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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기 3

괴소문 (3)

김태형이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끙끙댔다. 내가 자기 집에 방문하는 일이 어지간히 신경이 쓰이나보다. 내 얼굴 한 번 보고, 땅 한 번 보고, 하늘 한 번 보고 다시 내 얼굴. 김태형의 산만한 움직임에 머리가 팽팽 돌았다.


“야!”

“으응?”

“왜 그렇게 부산스러워? 너 부산사람이야?!”


엄마가 요란하게 호들갑을 떨 때마다 아빠가 하는 소릴 김태형에게 똑같이 써먹었다. 이거 웃긴 건데.. 김태형은 조금도 웃질 않고 고개를 갸웃했다. 아! 민망하구나!


“못 알아들었음 됐어.”

“나 부산에서 태어났는데.. 어떻게 알았어?”

“정말?”

“여기오기 전까지 계속 부산 살았어.”


어쩐지 말투가 좀 이상하드라.


“그럼 바다 많이 봤겠다! 좋겠다!”

“바다는 무서워.”


김태형이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면서 웅얼거렸다.


“에게~ 겁쟁이네.”

“..태풍이 오는 날에는 바다가 우르르 쾅쾅 화를 내. 꼭 날 잡아먹을 것 같아.”


태풍은 나도 무섭다. 지난여름.. 태풍 때문에 산사태가 나서 산 아래에 집 짓고 살던 노총각 영수 아저씨가 봉변을 당할 뻔했었다. 동네 애들이랑 우르르 몰려가 구경했던 기억이 난다. 컨테이너를 개조한 아저씨의 집 위로 덩치 큰 고목들이 쓰러져 있고, 산은 시뻘건 흙의 속살을 드러낸 채로 허리가 뎅겅 잘려있었다. 나는.. 나는 어쩐지 그 광경이 좀 무서워서..


“바다는 너 신경도 안 써.”

“정말인데.. 가끔 엄청 큰 고래도 나타나.”


김태형은 드물게 말을 더듬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다. 표정도 무지하게 진지했다. 근데 부산 앞바다에 고래가 많던가?


“갈매기 떼들이 담장 위에 쪼로록 앉아서 쳐다볼 때도 있었어.”

“그건 쫌 무섭겠다..”


김태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갑자기 독수리에게 간이 쪼아 먹히던 프로메테우스가 생각났다.


“여긴 갈매기 없으니 걱정 마.”


김태형의 등을 격려하듯이 툭툭 쳐주니 또 눈을 동그랗게 뜬다. 암만 생각해봐도 얜 평생을 왕따로 살아왔음이 틀림없다. 불쌍한 것. 김태형의 말라비틀어진 불쏘시개 같은 목덜미에 팔을 둘러 그대로 옆구리에 끼었다. 김태형이 크게 휘청하면서 끌려왔다.


“헤드락이다! 어떠냐?”

“..헤드락?”


이런 바보! 유희왕에 이어 WWE도 모르나 보다. 아는 게 뭐냐 넌?


“잘 배워 둬!”


나는 한동안 김태형의 머리를 옆구리에 끼고 이동했다. 김태형은 반항 한 번하지 않았다. 경재나 딴 애들은 내가 헤드락을 걸면 곧장 암바로 응징해서 몹시 짜증이 나곤 했는데 말이다. 기분이 좋아져서 왼손으로 김태형의 머리를 마구 헤집었다. 으와아앗- 하는 이상한 소릴 낸 김태형이 자세 그대로 머리통만 돌려서 나를 올려다봤다. 숨이 막히나 보다. 얼굴이 엄청 빨갛다. 얼른 김태형을 놓아주었다.


“자! 너두 해봐!”

“뭐, 뭘?”

“방금 내가 한 거! 헤드락!”


얜 도무지 말을 한 번에 알아듣는 법이 없다. 눈알을 또록또록 굴리면서 허공에 손을 올렸다 내렸다 한다. 그 꼴을 보고 있자니 답답해져 김태형의 왼팔을 들어 내 어깨위에 걸쳐놨다. 멍석을 깔아주는데도 김태형의 팔은 뻣뻣하게 굳어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확 감아서 아래로 당겨 보라구.”


