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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기 4

괴소문 (4)

창 밖에는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비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나뭇가지에서 떨어진 단풍잎들이 운동장을 노랗고 빨갛게 물들였다. 며칠 내내 내리던 비가 어제 밤에 그치는가 싶더니 오늘 오후부터 다시 하늘에 먹장구름이 고개를 드밀었다. 아씨. 우산 안 가져왔는데. 창을 때리는 빗방울을 보면서 반 아이들이 볼멘소리로 툴툴거렸다.


“조용! 떠드는 사람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가게 할 거예요.”


교실 티브이의 채널을 외부입력1로 바꾼 담임선생님이 뒤돌아 경고했다. 웅성거리던 아이들은 입을 합 다 물었다. 원래 금요일 마지막 교시는 학급회의 시간인데 오늘은 중앙방송으로 성교육을 한다고 그랬다. 반 아이들은 그 소릴 듣자마자 친한 애들끼리 무리를 지어 앉았다. 경재가 자신의 짝을 쫓아내면서 날더러 옆에 앉으라고 했지만 나는 아무도 앉지 않은 김태형의 옆자리로 가서 앉았다. 열이 바짝 오른 김경재는 아까부터 김태형과 나를 노려보고 있다.


“나눠주는 종이에 감상문 간단하게 적으세요. 검사할거야.”


앞자리의 정민지가 갱지를 뒤로 넘겨 팔랑팔랑 흔들었다. 김태형이 그걸 받으려고 손을 뻗은 순간 정민지는 보란 듯이 갱지를 바닥에 떨어뜨리고 미안하단 말도 없이 고개를 휙 돌렸다. 못된 계집애! 일부러 저런 거다. 일어서려는 김태형을 다시 앉히고 내가 종이를 주워왔다.


담임선생님의 교실의 불을 끔과 동시에 티브이에서 성교육 비디오가 재생되었다. 김태형은 짜리몽땅한 연필을 움켜쥐고 갱지에 자신의 이름을 또박또박 써넣었다. 한글 모른다더니 그래도 자기 이름은 쓸 줄 아나보다.


“이름 쓸 줄 아네?”

“으응..”


김태형이 작게 대답했다. 축 늘어뜨린 어깨가 불쌍해 보였다. 김태형이 한글을 모르고 싶어서 모르는 건 아닐 거다.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으니까.. 얘네 엄마는 일하기도 싫어하는 게으름뱅이니까.. 김태형한테 글을 가르쳐 주지 않았을 거다.


“내가 가르쳐줄까?”

“응?”

“내가 한글 가르쳐줄게. 엄마아빠 이름 쓸 수 있어?”


김태형이 연필을 손에 쥐고 망설였다. 못 쓰나보다. 갱지에 흑심을 대었다가 떼었다가 하는 김태형에게서 연필을 빼앗았다. 그리고 꾹꾹 눌러써진 [김태형]이라는 이름 옆에 내 이름을 써넣었다.


“이거 내 이름. 박지민.”

“….”

“자. 봐봐? 이게 박, 이게 지, 이건 민. 박지민. 내 이름이야. 아래다가 똑같이 써봐!”

“..박, 지, 민.”


김태형이 입으로 소리를 내면서 내 이름을 베껴 적었다. 글씨 쓰는 순서도 엉망이라 꼭 그림을 따라 그리는 것 같았다. 김태형의 손에서 엉성한 모양의 [박지민]이라는 세 글자가 탄생했다.


“으~ 이게 뭐냐? 완전 못 써! 안 되겠다. 뒷장에 열 번 쓰고 검사 맡아.”


김태형은 불평 한 마디 않고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갱지를 뒤집어 뒷장에 내 이름을 열 번도 넘게 적었다.


“나 이제 쓸 수 있어.”

“시험보자!”


김태형은 지가 연습한 종이를 치우더니 자신의 책상에 공들여 내 이름을 썼다. [박지민]. 천천히 세 글자를 완성하고 칭찬을 해달란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아.. 서울 고모네서 키우는 뽀삐랑 똑같이 생겼다. 뽀삐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요크셔테리어인데 명절 때 놀러 가면 꼭 저런 얼굴을 하고 달려와 내 발 치에서 끙끙댄다. 얼른 쓰다듬어 달라는 것이다.


“맞지?”

