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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방적 연애담 3

“그래서 걔랑 가평을 가기로 했다고?”


[거점이 공격받고 있다.]


“어. 아! 에너지 없어.”

“가평 오바야. 수업에서 첨 본 사람끼리 뭔 여행을 가?”


[남은 시간 30초.]


“당일치기인데 뭐 어때. 그리고 나 정국이랑 친해져서 괜찮아. 넌 뭐하기로 했는데?”

“그냥 헌혈하고 그걸로 영화 보려고.”

“밥은?”


[햇병아리사냥 처치 [+51]]


“과제 때문에 명목상으로 만나는 건데 밥 까지 먹어야 되나?”

“여자애 생각은 또 그게 아닐 걸?”


[승리]


김태형이 하드캐리해서 우리 팀이 겨우 승리했다. 김태형은 리퍼로 0데스 퍼펙트킬을 달성했다. 무서운 놈.. 몇 달 오버워치만 잡고 있더니 도사가 다 됐네. 키보드에서 손을 뗀 태형이가 내 의자팔걸이를 잡아 휙 돌렸다.


“그래서 갈 거야?”

“잠깐 갔다 오지 뭐.”

“너 거기 갔다가 걔가 딴 맘 먹어가지고.. 어? 걔 덩치도 크잖아. 걔가 덤비면 넌 찍소리도 못하고-”

“뭐래! 정국이 여친 있거든?”


정국이가 여친이 있는지 없는지는 내 알바아니지만 태태의 망상과 입을 멈추기 위해 대충 둘러댔다. 그렇게 생겨서 썸녀 하나 없을 리는 없을 테니까 아주 거짓말은 아닐 거다. 내 대답에 조금은 안심했는지 태형이가 쪼는 걸 그만뒀다.


“여친 있는 애가 결혼과 가족을 왜 들어? 음흉하네, 걔.”


태형이의 투덜거림을 무시하면서 폰을 확인했다. 윤기 형한테서 카톡이 와 있었다.


[어디야?]-오후10:02

[태태랑 피방이에요ㅋㅋ 형은여?]-오후10:24


보내자마자 바로 1이 없어졌다. 옆에서 김태형이 배고프다며 징징댔다. 안 그래도 나도 출출해서 뭔가 먹어야하나 생각하던 참이었다.


[나 후문 와라와라에서 남준이랑 술 마시고 있는데 올래?]-오후10:24


“태태! 윤기 형이랑 남준 형이랑 술 마시고 있대. 가자!”


태형이가 바로 지갑을 들고 일어섰다. 최근 윤기 형 관련해서 저렇게 쿨했던 적이 처음이라 조금 놀랐다.


[지금 갈게요!]-오후10:25


앞서가는 태태를 따라 나도 급하게 자리를 떴다. 시험이 끝나서인지 늦은 시간인데도 학교 주변에 사람들이 많았다. 길거리에 있는 사람들은 대개가 만취한 상태였다. 가로수를 잡고 먹은 것을 시원하게 게워내는 여학생을 보면서 태태가 얼굴을 찡그렸다. 또 몇 걸음 가다보니 이번엔 버스정류장 보도블럭에 주저앉은 여자를 친구들이 힘겹게 옮기고 있는 장면이 포착되었다.


“진심 꼴불견이다.”

“나도 술 취하면 저러잖아.”


주량이 센 편이지만 한번 취하면 진상 3종 세트(토, 울기, 아무데서나 자기)를 시전 하는 내가 괜히 찔려서 그렇게 말했다. 내가 주변사람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취했을 때, 나를 챙기는 건 늘 태형이 몫이었다.


“넌 너잖아.”


태형이는 알아들을 듯 못 알아듣겠는 말로 일축하고 먼저 술집에 들어갔다.


술집에는 당연하게도 사람이 많았다. 밤 10시인데 웨이팅이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여기저기서 비명을 지르고 누가 좋아하는 랜덤게임인지 뭔지 구호를 외쳐대는 소리로 시장 바닥 같았다. 태형이는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단번에 남준이 형을 발견했다. 윤기 형은 화장실을 갔는지 테이블에는 남준이 형만 혼자 남아 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태형이랑 내가 자리에 다다랐을 때에서야 남준이 형이 우릴 발견했다. 우리는 남준이 형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아직 안주가 나오지 않는 건지 테이블에는 소주 한 병만 외롭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자 윤기 형이 등장했다. 가슴이 짝사랑에 빠진 여고생마냥 콩콩 뛰었다.