나의 채근에 김태형이 움찔하며 손을 움직였다.


“아!”


김태형은 헤드락 대신에 그냥 날 당겨서 끌어안았다. 역시 한 번 보여주고 따라 하기에는 난이도가 높았나보다. 나는 나보다도 작은 김태형에게 엉덩이를 뒤로 쭉 내밀고 안긴 꼴이 되었다. 전에도 느낀 거지만 김태형은 팔 힘이 은근 세다. ..아니, 은근이 아니다. 우리 학년에서 팔씨름 1등인 민식이와 비교해도 김태형이 더 센 것 같다. 참 놀라운 일이다. 요 작은 몸 어디에서 이런 힘이 솟는 걸까?


“야.. 이 바보야. 옆구리에 끼라니까?”


김태형은 영 자세를 못 잡고 엉거주춤했다.


“에잇~ 됐어. 숨 막혀. 놔줘.”


내가 놔달란 말을 하자마자 김태형은 불에 덴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나를 털어냈다. 덕분에 난 뒤로 넘어질 뻔했다.


“아! 쫌!”

“미안.”


난 김태형의 주눅 든 모습이 귀여워서 일부러 화난 척 쿵쾅대며 걸었다. 김태형은 주인을 잘 따르는 강아지처럼 쭐래쭐래 내 뒤꽁무니를 따라왔다. 꼬봉을 달고 다니는 것은 이런 기분이구나! 맨날 경재놈한테 똘마니 취급만 받아와서 대장이 된다는 게 이렇게 짜릿한 건지 처음 알았다. 김태형은 내가 걸음을 빨리하면 빨리하는 대로, 느리게 하면 느리게 하는 대로 내 뒤에 바짝 붙었다. 어미오리를 따라다니는 새끼오리처럼 말이다. 그러다가 내가 딱! 걸음을 멈췄을 때, 김태형은 내 어깨에 콧등을 콩 부딪쳤다. 뒤를 돌아보니 김태형이 자기 콧대를 조물거리고 있었다.


“여기서 부턴 네가 앞장 서! 너네 집이잖아.”


김태형은 쭈볏쭈볏대며 내 눈치를 보다가 기어코 내 입에서 빨리빨리란 소리가 나오게 만들었다. 김태형이 내키지 않는 듯 발을 질질 끌며 걸었다. 나는 김태형의 느린 걸음이 답답해서 등을 팡팡 밀며 이쪽 맞아? 이쪽 맞아? 계속 김태형을 재촉했다.


우리는 큰 길을 벗어나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한참이나 걸었다. 김태형네 집은 비닐하우스 촌을 지나서도 보이지 않았다. 포장도로가 끝이 나고 축축한 흙길이 이어졌다. 어느새 운동화 밑창은 엉망이 되었다. 난 흘긋 김태형의 신발을 보았다. 진흙이 말라비틀어진 신발에 새로운 얼룩이 생기고 있었다. 으.. 이래서 김태형 신발이 저 모양 이었던 거구나.


“여긴데..”


김태형네 집은 개축을 하지 않은 시골집이었다. 말이 시골집이지 겉보기는 초가삼간이랑 다를 바가 없었다. 마을사람들 입에 ‘도랑 옆 폐가’로 오르내리는 게 이해가 갔다. 나는 김태형이 창피해 할까봐 놀란 맘을 숨기고 일부러 더 태연하게 행동했다.


“잠깐만.”


막 마당으로 들어서려는데 김태형이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몇 초간 지그시 집을 응시했다. 김태형의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나는 하마터면 귀신이라도 본 거냐고 물을 뻔 했다.


“왜, 왜 그러는데?”

“엄마가 있어.”

“아 깜짝아.”


뭐야! 괜히 무게 잡고 그래!


되게 이른 시간인데 집에 계시구나. 갑자기 어제 경재 할아버지와 경재 아줌마의 대화가 떠올랐다. 「오늘 일하러 나왔어?」, 「아뇨.. 오늘 일이 있다구..」, 「어제는?」, 「어제도..」, 「그냥 둬라.」. 아줌마는 일이 하기 싫나보다. 나도 공부가하기 싫으니 뭐라 할 처지는 못 된다.