“응. 잘했어! 그럼 너 이제 네 이름이랑 내 이름 딱 두 개 아는 거야? 갈 길이 멀다~ 멀어~”


장난스럽게 놀리는 나의 말에 김태형이 눈을 꿈뻑꿈뻑 거리면서 도리질을 쳤다.


“..아냐. 아는 거 또 있어.”

“뭔데?”

“뭐라 하는지는 몰라.. 쓸 줄만 알아.”

“그래? 써 봐.”


김태형이 연필을 고쳐 잡더니 한참동안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거렸다. 저게 뭐야?


“뭐야? 영어야?”


김태형이 완성한 글자는 영어 같기도 하고, 한자 같기도 하고, 그림 같기도 했다. 한 글자인지 두 글자인지도 구분이 안 갔다.


“이게 무슨 뜻인데?”

“..몰라.”

“너 방금 지어낸 거지.”


김태형의 눈이 억울함으로 물들었다. 입술은 삐죽삐죽 앞으로 튀어나왔다.


“음도 뜻도 모르는 게 말이 돼?”


내가 의심의 눈초리로 보자 김태형이 우물쭈물 거리면서 변명을 했다.


“..꿈에서 봤는데.”

“그게 지어낸 거잖아.”


김태형은 아닌데.. 아닌데.. 중얼거리면서 갱지에 글자를 여러 번 반복해서 썼다. 나는 어쩐지 그 글자인지 그림인지 모를 것이 기분 나쁘게 느껴져 그만하라 했다. 웬만해선 내 말을 잘 듣는 김태형이 자꾸 글자에 집착했다.


“이거 꿈에 맨날 나와..”


그렇게 말하는 김태형의 목소리가 저번 날 상담실 문 밖에서 몰래 엿들었을 때처럼 으스스했다. 김태형한테 겁먹은 걸 들키지 않기 위해 일부러 딴청을 피웠다. 너 딱지 접을 줄 알아? 아니. 내가 가르쳐 줄게. 그거 이리 줘 봐. 김태형의 감상문을 가져다가 열심히 딱지를 만들었다. 김태형은 완성된 딱지를 보더니 오와..하고 감탄했다. 사실 울 반에서는 민식이가 제일 딱지를 잘 만든다. 내 딱지는 어딘가 헐렁하고 바닥에 쫙쫙 달라붙지도 않아 다른 애들 딱지에 속수무책으로 넘어가곤 했다. 김태형이 얇은 딱지를 들고 좋아하는 걸 보니까 다음에 민식이한테 제대로 배워 왕딱지를 만들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히히~ 나 짱이지? 김태형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대번에 고개를 끄덕였다.


“조용! 비디오에 집중해야지!”


담임선생님의 호통에 속닥속닥 수다소리로 가득하던 교실이 조용해졌다. 담임선생님은 그날 이후 계속 기분이 안 좋으시다. 그래서 요 며칠 우리들은 별거 아닌 일로 혼나는 경우가 잦았다. 어제는 지각한 아이들이 자로 손바닥을 맞았다. 체벌을 안 하시던 담임선생님이 갑자기 매를 들어 아이들은 많이 놀랐다. 몇몇 여자애들은 울음까지 터뜨렸었다.


나는 흘긋 담임선생님의 눈치를 보다 깜짝 놀랐다. 담임선생님의 눈이 나와 김태형 쪽을 향해있었기 때문이다. 늘 다정하고 따듯했던 선생님의 눈동자가 지금은 죽은 생선 눈깔처럼 텅 비어있었다. 나는 선생님의 눈을 피해 허둥지둥 주변을 두리번거리다 티브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티브이에서는 [이것도 성폭력일까?]라는 제목의 성폭력예방교육만화가 나오는 중이었다.


……이렇게 범죄자들로부터 여러분들을 보호하기 위해 부모님이 가장 많이 하는 이야기는 “낯선 사람을 조심해라!”예요. 그런데 단순히 낯선 사람만 조심해서 우리 몸을 제대로 지킬 수가 있을까요?


보통 여러분은 성폭력 가해자를 잘 모르는 사람일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여러분이 평소 알고 지내던 주변 사람인 경우가 많아요. 예를 들어 잘 아는 이웃집 아저씨나 동네 오빠, 친척, 학교나 학원 선생님, 배달원 아저씨등도 여러분에게 성폭력을 가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는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도 여러분이 원치 않거나 불쾌하게 느껴지는 접촉을 할 때는 단호하게 싫다고 말을 해야 해요. 자, 다 같이 따라 해봐요. ‘싫어요.’, ‘안돼요,’, ‘부모님께 이를 거예요.’.