“형형. 뭐 시켰어요? 저희 배고파요. 메뉴판 좀.”

“어.. 여기.”


남준 형이 메뉴판을 건네줬다. 김태형이 메뉴판을 들이 밀면서 뭐 먹을까 물어대는 통에 윤기 형한테 아는 척도 못했다.


“아무거나 시켜.”

“아무거나 뭐?”

“탕 종류! 아무거나.”

“홍합탕 먹을까?”

“아니. 그거 말고 나가사키 짬뽕탕?”

“근데 나 밥도 먹고 싶은데..”

“스팸주먹밥 맛있어.”

“추억의 도시락이 더 싸잖아.”

“아냐아냐. 스팸주먹밥 진짜 맛있어.”


태형이가 호출벨을 누르고 달려온 직원에게 주문을 마쳤다. 우리가 부산떠는 동안 윤기 형은 우리 앞에 술잔을 세팅해 놨다.


“야. 근데 너네 좀..”


아까부터 나랑 태형이를 얼빠진 표정으로 보고 있던 남준 형이 말을 하려다 말고 고개를 저었다. 우리가 동시에 왜요, 뭐요 하고 물으니까 또 말을 하려다 말고 고개를 젓는다. 궁금한 건 못 참는 태형이가 남준 형을 엄청 추궁하기 시작했다. 뭐요, 뭔데요, 아 말해요! 남준 형은 입을 떼려다가 윤기 형 얼굴을 살피더니 합죽이가 됐다. 이제 윤기 형까지 궁금증이 동한 건지 말해보라고 남준 형을 구석에 몰았다. 셋의 합공을 견디지 못한 남준 형이 아, 알았어! 말할게! 하고 소리를 지른 뒤에 자기 앞에 술잔을 원샷 했다. 뭔데 저렇게 뜸을 들여?


“아니, 이상하잖아.”

“뭐가요?”

“상식적으루다가.. 이렇게 만나면 박지민 너랑 형이랑 나란히 앉아야 하는 거 아니야?”

“….”, “….”, “….”


남준 형의 말에 우리 셋은 한동안 침묵했다. 나는 이게 무슨 소린지 단박에 이해가 안 가서였는데 윤기 형이랑 태태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아니 둘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란히 앉으니까 좀 그렇더라. 태형이가 앉으면서 의자 빼주고 넌 거기에 당연하다는 듯이 앉고.. 내가 형 앞에서 할 말은 아닌 거 같아서 가만히 있었는-”

“야. 뭘 그런 걸 따져. 기집애 마냥.”


윤기 형이 얼어버린 우리에게 건배를 제안했다. 얼결에 술잔을 들고 원샷을 하긴 했지만 어색해진 분위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두 번째 잔을 채우기 전 다행히 직원이 안주를 들고 왔다. 남준 형과 윤기 형이 미리 시켜놓은 건가보다. 근데 하필 문어초회다. 젓가락을 들었다가 말았다. 셋은 안주를 한 입씩하고 빈 술잔을 채웠다. 술이라도 먹어 분위기를 풀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남준 형과 윤기 형의 속도가 빠르다. 한 병을 다 비우는 사이 태형이와 내가 시킨 스팸주먹밥이랑 나사가키짬뽕탕이 도착했다. 남준 형이 후레시 두 병을 더 주문했다. 두병쯤 깠을 때라야 우리는 입이 좀 풀어졌다. 특히 남준 형이 연거푸 들이마셨다.


“너 이거 못 먹어?”


짬뽕탕 국물만 홀짝이는 나를 보고 있던 윤기 형이 문어초회 그릇을 젓가락으로 툭툭치며 물었다.


“지민이 문어 못 먹어요.”


태형이가 나대신 대답했다.


“진짜? 해산물 잘 먹잖아.”


남준형이 반문했다. 내가 나서서 말한 적이 없으니 태형이 빼곤 다들 잘 모를 거다. 음식 가린다고 말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 그냥 시키는 대로 두고 적당히 피해 먹는 편이다.


“얘 옛날에 산낙지 먹다가 죽을 뻔한 적 있어서 빨판있는 애들은 못 먹어요.”