“담에 놀자.”

“엉?”

“담에 놀자. 오늘은 엄마있으니까..”


김태형이 단호하게 축객령을 내렸다. 엄마가 있으니까 못 논다니? 어이가 없네!


“인사드리면 되지.”


내가 마당으로 들어가려하니까 김태형이 앞을 딱 막아섰다. 김태형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안 돼. 다음에 놀자.”

“왜!”


난 이제 억울하기까지 했다. 내가 여길 오려고 얼마나 걸었는데! 싱싱카도 포기하고 온 건데! 네가 경재네 집 가지 말라며!


“왜 안 되는 읍-”


김태형이 제 손으로 내 입을 막았다. 입술을 꾸욱 누르는 손바닥이 다부졌다. 김태형이 손가락을 자기 입술에 대고 쉿 했다. 늘 주눅 들어 있던 눈빛은 전에 없이 부리부리했다. 나는 그런 김태형이 낯설어서 조금 무서웠다.


“손님도 있어.”


김태형은..


“그러니까.. 다음에 놀자. 미안해..”


김태형은 어떻게 보지도 않고 집에 누가 왔는지 알 수 있는 걸까?
















먼 길을 걸어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김태형 괘씸한 것은 날 데려다 주지도 않고 제 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내가 내일 아는 척 하나 봐라!


“학교 다녀왔습니다..”


신발장에 모르는 신발들이 한 가득이다. 동네 아줌마들이 또 잔뜩 놀러왔구나. 기운 없는 목소리로 인사했더니 내가 온 줄도 모르나보다. 운동화 끈을 푸는 내내 아줌마들의 수다가 끊이질 않는다.


“어르신 그거 고치려고 원숭이 골까지 고아 먹고 몇 년 동안 쑥뜸 뜨고 그랬잖아.”


민식이네 아줌마가 경재 할아버지 얘길 꺼냈다. 또 저 얘기다. 요즘 울 동네에서 저 얘기 안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다.


“퇴행성관절염이 완치가 가능한가? 늙어서 생긴 병인데.”

“완치가 아니라.. 엑스레이를 찍어보니까 아주 무릎이 새 거가 되어있더래! 예전 엑스레이보면 연골이 다 닳아서 부서진 파편까지 다 보였는데 어제 찍은 엑스레이는 무슨 한창 때 청년 무릎마냥 멀쩡하더라는 거야.”

“어머어머. 나 소름돋은 것 좀 봐봐.”


정원이네 엄마는 호들갑을 떨면서 자신의 팔뚝을 내어보였다.


“병원에서도 이건 있을 수가 없는 일이라고 기적이라 그랬대.”

“진짜 뭐 있는 거 아니야?”

“있긴 뭐가.”

“왜 그럴 수도 있잖아. 무당이라거나..”

“태형이 무당 아닌데!”


아줌마들이 깜짝 놀라 어머나 외치며 나를 쳐다봤다. 민식이 아줌마는 들고 있던 사과까지 떨어뜨렸다.


“태형이 무당 아니에요.”

“….”, “….”, “….”


아줌마들이 말없이 빤히 쳐다보는 게 좀 무서워 다리를 베베꼬면서 가방끈을 만지작거렸다.


“태형이 제 친군데..”

“박지민.”


엄마가 무섭게 날 불렀다. 내가 뭔가 큰 잘못을 했을 때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손 씻고 들어가서 숙제해. 어른들 얘기에 껴들지 말고.”


오늘 왜 이렇게 서러운 일이 많지? 난 괜히 눈물이 나오려고 하는 걸 꾹 참고 아줌마들한테 꾸벅 인사를 한 다음에 방으로 들어갔다. 문 밖에서 아줌마들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고 보니까 지민이가 걔 많이 챙긴다며?”

“저번에 경재네 집에 애들 놀러갈 때도 지민이가 데리고 갔다던데..”