“싫어요~ 안돼요~ 부모님께 이를 거예요~”


잘했어요! 또한 이렇게 말을 했는데도 기분 나쁜 일을 당했을 때는 부모님이나 선생님, 가까운 어른께 반드시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해요. 알았죠?


“네에~”














청소를 마치고 집에 갈 때가 되자 굵은 빗살이 억수같이 내렸다. 아니나 다를까 종례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 태풍이 북상하고 있으니 주말동안 조심하고 월요일 날 보자고 말씀하셨다. 나와 김태형을 비롯해 우산을 가져오지 않은 아이들이 학교의 중앙현관 모여 부모님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교문에 부모님들이 나타났다. 저마다 큰 우산을 들고 와서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영식이, 건욱이, 민식이가 차례로 가버리고 경재는 부모님 대신 집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 한 분이 오셔서 데리고 갔다. 복작복작하던 현관에는 어느새 나랑 김태형만 남아있었다.


“지민아!”


작업용 장화를 신은 엄마가 저 멀리서 헐레벌떡 뛰어왔다. 엄마가 손에 쥔 우산은 살이 하나 부러져 비바람에 달랑거렸다.


“엄마!”


나는 현관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 5분 더 기다려도 엄마가 안 오면 김태형이랑 뛰어갈 참이었기 때문에 엄마의 등장이 더욱 반가웠다. 김태형이 엄마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아차 싶었다. 김태형을 발견한 엄마는 표정이 점점 굳더니 이윽고 날 째려보며 내 이름을 낮게 불렀다.


“박지민.”

“으응..”

“가자.”


엄마가 내 어깨를 채서 날 우산 안으로 우겨넣었다. 난 두 걸음 끌려가다 말고 발을 멈춰 뒤를 돌아봤다. 조명이 꺼져 시커먼 학교를 배경으로 김태형이 우두커니 서 있었다. 김태형은 빙충맞은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그때, 쏴아아아- 무지막지한 폭우가 쏟아졌다. 꼭 수압이 센 샤워기를 틀어놓은 것 같았다. 가방을 뒤집어쓰고 간다고 해도 비 맞은 생쥐 꼴을 면하기 힘들어 보였다. 엄마는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내 등짝을 찰싹찰싹 때리면서 빨리 가자 그랬다. 헌데 도무지 발이 안 떨어졌다.


“엄마! 우산 하나 더 없어?”

“이것 밖에 안 가져왔어.”

“왜?!”

“뭐가 왜야!”


엄마랑 나랑 현관에서 옥신각신하고 있을 때였다. 복도 끝에서 또각또각 구두소리가 났다. 담임선생님이었다. 담임선생님은 이제 집에 가시는 건지 광이 나는 핸드백과 까만 장우산을 들고 계셨다. 놀란 엄마가 대번에 우산을 접고 담임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어머! 선생님!”

“지민이 어머니 안녕하세요~”


담임선생님이 다가오는 사이 나는 엄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김태형 옆으로 갔다. 이렇게 바짝 붙어 있으면 엄마도 억지로 떼어놓고 데려가진 않을 거야. 그치? 내가 보낸 은밀한 눈빛을 읽지 못한 바보 김태형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았을 뿐이다.


담임선생님 앞에 선 엄마는 폭탄 맞은 산발에.. 일할 때만 입는 요상한 꽃무늬 옷을 입고 있어 깔끔한 정장을 갖춰 입은 담임선생님과 비교가 되었다. 나는 좀 창피해졌다. 경재아줌마는 학교 올 때 저러고 안 오는데.. 예쁜 옷 입고, 반지도 여러 개 끼고 오는데.. 씨이.. 엄마가 담임선생님한테 연신 허리를 굽혔다. 담임선생님은 엄마의 공손히 모은 두 손을 붙잡고 예쁜 미소를 지었다. 요 근래 본 담임선생님의 얼굴 중에 가장 화사한 얼굴이었다. 무엇이 담임선생님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까 그 캄캄절벽 같던 표정이 사라져 다행이었다.


“지민이 데리러 오셨나봐요~”

“얘가 아침에 우산을 안 가져가서..”


엄마가 멋쩍게 웃었다.


“지민이 좋겠네?”


좋을 일이 뭐있지? 영문을 모르겠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담임선생님은 그런 나와 김태형을 번갈아보시더니 보조개가 다 패일 정도로 진한 미소를 지으셨다.