이번에도 대답은 태형이가 했다. 술이 좀 된 남준 형이 우리 둘을 게슴츠레한 눈으로 봤다. 저 사람이 또 뭔 말을 하려고!


“진짜 너네 둘이 사귀는 것 같아. 서로 모르는 게 없어.”


남준 형은 태형이랑 내가 백프로 친구인 줄 아니까 저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거다. 내가 문어를 못 먹는다고 말하지 않은 것과 비슷한 이유로 나는 태형이와 사귀었던 걸 주변 사람들한테 말한 적이 없다. 내가 일단 그 말을 했을 때 달라지는 사람들의 태도가 싫고-


“사귀었었어요.”


푸왁! 나는 막 목구멍으로 넘어가려던 술을 요란하게 뿜었다. 얘, 얘가 지금 뭐라 한 거냐? 미쳤냐? 김태형?! 너무 놀라서 김태형에게 먼저 눈이 갔다. 김태형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문어 한 점을 제 입에 가져다 넣었다. 남준 형은 그 순간 술이 다 깼는지 얼음이 되어버렸고 윤기 형은 젓가락을 든 손을 허공에 늘어뜨린 채 김태형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 짧은 시간에 온 몸에 털이 바짝 섰다. 김태형! 와! 요새 불안불안하더니 기어이 사고를 친다.


“구, 구남친이라고? 장난 아니고? 뻥 안치고?”


남준 형이 말을 심하게 더듬으면서 물었다. 어지간히 놀랐나보다. 나도 잠깐 눈 뜨고 기절할 정도로 놀랐으니까 절대 저 반응이 과한 건 아니다.


“네.”


김태형의 담백하고 단호한 대답에 남준 형이 벌떡 일어났다가 앉았다. 윤기 형은.. 윤기 형은 아까 그 자세 그대로 태형이랑 혼자 눈싸움 중이다. 어떻게 하지? 이 사태를?! 그동안 윤기 형한테 김태형네 집에서 잔다고 했던 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태형이랑 부랄 두짝마냥 붙어 다녔던 것도.. 형이 나를 뭐라고 생각할까? 당연히 정신머리 없는 놈이라고 생각하겠지! 오해만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그러기엔 그동안 내가 해 온 게 너무.. 아씨! 이를 어쩐담?


“어, 어, 얼마나 사귀었는데?”


남준 형은 너무 큰 쇼크를 받아서 옆에 윤기 형이 있다는 걸 잠시 잊은 것 같다. 그의 입이 날뛰기 시작했다.


“저는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았는데 박지민이 좀 튕겨서 중 2때부터 사귀었을 걸요?”

“..나 이거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안가.”


남준 형이 마른세수를 했다. 그리고 태형이의 말이 진짠지 거짓인지 알아보려는 듯한 눈빛으로 우리를 관찰한다. 아, 가만있으면 안 되겠다. 뭔가 항변을 해야겠어.


“수능 끝나고 헤어졌구요.”


0데스 퍼펙트 킬. 김태형은 우리 셋을 초토화 시키고 나서 자작을 했다. 얘가 요즘 왜 이럴까? 사춘기 때도 안 하던 행동을 자꾸 하니 적응이 안 된다. 불안한 눈으로 김태형을 그리고 아직도 김태형에게 시선고정 중인 윤기 형을 번갈아 봤다.


“와씨.. 대박적. 너네 아메리칸스타일이냐?”

“원래 친구였잖아요. 다시 친구로 돌아간 것 뿐예요.”


살짝 빈정거림이 묻어나는 남준 형의 질문에 발끈해서 작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근데 내 대답이 외려 확인사살이 되었는지 남준 형과 윤기 형 표정은 더 미묘해졌다.


“아. 난 내 애인이 전 남친이랑 저러면 진짜 용납 못-”


남준 형이 말을 끝까지 못 마치고 윤기 형을 쳐다봤다. 그래요.. 형.. 옆에 민윤기가 있었어요.. 제 남친!


“형은.. 형은 어때요?”


죄인처럼 푹 숙였던 고개가 번쩍 들렸다. 김태형이 민윤기한테 질문한 게 맞다. 윤기 형의 대답을 기다리는 태태의 표정이 몹시 건방지다. 쟤가 윗사람한테 저러는 거 몇 번 못 봤다. 얘가 취했나? 취해서 이러는 건가? 어떻긴 뭐가 어때? 진짜 같이 관 짜고 들어가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내가 놀지 말라고 했다고 박지민이 너랑 안 놀겠냐.”