“..아니야. 쟤가 지 아빠 닮아 정에 약해서 그래. 불쌍한 거 절대 못 봐. 길가다가 똥개만 봐도 집에 데려와서 키우자고 난리치는 앤데 오죽하겠어? 그냥 불쌍해서, 불쌍해서 그런-”

“그래도 따끔하게 혼내야지. 같이 놀다가 이상한 소문나면 어째.”

“….”

“그래 지민엄마. 난 애들이랑 걔랑 어울린다고 생각만 해도 소름끼친다. 지민이 엄하게 타일러서 애들 노는데 걔 못 데리고 오게 해.”

“그래야지..”

“지민이가 좀 애기 같고 늦돼서 걱정이 많겠어.”

“외동아들이라 그런가?”


엄마가 대답대신 민망한 듯이 웃었다.


“우리 아드님은 벌써 수염이 나기 시작해가지고 징그러워 미치겠어.”

“민식이도! 이제 사춘기 오려나봐.”

“벌써?”

“벌써라니 요즘 애들 발육이 얼마나 빠른데. 금방 다 커. 우리 때랑 달라. 정원이는 생리 아직 이야?”

“지 언니는 이맘때쯤 시작했는데 뭐.. 곧 하겠지.”


아줌마들은 그 후로도 한참을 떠들었지만 엄마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잘못을 한 게 없음에도 잘못한 것 같은 기분에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다.












“엄마! 나 한자공책 사야 돼! 천원만!”


운동화에 발을 구겨 넣으면서 엄마를 불렀다. 막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려던 엄마가 안방에 들러 천원을 가지고 나왔다.


“박지민.”


엄마가 천원을 주려다 말고 낮은 목소리로 날 불렀다. 다음에 나올 말은 안 봐도 뻔하다.


“너 걔랑 놀기만 해봐. 데리고 다닌단 소문 들리면 엄마 진짜 가만 안 있어.”

“빨리 천원 줘!”

“대답 안 해?”

“아! 몰라몰라! 늦었어!”

“얘가 정말 끝까지!”

“아직도 그 소리야? 애들 노는 데 어른이 참견을 왜 해. 가만히 내비 둬!”


아빠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면서 한 소리했다. 그 사이에 난 엄마 손에서 천원을 쏙 뺐다.


“당신은 모르면 가만있어요!”

“내가 모르긴 뭘 몰라. 여편네들 입방아 신경 쓰지 말고 좀 놔둬. 애 좀.”

“사람들이 얘한테 뭐라는 줄 알아요? 당신 아들이 늦돼서 무당새끼 챙기는 거래! 덜떨어졌대!”

“이 정신 나간 여편네들이 남의 자식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지 새끼들이나 신경쓰라해!”


아빠 잘한다. 아빠 이겨라! 허겁지겁 신발 끈을 다 묶고 현관문을 열었다.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박지민 너 걔랑 놀지마! 알았지!”


쾅!


어휴. 손님 왔다고 날 집에서 쫓아낸 배신자 때문에 힘들어죽겠다. 난 헐거운 운동화의 앞코를 바닥에 땅땅 찍어 고쳐 신었다. 그리고 몇 걸음을 옮기자 큰 길로 나가는 골목 끝에서 날 기다리고 있는 김태형을 발견했다. 와씨. 울 집에서 얼마 되지도 않은 거리인데 혹시 엄마가 놀지 말라며 소리 지르는 것을 들은 건 아닐까? 심장이 쿵쾅거렸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는 걸 느꼈는지 김태형이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어제 날 내쫓은 것도 있고 얘 때문에 엄마한테 혼난 것 같아서 한번 쫙 째려보고 무시하려했다.


“야! 너 피나!”


근데 김태형 입술에 큰 피딱지가 져 있었다.


“입술 물어뜯었어? 아~ 해봐 아~”


자세히 보려고 입을 벌려 보라했다. 김태형은 죄다 터진 입술을 주물럭대는데도 아프지 않은지 멍청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살짝 입을 벌렸다. 아니나 다를까 입 안에도 핏물이 가득하다.


“헉. 양호실가자! 얼른!”


울 집에 데리고 가서 약을 발라주면 좋겠지만 그랬다간 아예 집에서 쫓겨날 것이다. 나는 김태형의 손목을 붙들고 학교로 뛰었다.