“지민이 어머니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

“예?”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오래 할 얘기는 아니고 잠시만..”


담임선생님은 엄마의 손을 끌고 우리에게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갔다. 목소리가 안 들릴 정도로 먼 거리는 아니어서 나는 안 그런 척 엄마와 담임선생님이 나누는 이야기를 훔쳐들었다.


“지민이 정말 대견해요. 태형이 챙겨주는 건 지민이 밖에 없거든요. 어쩜 저렇게 착하고 속이 깊은지.. 저도 요즘 지민이 보면서 많이 배워요. 사실 태형이 관련한 소문 다 허무맹랑한 소리들이잖아요? 어르신들이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믿는 미신에 태형이가 희생되는 것 같아 안타까워요. 마을 어른들이 자꾸 그런 분위기를 조성하면.. 애들 은연중에 어른들의 감정에 영향 받는 거 아시죠? 안 그래도 왕따를 놀이 중에 하나로 여기는 나이거든요.”


엄마는 담임선생님의 말이 길어질수록 얼굴이 빨개지고 고개가 밑으로 숙여졌다.


“저 나이 때 또래들의 단체행동에 휩쓸리지 않는 거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칭찬 많이 해주세요.”

“예에..”

“아.. 그리고.. 그래서 말인데요. 어머니.. 지민이한테 태형이를 좀 챙겨주라 부탁해도 될까요?”

“예에?”


잘 익은 벼처럼 아래를 향해있던 엄마의 머리가 번쩍 들렸다. 담임선생님은 안심하라는 듯이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거창하게 챙겨주는 건 아니고요. 그냥 자리 바꿔서 태형이랑 짝꿍하고, 등하굣길에 같이 다녀주고, 애들이랑 너무 동 떨어지지 않게 다리 역할도 해주는.. 그런 거요.”


담임선생님 제안에 엄마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했다.


“다른 어머니들이 뭐라고 하시면 제 핑계 대셔요.”


선생님은 꼭 엄마의 맘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아, 어머니. 그리고 지민이가 수학이 조금 부족 한 거 아세요? 지난번에 말씀드리려다가 말았는데..”

“예? 수학이요?”

“네. 몇 주 전에 도 단위 학업성취도평가를 시행했었거든요. 지민이가 국어 실력은 뛰어난데 수학 성적이.. 아쉽더라구요.”

“어머. 얘가 말을 안 해서 몰랐어요! 성적표 집으로 보내셨나요?”

“아뇨. 학업성취도평가 성적표는 따로 나오지 않아요. 그냥 학생들 전반적인 실력을 평가해서 어떻게 지도해야하는 지 방향정하기 위해 보는 시험이에요. 생활기록부에 성적이 기재되는 일도 없으니 안심하세요.”


선생님의 안심하란 말에도 엄마의 찌푸려진 미간은 펴질 줄을 몰랐다. 우씨.. 난 죽었다. 집에 가면 구두주걱부터 숨겨야겠다.


“제가 이걸 굳이 말씀드리는 이유는.. 지민이 곧 있으면 6학년 올라가잖아요. 6학년 때부터 수학이 어려워지거든요. 지금 제대로 안 다져주면 중학교 가서도 따라 잡기 힘들어요. 이대로라면 지민이 공부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거라 생각해요. 여기 부모님들이 딱히 아이들 성적에 관심이 없으시다보니.. 혹시 기분 나빠하시지 않을까 걱정이 돼서 다른 분들께는 이런 얘기 꺼낸 적이 없어요. 근데 지민이가 워낙 똘똘하고, 착하니까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 마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어려운 얘기 꺼냈어요.”

“아뇨. 선생님 전혀 기분 나쁘지 않아요. 신경써주셔서 너무 감사하죠! 전!”


엄마가 선생님께 또 여러 번 허리를 굽혔다.


“제가 좀 아이들 가르치면서 답답한 부분이 많아요. 서울 학부모님들은 아이들 교육에 정말 열성적이시거든요. 근데 이곳은 분위기가 좀.. 농사일을 물려받는 그런 분위기라.. 물론 농사가 나쁘단 건 절대 아닌데.. 지민이 같이 출중한 아이들이 가능성을 제한 받을까봐 걱정이 돼요.”

“….”


엄마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혹시 지민이 대학 안 보내실 생각이신 건 아니죠?”