지금 심정엔 형이 놀라고 해도 김태형이랑 놀기 싫다.


“아니 그런 거 말고 형 기분이요.”

“너 왜 그래.”


기어이 남준 형 입에서 만류하는 소리가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태형은 이제 거의 윤기 형을 노려보고 있다. 원래도 부리부리한 애가 작정하고 저렇게 쳐다보니까 살인 날 것 같다. 슬슬 심각해지는 분위기를 나만 읽은 게 아닌지 남준 형이 테이블 아래에서 태형이를 발로 찼다. 윤기 형이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의자에 길게 기대앉았다. 표정은 윤기 형도 태형이 만만치 않게 살벌하다. 어떻게 하지 이거..?


“기분이 어떻냐구요.”

“야. 김태형.”


윤기 형이 자신 앞에 있는 잔을 비웠다. 불안한 눈빛으로 안절부절하는 나를 흘긋 보고 곧바로 김태형을 쳐다본다. 두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좆같네 좀.”















“미안해.”


김태형은 하나도 안 미안한 얼굴로 사과를 했다. 요즘 뭐 때문에 저렇게 심술인 걸까? 화가 나기보다는 걱정이 된다. 나는 김태형에게 술집에서 가지고 나온 사탕하나를 건네주었다. 까줘. 하길래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심정으로 손수 까서 입에 넣어주기 까지 했다. 남준 형이랑 윤기 형은 카운터에서 서로 자기가 계산을 하겠다고 승강이 중이다. 그냥 뿜빠이 하면 될 걸 왜 매번 저러나..?


“아니야. 어차피 내가 말했어야하는 건데.. 뭐.”

“말할 맘은 있었어?”

“아니.”

“미안..”


김태형이 또 사과를 했다.


“근데 윤기 형 완전 섹시하지 않았어?”

“뭐가?”

“좆같네래 좆같네!”

“….”

“섹시했어. 졸라 섹시했어.”

“..너 진짜 푼수떼기 같아.”


계산을 마친 남준 형이랑 윤기 형이 등장했다. 카운터까지 걸어갈 때도 비틀비틀하던 윤기 형은 남준 형한테 매달린 채로 나타났다. 헐레벌떡 형들 쪽으로 달려가니까 윤기 형은 아예 눈을 감고 있다.


“야. 형 완전 갔는데? 데려다 줘야할 것 같다.”

“내가! 내가 데려다 줄래요!”


내가 급하게 대답하면서 윤기 형을 떠메니까 남준 형이 픽 웃으면서 윤기 형을 넘겨줬다. 와.. 형 엄청 말랐는데도 은근히 묵직하다.


“그랬쪄? 애인이셨쪄?”


나는 세게 고개를 끄덕였다. 태형이가 도와줘?하고 물었다가 남준 형한테 뒤통수를 맞았다. 뭘 도와줘! 집에 가!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남준 형이 대신해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남준 형이 태형이를 끌고 가면서 인사를 했다.


후문에서 윤기 형 집으로 가는 길이 내리막길이라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남준 형이랑 태형이를 다시 부를 뻔했다. 취한 사람 옮기는 거 장난 아니구나. 매번 날 업고 다닌 태형이에게 고마워서 오늘 일은 그냥 넘어가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윤기 형 이렇게 취한 건 처음 보는 것 같다. 윤기 형네 집 현관 앞까지 가는 동안 나도 많이 지쳤다. 바람이 선선해서 땀은 안 났지만 목과 등이 다 뻐근했다. 저번에 물어 알게 된 비밀번호를 눌러 현관을 열고 윤기 형을 침대에 내던지다시피 내려놓았다. 나도 완전히 넉다운이 되어 침대에 머리를 박고 한참 숨을 골랐다. 그리고 일어나려는데 다시 침대로 처박혔다. 윤기 형이 내 팔을 막무가내로 잡아당긴 탓이다.


“깼어요? 물 줄 까요?”

“너 왜 말 안 했어?”


윤기 형이 눈을 떴다. 처음에 뭔 소리 하는지 몰라 잠깐 갸우뚱했다. 몇 초가 지나서야 그게 태형이 얘기 였다는 걸 깨달았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어서 어물어물거렸다.


“나 속은 기분이야.”