“야 넌 다른 사람은 고치면서 너는 다 깨지구 다니냐!”


열심히 뛴 덕에 학교에 일찍 도착했다. 턱까지 차오른 숨을 진정시키고 1층 양호실로 곧장 향했다. 양호선생님이 없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한 것과 달리 양호선생님은 커피를 마시고 계셨다. 양호선생님은 김태형을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으셨다. 울 동네 어른들은 김태형만 보면 깜짝깜짝 놀란다. 얘가 뭐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러는지 모르겠다. 병을 고쳐줬으면 감사하거나, 고맙다거나 그런 말을 해야 하는 거 아닌가? 내 머리로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다.


“쌤. 연고 발라주세요. 얘 다쳤어요!”


나는 김태형을 양호선생 앞에 밀어놓고 양호실 기록부에 김태형의 이름을 대신 적어줬다. 앗, 그러고 보니까 김태형 자기 이름 쓸 줄은 알까? 모른다면 오늘 가르쳐줘야겠다.


양호선생님이 김태형의 입에 살살 연고를 바르고 대일밴드를 붙여줬다.


“입 안에도 다쳤는데! 입 안도 봐주세요!”


양호선생님은 다 헐은 김태형의 입안을 거즈로 닦아내고 약을 발라주셨다. 입 안 상처는 빨리 나으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셨다. 다행이다. 그치? 김태형의 옆구리를 쿡 찌르면서 물으니 김태형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형아.”


양호선생님이 핏물이 베인 거즈를 휴지통에 버리면서 김태형을 불렀다.


“왜 다쳤니?”

“….”


김태형은 오래도록 대답을 하지 않았다.


“넘어졌니?”

“….”

“아니면..”


양호선생님의 얼굴이 저리 심각해진 걸 보면 김태형이 혼자 입술을 뜯어 난 상처가 아닌가보다.


“넘어졌어요.”


김태형의 대답에 양호선생님이 미간을 찌푸렸다.


“뛰다가 넘어졌어요.”


김태형이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양호선생님은 무슨 말을 하려는 듯이 입술을 움찔대다가 우리보고 가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김태형은 그 말을 듣자마자 내 손을 잡아채서 양호실을 빠져나왔다. 꼭 뭐에 쫓기는 사람처럼 급하게 말이다. 그 바람에 양호선생님께 감사하단 인사도 못했다.


교실에는 등교를 마친 경재 무리가 있었다. 경재는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서는 나랑 김태형을 가재미눈으로 흘겨봤다. 애써 무시하고 자리로 가는 우리 앞을 경재가 막아섰다.


“야. 너 영진이 할머님도 고쳐줬지?”


민식이가 시비를 걸었다. 영진이는 4학년 남자앤데 민식이랑 같은 태권도장에 다닌다. 영진이네 할머님은 울 동네 초입에 있는 부일수퍼 사장이다. 올해 초에 위암인가 뭔가 하는 병에 걸려 시내병원에 입원하셔서 몇 달 동안 얼굴을 뵐 수가 없었다. 되게 큰 병이라고.. 쉽게 나을 수 없을 거라고 들었는데..


“너네 엄마가 영진이네 아빠한테 천만 원 달라했다며.”


처, 천만 원? 헉. 놀라서 김태형을 쳐다봤다. 김태형은 우울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어느 새 반 아이들이 우릴 빙 둘러쌌다.


“너 무당이야?”


부반장 정민지가 김태형한테 물었다. 그 놈의 무당소리! 사람 고치면 다 무당인가!? 울 외할머니 아플 때 엄마가 전국에 용한 무당은 다 찾아 갔는데 못 고치드라!


“야야! 비켜!”


갑자기 짜증이 확 올라왔다. 우리를 가로막은 경재 무리를 손으로 쳐내고 김태형을 자리에 앉혔다.


“애들한테 대답해 주지 마.”