담임선생님이 쐐기를 박듯이 물었다. 엄마는 절대 아니라며 나는 꼭 서울로 보낼 거라고 극구 부인했다. 선생님은 너무 다행이라는 듯이 손뼉을 치면서 웃었다.


“잘됐네요. 아, 어머니 그럼.. 제가 지민이 공부에 힘 좀 보태도 될까요?”

“네?”

“저 아시는 분이 읍내에서 학원 하시는데.. 혹시 권수학이라고 아세요?”


그 수학학원은 나도 시내를 오가며 몇 번 본적이 있다. 시내에서 가장 좋은 신축건물 위층을 전부차지하고 있어 안 보려고 해야 안 볼 수가 없었다. 학원 입구에 교복을 입은 중고생 형아들이 바글바글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거기에 지민이 부탁드려 볼게요. 제 아들도 그 학원 다니고 있거든요. 원장님이 저랑 워낙 막역한 사이라 원비 안 받으시는데 지민이 부탁드려도 흔쾌히 승낙하실 거예요. 괜찮으세요?”

“저, 저야 너무 감사하죠. 어우. 너무 얼떨떨해서.. 이게 다 무슨 일인지.”

“다른 어머니들께는 비밀로 해주세요.”

“네, 네. 당연하죠.”


엄마는 선생님한테 절이라도 할 기세였다.


“제가 지민이한테 공짜로 부탁하는 게 미안해서 그런 건데요. 뭘.”

“예?”


담임선생님의 시선이 나와 태형이 쪽을 향했다.


“태형이요.”


엄마는 그제야 담임선생님의 말뜻을 알아챘다. 나에게 김태형을 맨 입으로 부탁하기 미안하니 학원을 공짜로 보내주겠다는 것이었다. 망설이던 엄마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은 거래라 생각했나보다. 나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김태형의 팔목을 붙들어 엄마 앞으로 뛰어갔다.


“엄마! 오늘 김태형 우리 집 가서 놀아도 돼?”

“......태형이 엄마가 기다리시지 않을까?”


엄마가 담임선생님의 눈치를 보면서 말했다. 얼굴에는 싫은 기색이 한 가득이다.


“얘네 엄마 오늘 집에 안 계신다는데!?”


물어보진 않았지만 왠지 그럴 것 같아.


“태형이 오늘 지민이네 놀러가는 거야?”


담임선생님이 김태형의 키에 맞춰 무릎을 굽히며 물었다. 김태형의 눈동자가 나와 담임선생님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었다. 나는 엄마를 올려다봤다. 아마 김태형도 그랬을 거다. 담임선생님도 허리를 낮춘 자세 그대로 엄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우리 셋의 눈빛을 감당하지 못한 엄마가 작게 한숨을 내쉬며 허락을 해줬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근데 좀 이상했다. 담임선생님은 나나 김태형보다도 더 기뻐보였다.


“잘됐다. 태형아. 그치?”


담임선생님이 김태형의 어깨를 어루만지면서 그렇게 물었다. 선생님의 말투는 꼭 칭찬을 바라는 어린애 같았다.


담임선생님은 엄마에게 자신의 우산을 건네주셨다. 셋이 쓰고 가기엔 우리 우산이 너무 작아 보였나 보다. 극구 사양하는 엄마의 손에 억지로 우산을 쥐어주신 선생님은 교무실에 여분의 우산이 하나 더 있다고 얘기하고 다시 올라가셨다. 나랑 김태형은 선생님이 빌려주신 우산을 나눠썼다.


나는 일부러 첨벙첨벙 물장구를 치면서 걸었다. 어차피 집에 도착하면 다 젖어있을 옷이었다. 앞서가던 엄마가 뒤 돌아서 하지 말라고 소리쳤지만 멈추기가 싫었다.


“야! 우리 이거 건너뛰기 하자.”


길 한 가운데에 커다란 물웅덩이가 있었다. 나는 그 앞에 서서 김태형에게 내기를 제안했다.


“하나, 둘, 셋! 하면 같이 뛰는 거야. 하나~ 둘~ 셋!”


우리는 발돋움을 했다. 서로 타이밍이 맞지 않아 김태형이 우산 밖으로 튕겨나갔다. 김태형은 금세 쫄딱 젖어버렸다. 안면을 때리는 빗방울에 눈도 못 뜨는 김태형이 너무 웃겼다. 어푸- 어푸- 거리던 김태형은 내가 파하하 웃음을 터뜨리자 하던 행동을 멈췄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자신의 입 꼬리를 끌어올렸다. 어? 저거?