“헉. 형 진짜 그건 아니에요. 속인 건.. 아니에요. 그냥 얘기 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서 말 안 한 거예요. 남준 형 말마따나 우리 이제 진짜 친군데 안 좋게 볼 것 같았고 또 형이랑 사귀기 전 얘기니까 사귀고 나서 말할 타이밍을 못 잡,”


횡설수설 변명을 하는 내 입을 윤기 형이 막았다. 자기 입으로.


윤기 형은 아까까지 정신 못 차리고 늘어져 있던 사람답지 않게 전광석화처럼 내 위에 올라 탔다. 형이 능수능란한 손길로 내 뒤통수를 잡아당겨 키스를 했다. 혀가 엉키자 전기 맞은 사람처럼 튀어 오른 나를 체중으로 누르면서 계속 키스를 했다. 형의 키스는 수도승같은 형의 이미지와는 달리 심하게 격정적이었다. 잠깐 입술이 떨어질 때마다 우리 사이에서 허억, 헉 하는 원초적인 신음소리가 샜다. 입술에 머물러있던 형이 입술이 볼을 타고 갔다가 귓불을 빨았다.


“아.. 형... 형.. 잠시만..”


형의 입술이 목을 타고 내려왔다. 늘 바래왔던 상황인데 실제로 닥치니까 좀 당황스럽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팔로 형을 조금씩 밀어내고 있었다.


“혀.. 형.. 술 취해서 이러는 건 좀..”


형이 내 목에서 입술을 떼고 나를 내려다봤다. 눈빛이 굉장히 또렷하다. 얼굴이 취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이성적이어 보인다.


“누가 취했대?”


에?


“아까 못 걸었잖아요..”


눈도 못 떴잖아?.. 그거 다 거짓말이야? 왜? 형이 왜 그런 행동을..? 고뇌하는 나를 눈치 챘는지 형이 대신 답을 내려줬다.


“안 그랬으면 또 김태형네 집 가서 잤을 거 아냐.”


와씨. 꼴린다.

















ㅡ그래서 잤다고 안 잤다고

“거의 잘 뻔했는데..”

ㅡ어.

“너 틱틱대서 안 말할래.”


날씨가 안 좋다. 일기예보에 보니까 오늘 비가 올 수도 있다던데 가는 날이 장날이로구나. 나는 알바생에게서 건네받은 탐앤치노 두 개를 들고 자리에 앉았다. 정국이가 좀 늦는다. 비오는 날 당일치기 여행이라니. 것도 경비가 만원밖에 없는 사실상 무전여행. 상상만 해도 힘들다. 정국이가 오면 잘 구슬려서 가평 말고 다른 걸 하자고 제안해봐야겠다. 태태처럼 헌혈을 해도 괜찮을 것 같고..


ㅡ아! 말해!

“안 잤어. 그냥 그런 분위기만 내고 끝났어.”

ㅡ..진짜?

“너한테 거짓말을 왜 하냐?”


수화기 저편 태태의 목소리가 누그러졌다. 태태는 묻고 싶은 게 많은 것 같았지만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 마침 정국이한테서 카톡이 왔다.


[형 저 다 왔는데 어디세여]ㅡ오후1:34


“야 나 정국이 왔어. 좀 있다가 다시 전화할게.”

ㅡ카톡해.


나는 바로 정국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정국아. 여기 10번 출구 앞 탐앤탐스야. 이리로 들어와.”

ㅡ형이 나오셔야 할 것 같은데. 음료 받았어요?

“응. 그럼 내가 나갈게.”


카페 별론가? 대충 자리를 정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두리번거리면서 정국이를 찾았다. 잘생긴 애는 머리털하나 보이지 않는다. 뭐지? 다시 정국이한테 전화를 걸었다. 그때, 내 앞에 아우디가 섰다. 뭐야.. 하는 것도 잠시 창문이 내려가고 그 안에 정국이가.. 정국이?


“형! 죄송해요! 차가 좀 막혀가지고!”

“어? 어?”

“타세요!”


어리둥절해하면서 차에 탔다. 뭐야.. 이거? 얘가 차를 끌고 온 거야?


“차.. 차..”


그것도 외제차를? 당황해서 말을 더듬거리니까 정국이가 민망하다는 듯이 웃었다.


“친형이 두고 가서 끌고 나왔어요. 괜찮죠?”

“어? 어..”