내 명령에 김태형이 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태형 옆에 있어주고 싶었지만 김태형과 나는 짝도 아니고 곧 담임선생님이 들어올 시간이라 어쩔 수 없이 나도 내 자리로 갔다. 계속 김태형이 신경 쓰여 가방을 놓고도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김태형은 내 등만 바라보기로 작정을 했는지 뒤돌아 볼 때마다 눈이 마주쳤다.


김태형 때문에 온종일 가시방석 같았다. 애들은 쉬는 시간만 되면 김태형을 찾아가서 몰아붙였다. 종이 치면 김태형의 자리로 달려가 애들이 못 오게 막았다. 경재는 그게 맘에 안 들었는지 씩씩대면서 내 이름을 불렀지만 무시했다. 내가 니 꼬붕이던 시절은 다 갔다. 임마! 김태형은 애들이 자기에게 무당이냐고 묻거나 곤란한 질문을 할 때마다 주먹을 꽉 쥐었다. 하얗게 질린 손등이 바들바들 떨리기도 했다. 김태형은 나밖에 못보는 사람처럼 아이들에게 눈길하나 주지 않고 나만 응시했다. 내가 실없는 소리를 하고나서야 김태형의 창백한 주먹은 혈색을 찾았다. 그렇게 하루를 버텼다.


드디어 청소시간이 되었다. 아이들은 저마다의 청소구역으로 뿔뿔이 흩어졌고 김태형과 나도 토끼사로 가려할 때였다.


“태형아.”


담임선생님이 나직하게 김태형을 불렀다. 앞문에서 손짓하는 담임선생님과 나를 번갈아 보는 태형이는 꼭 나한테 허락을 구하는 것 같았다. 내가 가보라고 하니 그제 서야 담임선생님의 부름에 답했다. 담임선생님은 허리를 굽혀서 김태형한테 무슨 말을 속삭였다.


“지민아. 오늘 청소는 혼자 해야겠다. 태형이는 선생님이랑 할 얘기가 있어서.”


담임선생님이 김태형의 어깨에 두 손을 올리면서 미소 지었다. 담임선생님이 다른 어른들처럼 김태형을 싫어하진 않을 거란 걸 아는데도 가슴이 콩닥거렸다. 왠지 김태형을 두고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나는 발을 못 떼고 우물쭈물 댔다. 담임선생님이 안심하라는 듯 청소가 끝나면 상담실로 태형이를 데리러 오라고 말하고 나서야 난 “네.”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청소는 하는 둥 마는 둥했다. 하나, 둘, 삼이한테는 미안한 일이었다.


“미안. 내일 많이 쓰다듬어줄게.”


허겁지겁 토끼똥을 치우고 여물을 잔뜩 던져 넣은 다음 토끼사를 잠갔다.


상담실은 1층 양호실 옆에 붙어있다. 담임선생님은 김태형을 왜 부른 걸까? 오늘 아침에 김태형이 다친 것 때문에 그런가? 애들이 김태형 괴롭힌 걸 담임선생님이 알았나? 아줌마들이 담임선생님한테 김태형을 퇴학시키라고 했으면 어떻게 하지?


양호실 앞으로 가니까 담임선생님 목소리가 들렸다. 작게 조곤조곤 말하셔서 무슨 내용인지 알 수는 없었다.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상담실 뒷문에 귀를 댔다. 담임선생님은 청소가 다 끝나고 데리러 오라했으니까 내가 이렇게 일찍 올 줄 몰랐을 거다. 엿듣는 건 나쁜 짓이지만 그래도.. 그래도..


담임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게 하나도 들리지 않았다. 웅얼웅얼하는 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드문드문 단어들이 튀어나왔다. 병원, 어르신, 겨울, 치료, 남편.. 나는 좀 더 자세히 듣기 위해 귀를 바짝 붙였다.


“선생님.”


이상했다. 선생님의 웅웅거리던 목소리와 달리 김태형 목소리는 또렷하게 들렸다. 바로 옆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저한테 어떤 걸 주셔도”


김태형은 드물게 말을 더듬지 않고, 말끝을 흐리지 않고 또박또박 말했다. 마치 드라마에서 범인에게 사형선고를 내리는 판사처럼 말이다.


“죽은 사람은 못 살려요.”

@mysteryhomo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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