“어? 웃었다. 너 지금 웃은 거지? 웃은 거 맞지?”

“응?”


못생기긴 했지만 확실히 웃는 얼굴이다.


“또 해봐!”


김태형이 어색하게 웃는 체를 했다.


“그렇게 말고 아까처럼!”


김태형이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답답해진 나는 우산대를 귀와 어깨 사이에 낀 뒤 두 손을 뻗어 김태형의 볼때기를 잡아 늘렸다.


“아까 같지 않네..”

“으브브?”

“나 첨 봤어.”

“믈?”

“너 웃는 거.”


엄마가 장난 그만치고 어서 오라며 소리를 질렀다. 나는 김태형의 손을 끌고 엄마에게로 달려갔다.


집에 가는 길에 아빠를 만났다. 빵빵- 아빠의 트럭이 경적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아빠는 사과포장에 쓰일 완충제를 사러 시내에 갔다 오는 길이라 했다. 나와 엄마 그리고 김태형은 아빠의 트럭에 올라탔다. 자리에 좁았기 때문에 내 허벅지 위에 김태형을 앉혔다. 김태형은 심각하게 가벼웠다. 일곱 살짜리 사촌동생보다도 더 가벼운 것 같았다. 아빠가 김태형에게 몇 학년이냐고 나와 친구냐고 말을 시켰다. 생각해보니 아빠는 김태형을 한 번도 본적이 없었다.


“얘가 걔에요..”


엄마가 아빠의 귀에 속삭였다. 아빠는 잠깐 당황한 듯 보였지만 금방 원래대로 돌아와 김태형에게 이름을 물었다.


“김.. 태형이요.”


김태형이 파르르 떨리는 목소리로 제 이름 석자를 겨우 말했다.


“지민이랑 같은 5학년 맞지?”

“예에..”

“어이쿠. 넌 좀 많이 먹어야겠다. 응?”


아빠가 말라비틀어진 김태형의 팔뚝을 보면서 혀를 찼다.


“우리 오랜만에 외식 할까?”

“외식은 무슨 외식. 남의 집 식구도 있는데.”


아빠의 제안에 엄마가 퉁명스럽게 대꾸했다. 담임선생님 앞에서는 천사처럼 굴더니! 다 거짓말이었던 거야?!


“비오니까 삼겹살 먹고 싶다. 아들은 어때?”

“나도! 나도 먹고 싶어!”

“집에 김치찌개 남은 거 있어요. 거기서 고기 건져먹어.”


으웩. 아빠랑 내가 동시에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고기 먹자! 삼겹살 먹자! 응? 응?”

“그래. 쏘주도 한잔하고.”

“차 끌고 와서?”

“요 앞인데 뭐 어때.”


아빠의 트럭이 방향을 바꿨다. 아빠는 읍내로 나가는 초입에 위치한 삼겹살집 앞에 트럭을 댔다. 태풍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다들 일찌감치 귀가를 했는지 올 때마다 북적거리던 식당에 손님이 하나도 없었다. 우리는 가게의 한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 아빠는 삼겹살 5인분과 소주 한 병을 주문했다. 엄마도 말은 그렇게 했지만 배가 고팠는지 고기를 굽는 손길이 아주 잽쌌다. 나는 아빠랑 엄마가 쌈을 싸서 내게 건네 줄 때마다 두 번에 한번 꼴로 김태형에게 쌈을 패스했다. 김태형은 와앙~ 한 입에 쌈을 받아먹고 우걱우걱 씹어 삼켰다. 감격해하는 표정을 보아하니 고기 먹은 지가 한참 된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자꾸 김태형을 챙기는 걸 보고 인상을 썼지만 아빠는 그런 내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는지 우리 아들 다 컸다며 허허 웃었다. 나도 기분이 좋아 계속 실없이 히히 웃었다. 그리고 이젠 정말로 김태형이 내 동생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친 뒤, 담배를 사러 간다는 아빠를 쭐래쭐래 따라갔다. 아빠가 담배를 계산할 때 슬쩍 아이스크림을 계산대에 올려 놀 심산으로 말이다.


“….”