나야 완전 괜찮지..


“이거 기름 풀로 채웠다니까 돈 안 들 거예요. 정 뭐하면 대중교통 이용한 척하면 되고~ 형 점심 먹었어요?”

“아니.. 아직.”

“엄마가 샌드위치 싸줬는데 먹을래요?”


스, 스무살이다..! 엄마가 샌드위치를 싸주는 스무살이야.. 정국이는 당황한 내 손에 샌드위치를 쥐어주고서 능숙하게 운전을 시작했다.


“형. 제가 알아봤는데 남이섬은 입장료가 있더라구요. 좀 멀기도 하고.. 다른 데 가는 게 어떨까요?”


내가 하고 싶던 말이야. 나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이가 왕자님처럼 웃었다. 기분이 엄청 좋아 보인다면.. 내 착각일까?


“어디 생각해둔 데 있어?”

“네! 형은 저만 믿으세요!”


정국이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난 그 모습이 귀여워서 네비도 안 찍고 가냐는 질문은 치우고 정국이를 격려했다.


“그래. 오늘은 너에게 맡길게.”


정국이와 이런 저런 대화를 하는 사이 우리는 서울을 벗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정국이가 차를 가지고 오지 않았으면 큰 일 날 뻔했다며 안심했다. 확실히 차타고 가니까 편하긴 했다. 너무.. 편해서 잠깐 잠이 들었던 것 같다. 매너 없게..


“형. 다 왔어요.”


졸다 깨다를 반복하다보니까 목적지였다. 나는 부스스한 상태로 일어나 정국이가 건네주는 오렌지 주스를 받아먹었다. 이건 어디서 난 거지? 이것도 엄마가 싸줬나? 정국이의 손길에 이끌려 밖을 나오니 비는 어느새 그쳐있었다.


“헐. 바다.”


말 그대로 눈앞에는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무거운 구름을 잔뜩 드리운 회색 하늘 아래 하늘과 비슷한 빛깔의 회색바다. 먼 곳에 빨간 등대와 함께 어우러진 풍경이 멋스러웠다. 서울 살다보니까 바다 볼 일이 별로 없었던지라 난 좀 흥분했다.


“날씨가 안 좋아서 하나도 안 예쁘네요.”

“아냐! 완전 좋아!”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는 정국이의 등을 치면서 좋아죽겠다고 했다. 정국이는 그제야 제대로 웃었다.


우리는 바닷가를 걸으면서 한참 수다를 떨었다. 수업 때도 많은 말을 나눴지만 학교를 벗어나 이렇게 본격적으로 얘기한 건 오늘이 처음인 것 같다. 클래스메이트에서 친한 형으로 승격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결혼과 가족 교수의 말이 영 헛소리는 아닌 게.. 나오는 주제마다 서로 너무 잘 맞아서 소름끼칠 정도였다.


여름에 가까워진 계절 덕에 해가 길었다. 오후 7시가 되었는데도 밖이 밝았다. 정국이가 배고프다고 해서 우리는 식당 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는 사이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버렸다. 식당 거리에 큼지막한 간판들에는 하나같이 ‘제부도 맛집’이라고 적혀있었다. 중딩 때 김태형이랑 한 번 왔던 것 같은데.. 거기가 제부도였나 대부도였나 헷갈리네. 어쨌든 정국이랑 나는 맛집은 원래 구석에 허름하게 위치해 있어야한다는 말도 안 되는 논리를 신봉하면서 가장 구석진 곳에 있는 조개구이 집에 들어갔다. 조개구이 집에 들어갈 때부터 우리는 ‘만원데이트’에서 ‘만원’따위는 안드로메다로 날려버린 상태였다.


둘 다 배가 많이 고팠던 지라 시작부터 3인분을 시켰다. 조개구이, 왕새우, 키조개, 양념쭈꾸미, 치즈콘샐러드, 칼국수, 해물라면이 줄줄이 나왔다. 이게 또 술을 안 먹을 수 없는 맛인지라 소주도 한 병 깠다. 그리고 까고 나서야 정국이가 차를 가져왔다는 게 생각났다. 이미 깐 술병을 도로 빽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라 황망히 바라만 보고 있는데 정국이가 대리를 부르자고 했다. 그리고 우리는 맘 놓고 술판을 벌였다.


“형이랑 여행 오니까 좋아요. 말도 잘 통하고.. 우리 친해진 거 맞죠?”


