가방을 들어주니 어색하게 팔을 넣어 가방을 멘다.


“고마워..”


김태형이 작게 중얼거렸다. 음.. 생각보다 더 뿌듯하군. 어제 목욕을 마쳐서인지 김태형은 아주 뽀송뽀송하고 깨끗했다. 옷은 여전히 더럽지만.. 얼굴은 뽀얗고 머리카락엔 윤기가 좔좔 흘렀다. 씻겨놓으니 사람 같잖아?


나는 김태형과 함께 등교했다. 가는 길에 경재를 만나 엄청난 눈총을 받았지만 모르는 척 했다. 사실 경재는 제멋대로인 구석이 있어서 나랑 잘 맞지 않는 놈이다. 이번 기회에 단짝을 바꿔야겠다.


수업 중에 잠깐잠깐 뒤를 돌아보면 김태형과 눈이 마주쳤다. 김태형은 눈이 마주칠 때마다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 한글도 못 읽는 놈이 교과서에 코를 박는 꼴이 우스워 킥킥 웃으면 내 웃음소리를 듣고 다시 내 쪽을 봤다.


“뭐가 그렇게 좋냐?”


옆자리 경재가 내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물었다.


“몰라도 돼.”

“야. 나 아빠가 새 싱싱카 사왔어. 우리 집에 조립하러 가자.”

“...정말?”

“응. 조립 다하면.. 싱싱카 너 줄게.”

“진짜?!”

“당연하지. 다른 애들한테는 비밀이야.”

“응응!”

“김태형한테 말하지 마.”

“응!”


헐... 이게 웬 떡이냐????? 새 싱싱카라니! 경재아빠가 사온 거면 엄청 좋은 걸 거다. 아싸아~!


새로운 싱싱카 생각에 두근거려 남은 수업에 하나도 집중을 못했다. 경재가 수업 내내 거는 짓궂은 장난에도 헤실헤실 웃어줬다. 어느새 김태형은 뒷전이 되었다.


오늘 마지막 교시는 학급 회의이다. 우리는 한 달에 한 번 청소구역을 바꾸는데 오늘이 바로 그 날이었다. 여자애들은 각각 1분단, 2분단, 3분단 교실 앞뒤 청소를 맡았다. 선생님이 우유당번을 정할 땐 남자애들 모두가 손을 들어 가위바위보를 해야만 했다. 나는 무거운 우유박스 나르는 게 싫다. 하지만 우유당번은 학급에서 가장 힘 센 남자애가 하는 거라... 체면으로나마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경재랑 영식이가 우유당번으로 낙점됐다. 다른 아이들은 교무실 청소랑 복도청소를 맡았다. 남은 건 하나밖에 없었다.


“토끼사 당번은 누가할래?”


토끼사 당번은 누구나 다 꺼리는 일이었다. 여자애들은 냄새가 난다고 싫어했고, 남자애들이 맡기엔... 토끼가 너무 귀여웠다. 남자애들은 귀여운 걸 좋아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물론 나도.. 나는 토끼 똥내가 참을만하고 토끼가 너무너무 좋았지만 한 번도 손을 들지 않았다.


아무도 하겠다고 나서지 않자 선생님이 남은 아이들이 누구누구 있는지 봤다. 김태형 딱 하나 남아있었다.


“태형이가 할래?”


김태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선생님!”


뭔가 용기가 생겼다. 나는 손을 번쩍 들었다.


“응. 지민아.”

“저 복도 청소인데요! 토끼사 당번으로 바꿔주시면 안 될까요?”

“그럴래?”

“네네!”


김태형이 놀란 토끼 눈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앗! 그렇다. 쟤는 토끼를 닮았다. 그래서 자꾸 신경이 쓰이는 거였다. 아아...


“그럼 태형이랑 지민이가 토끼사 당번.”


경재가 옆자리에서 내 이름을 나직하게 불렀지만 무시했다. 대신에 뒤를 돌아 김태형을 보고 손가락 따봉을 들었다. 김태형이 어색하게 따봉을 따라했다. 나도 모르게 크게 웃었고 선생님한테 꾸지람을 들었다.


수업이 끝나고 김태형이랑 토끼사로 갔다. 토끼 사육장에는 세 마리의 토끼가 있다. 하나는 완전 하얀색, 하나는 완전 검은색, 하나는 누우런 색이다. 나는 셋 다 좋았다. 우리가 할 일은 토끼들이 하루 종일 싼 똥을 거둬내고 토끼풀을 주는 일이었다. 사육장 아래에 달린 똥판을 당기자... 수많은 토끼 똥들이 나타났다. 으엑.. 김태형이 벌리고 있는 검은 봉다리에 토끼 똥을 털어 넣었다. 똥판을 다시 끼워놓고 옆에 있는 비료포대에서 토끼풀을 가져다가 김태형 손에 쥐어줬다.


“이렇게 대어 주면 코를 벌름벌름 거리면서 먹는다? 봐봐.”

“우와아...”

“귀엽지?”


나도 모르게 귀엽다는 말을 해버렸다! 흠칫.. 김태형의 눈치를 보는데 김태형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얘는 내가 귀여운 걸 좋아해도 놀리지 않는구나.. 다행이다.


“얘네 이름도 있어!”

“이름?”

“하얀 애가 하나구 누런 애가 둘이야. 그리고 쪼오기 있는 까만 애 있지? 쟤가 삼이~!”

“하나.. 둘.. 삼?”

“응! 셋이라구 하면 이상하잖아. 오오! 삼이 왔다.”


검은 토끼 삼이가 김태형이 들고 있는 풀을 와앙 물어서 열심히 씹어 먹었다. 김태형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처음이었다. 김태형 웃는 얼굴을 본 건.. 놀라서 멍청히 있다가 내 손에 들려있던 풀을 다 뜯어먹은 하나한테 손가락을 물렸다.


“아야..”


피가 났다. 김태형이 화들짝 놀라 내 손가락을 붙들었다. 갑자기... 얘가 아픈 사람들을 고쳐주고 다닌 다는 게 생각났다.


“이런 것도 고칠 수 있어?”


김태형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왠지.. 고칠 수 있다는 대답 같았다. 나는 잡힌 손을 빼려고 당겼다. 김태형은 꽉 잡고 놔주지 않았다.


“아파? 고쳐줄까..?”

“응?”

“대신 나한테 뭘 줘야해..”

“..됐어.”


순간 오늘 아침에 가방 줬잖아! 라고 할 뻔했다. 쳇.. 친구 고쳐주는 데도 뭘 받아먹는 놈이구나. 나는 잡힌 손을 빼내고 등을 돌려 비료포대를 정리했다. 뒤에서 김태형이 내 이름을 불렀다.


“지민아.”


김태형 입에서 내 이름이 나온 게 어색했다. 뒤를 돌아보니 김태형이 성큼 다가왔다.


“경재네 집에 놀러가지마.”


아까 경재랑 한 대화를 들은 걸까? 뒷자리 애들도 안 들릴 정도로 속삭였는데.. 어떻게 알고 있지?


“경재가.. 싱싱카 준댔어.”

“..그래도 가지마.”


김태형은 이유도 안 말하고 억지를 부렸다. 흠..


“그럼 대신 너네 집 가도 돼?”


김태형이 화들짝 놀랐다.


“가도 돼?”

“..으응..”

“오늘 간다?”

“..응..”


김태형이 망설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mysteryhomo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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