가게에 들어가던 아빠의 발걸음이 뚝 멎었다. 그 바람에 나랑 김태형은 아빠 엉덩이에 얼굴을 박치기 했다. 뭐지하고 올려다본 아빠의 얼굴이 창백했다. 꼭 귀신을 본 것처럼 말이다. 나는 아빠의 시선이 닿은 데를 찾아냈다.


영진이네 할머님이 카운터에 앉아 천장에 달린 티브이를 보고 계셨다. 할머니는 우리의 기척을 느꼈는지 티브이에서 눈을 뗐다.


“….”


할머니의 눈이 아빠를 보았다가 내게로 옮겨졌다가 이윽고 김태형을 발견했다. 할머니는 오랫동안 김태형을 응시했다. 꼴깍. 아빠와 내가 동시에 침을 삼켰다.


“어르신. 몸은 괜찮으세요?”


아빠가 묻는 말에 할머니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저께까지만 해도 시내병원에 누워계시던 분이 정정한 모습으로 앉아 가게를 보시는 게 어색하고 이상했다. 아빠도 그렇게 느꼈나보다.


“88이요.”


아빠가 오천원짜리를 카운터에 올려놨다. 할머니는 담배 한 갑과 거스름돈을 건네 주셨다. 나는 아이스크림을 골라올 엄두도 못 내고 아빠 허리춤만 붙잡고 있었다. 아빠는 담배와 거스름돈을 급하게 자켓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여 있어 봐.”


막 슈퍼를 나가려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는 까만 봉투를 들고 과자코너로 가더니 비싼 상자과자를 마구잡이로 쓸어 담았다. 그리고 빵빵하게 차오른 봉투를 김태형에게 건넸다. 김태형이 나와 아빠 눈치를 보면서 망설이자 억지로 김태형의 손에 봉투를 쥐어줬다.


“또 묵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 말하그라.”


김태형은 대답을 하지 않고 내 등 뒤로 숨었다.


밖은 벌써 밤이었다. 김태형의 집이 무진장 멀었기 때문에 아빠는 김태형을 데려다 줘야한다 그랬다. 이전에 걸었을 때는 되게 멀었는데 아빠 차를 타고 가니 금방 비포장도로가 나왔다. 울퉁불퉁한 도로표면 때문에 차가 심하게 흔들렸다. 차가 흔들릴 때마다 아빠는 끙끙 앓았다. 사실 울 아빠는 허리디스크가 있다. 그래서 재작년에 수술도 받았는데 별로 차도가 없나보다. 아빠의 신음소리에 엄마는 걱정스러운 얼굴을 했다.


“요즘 따라 더 심해지는 것 같아요.”

“그러게.”

“아빠 많이 아파?”


아빠가 내 쪽을 쳐다보다가 흠칫 몸을 굳혔다. 내 무릎에 앉아있는 김태형 때문이었다. 아빠는 괜찮다 하고 그 뒤로 신음을 삼켰다. 엄마는 식은땀이 베인 아빠의 이마를 닦아주다 갑자기 나와 김태형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왜?”

“..아니다.”


엄마는 김태형네 집에 도착할 때까지 김태형을 몰래몰래 훔쳐봤다. 나는 엄마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정확히는 몰랐지만 엄마의 갑작스런 관심이 달갑지 않았다.













갑작스럽게 학부모 상담이 시작되었다. 우리 초등학교는 학기 초에 실시하는 학부모 총회를 제외하고는 부모님들을 학교로 부르는 일이 전혀 없는데 말이다. 담임선생님은 내년에 6학년이 되는 아이들만 특별이라면서 나눠 준 가정통신문에 적힌 순서대로 부모님을 불러오라 말씀하셨다. 김태형은 세 번째 순서였기 때문에 상담이 삼일 째 되는 날 어머님을 모셔 와야만 했다. 아이들은 김태형의 엄마가 나타날지 안 나타날지에 대해 내기를 했다. 솔직히 나도 김태형의 엄마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하긴 했다. 그래서 슬쩍 김태형에게 물었다.


“오늘 엄마 오시라고 했어?”

“응..”

“오신대?”

“몰라..”


김태형이 자신 없이 대답했다. 김태형은 1교시부터 마지막교시까지 불안한 눈으로 안절부절 했다.


하루가 다 가고 청소가 다 끝났을 때도 김태형의 엄마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은 종례 때 김태형더러 집에 가지 말고 남아있으라고 했다. 그때였다. 앞 쪽에 앉은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은 종례를 하다말고 밖으로 튀어나갔다. 살짝 열린 문틈사이로 젊은 여자가 보였다. 태형이 어머님이시죠? 담임선생님의 목소리를 들은 아이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쭉 뺐다. 담임선생님은 다시 교실로 들어와 급하게 종례를 마쳤다.