정국이가 취했는지 귀여운 소리를 했다.


“응응. 나도 너랑 와서 좋아.”

“다행이다.”


헤헷.. 하고 웃는다. 두 살 차이 밖에 안 나는 데 왜 이렇게 아기 같지? 젖살이 통통한 정국이의 뺨을 손가락으로 한번 쿡 찔러보고 싶다.


“형. 진짜 여자친구 없어요?”


애매한 질문이다. 하지만 ‘여자’ 친구는 없기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전 진짜 없어요. 진짜, 진짜루.”

“오해 많이 받지? 여자 많다고.”

“헐. 어떻게 아셨어요?”

“잘생겼잖아. 얼굴값 한다고 오해할 만하지.”


정국이의 얼굴이 좀 발그레 해진 것 같다.


“형 눈에도 그래요?”

“여자 많은 것 같냐고?”

“아니. 형 눈에도 잘 생겼냐구요.”

“그럼.. 나도 사람인데.”


미적 취향이 아주 아방가르드하지 않는 이상 정국일 보고 평범하게 생겼다고 할 사람은 없다.


“형도 잘생겼어요.”


보통 때 같으면 고맙다고 했을 텐데 진짜 잘생긴 애한테 저런 말 들으니까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에이..”

“귀여워요.”

“..?”

“사랑스럽고.”


뭔가 분위기가 이상하다. 정국이는 날 똑바로 쳐다보면서 그렇게 말했다. 정국이의 직선적인 눈빛을 받아내지 못한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시기적절하게 전화가 왔다. 휴..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전화를 받았다. 윤기 형이었다.


ㅡ팀플 언제 끝나?

“아..”


폰을 볼에서 떼어내 시계를 봤다. 12시.. 12시?! 헉! 미쳤다. 언제 시간이 저렇게! 윤기 형이 전화할만하다!


“아, 아.. 지금 끝나가요. 이제 집 가려구요!”

ㅡ끝나고 전화해.

“네, 네!”


전화를 끊고 화들짝 놀란 얼굴로 정국이를 봤다. 술이 한 방에 다 깼다. 우리 둘이 비운 술병이 벌써 5병. 시간가는 줄 몰랐네 진짜. 정국이가 많이 취해보이지 않아서 다행이다.


“정국아. 12시야. 우리 가야해.”


내 말에 정국이가 비척비척 자리에서 일어났다. 빌지를 들고 카운터로 달려가려는 내 어깨를 잡아서 당기더니 빌지를 뺐었다. 뭐하나 싶었던 것도 잠시 정국이는 자기 카드를 내밀어 계산을 했다.


“야. 네가 왜 내!”

“제가 낼게요.”

“나한테 계좌 보내!”

“그냥 제가 낼게요.”

“그런 게 어디 있어! 그럼 대리비 내가 낼게.”


가만히 우리 대화를 듣고 있던 가게 사장님이 고개를 갸웃했다.


“지금 물때라서 못 나가는데..”

“예?”


한참 정국이랑 입씨름하고 있던 나는 멍해졌다.


“말해주려고 했는데 둘이 너무 재밌게 얘기 하길래 아는 줄 알았지.”

“예에?”


사장님 말인즉슨 조석간만의 차로 물이 들어오는 때라서 밖으로 나가는 길이 막혔으며 다시 길이 생기려면 오전 7시는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턱을 늘어뜨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당황한 나와 달리 정국이는 사장님께 그래요?하고 반문한 게 다다.


“어쩌지?”


정국이는 패닉에 빠진 나를 식당에서 끌어내 밖으로 데리고 나왔다. 까만 바닷가를 배경으로 서 있는 정국이는 멋있었지만 뭔가.. 뭔가.. 아까랑 분위기가 너무 달랐다. 아기 같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어떻게 할래요?”

“뭐, 뭐를?”

“차에서 밤샐래요. 아니면..”


자꾸 김태형이 했던 말이랑 아까 정국이의 눈빛이 맘에 걸린다. 손에 쥐고 있는 폰이 다시 진동하기 시작했다. 볼 것도 없이 윤기 형일 것이다. 지이잉, 지이잉.. 내 손 안에 진동하는 폰을 흘끔 내려다 본 정국이가 그것을 무시하면서 말했다.


“방 잡을까요?”

@mysteryhomo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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