김태형네 엄마는 엄청 젊었다. 그리고 무지막지하게 예뻤다. 울 동네에서 젤 예쁜 경재엄마랑 비교해도 김태형네 엄마가 더 예뻤다. 티브이에 나오는 연예인 누구를 닮은 것도 같았다. 아이들은 오와오와 거리면서 감탄했다. 선생님은 김태형네 엄마를 둘러싼 아이들을 쫓아냈다.


“오늘은 지민이도 먼저 가야겠다.”


담임선생님은 나까지 교실 밖으로 내보냈다. 나는 집에 가는 척 아이들 무리에 섞여 1층까지 갔다가 중앙 계단이 아닌 왼쪽 계단으로 다시 올라갔다. 그리고 살금살금 교실 뒤로 갔다. 이렇게 엿들으면 안 되는 줄 알지만.. 저번 같은 얘기가 오갈까봐.. 그리고 김태형네 엄마랑 담임선생님이 무슨 대화를 나눌지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


전교생이 모두 떠난 복도는 적막했다. 살짝 열린 뒷문 틈으로 김태형과 김태형네 엄마의 얼굴이 보였다. 담임선생님의 뒤통수도 보였다. 담임선생님은 김태형네 엄마한테 뭔가를 열심히 설명하고 있는 중이었다. 김태형네 엄마는 앞에서 열변을 토하는 담임선생님을 심드렁하게 쳐다봤다. 울 동네 부모님들은 담임선생님을 늘 깍듯하게 대한다. 저런 태도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김태형은 넋 나간 표정으로 바닥만 응시하고 있었다. 말을 마친 담임선생님이 처분을 기다리는 죄인처럼 고개를 푹 숙였다. 자세히 보니 담임선생님의 어깨가 파들파들 떨리고 있었다. 아.. 선생님이...... 운다.


선생님은 이내 김태형과 김태형네 엄마 앞에서 애처럼 울었다. 나는 눈앞에서 펼쳐진 상황을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선생님이 왜 우는 거지? 왜 김태형네 엄마는 팔짱을 끼고 선생님 우는 걸 쳐다만 보지? 김태형은..


“선생님.”


김태형은 왜 저렇게 아무렇지도 않지?


“네..”


김태형네 엄마가 담임선생님을 불렀다. 담임선생님은 울음을 삼키며 겨우 대답했다. 김태형네 엄마는 턱 끝으로 담임선생님의 왼손을 가리켰다.


“그거 다이아에요?”

“네?”


선생님의 왼쪽 네 번째 손가락에 껴진 결혼반지. 남편분이 돌아가시고 나서도 한 번도 뺀 적이 없는 그 반지를.. 김태형네 엄마는 탐욕스런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다이아 맞죠?”

“.....네.”

“예쁘다.”


담임선생님이 오른손으로 손등을 덮어 반지를 숨겼다. 마치 이건 안 된다는 듯한 태도였다. 김태형네 엄마는 그런 담임선생님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표정이 사납게 바뀌었다.


“아들.. 많이 아프잖아요?”


흡- 나도 모르게 짧게 숨을 삼켰다. 담임선생님과 김태형네 엄마는 듣지 못했지만 김태형이 그 소릴 들었는지 초점 없이 부유하던 눈동자가 내 쪽을 향했다. 나는.. 나는 뒷걸음질 쳤다.


“아빠랑 같은 병으로 아들까지 잃고 싶어요?”


그리고 등을 돌려 달렸다. 덜컹- 김태형이 자리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지만 발을 멈추지 않았다. 나는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뒤로 한 채 도망쳤다.


1초도 쉬지 않고 집까지 내달렸다.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던 엄마가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들어온 나에게 한 소리를 하려고 다가왔다. 나는 엄마의 품에 달려들어 목 놓아 울었다. 엄마가 당황한 목소리로 무슨 일이냐 물었지만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다음날, 김태형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빈 책상에 쓰인 [박지민]이라는 글자를 한참동안 응시했다. 담임선생님은 그날 3교시가 되어서야 출근을 하셨다. 나는 가만히 선생님의 왼손을 관찰했다. 선생님의 결혼반지는 진한 자국만을 남기고 사라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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