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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le or Cage 1

추락하는 것에 날개 따위가 있을 것 같냐?

지난주에 김유겸이 하도 지랄을 하는 통에 미성년자의 신분으로 술에 입을 댔다. 먹으면서도 양심의 가책이 느껴져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일이 이렇게 될 줄이야. 나는 벌을 받은 것임에 틀림없다.


“어, 어쩌지..?”


스크래치가 잔뜩 난 화이트 바디의 오토바이를 유심히 살펴보던 김유겸이 수초 후 입을 뗐다.


“뒈졌다. 넌 그냥 뒈진 거야.”








Jungle or Cage 1

추락하는 것에 날개 따위가 있을 것 같냐?










나 같은 찌질이가 중학교 때부터 유명했던 일찐 김유겸과 친구가 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하려면 학기 첫 날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 날은 날씨가 더럽게 추웠다. 입을 벌릴 때마다 입김이 무시무시하게 쏟아져 나오는 살벌한 추위였다. 나는 패딩 지퍼를 턱 바로 아래까지 끌어올린 다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어깨를 한껏 움츠렸다. 중앙현관에 머리통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것을 보고 그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앞에서 시야를 막던 아이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나니 반배치표가 드러났다. 운이 좋게도 한 번에 내 이름을 찾았다. 1학년 11반 최영재. 내가 좋아하는 숫자가 세 번이나 연달아 있어 기분이 좋았다.


내가 좀 늦게 온 건지 반은 이미 아이들로 꽉 차 있었다. 비어있는 곳은 히터 옆 맨 뒷자리 하나뿐이었다. 맨 뒷자리, 창가, 히터가 빵빵하게 나오는.. 로얄석이라고 말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인데 도대체 왜 저런 곳에 아무도 앉지 않았을까? 의아함을 느꼈다. 그리고 바로 깨달았다. 우리 중학교 출신 일찐 김유겸이 앉아있었다. 김유겸은 걸상에 허리를 쭉 빼고 앉아 제 핸드폰 액정에 집중하고 있었다. 미간에 살짝 진 주름이 더러운 성질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다. 어떻게 하지?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맘에 다시 반 전체를 쭉 훑어봤으나 남은 자리는 거기 하나 뿐이었다. 결국 난 김유겸 옆자리에 앉았다. 혹시나 김유겸의 신경을 거스를까 조마조마해 하면서..


우리 담임은 심약해 보이는 40대 가정선생이었다. 그래서인지 1교시 내내 김유겸이 대놓고 핸드폰을 만지는 데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담임은 아예 김유겸이 안 보이는 사람처럼 굴었다. 김유겸은 핸드폰 게임이 제 뜻대로 풀리지 않는지 이따금씩 나지막한 욕을 내뱉었고, 그럴 때마다 주변의 온도는 1도씩 내려갔다. 나는 내심 담임이 자리를 바꿔주길 바랬지만.. 담임은 쉬는 시간 종이 치자마자 뭔가에 쫓기는 사람처럼 후다닥 내뺐다. 그렇게 빼도 박도 못하고 김유겸의 짝이 되었다.


모름지기 첫 단추를 잘 꿰어야 그 다음 일도 술술 잘 풀리는 것인데.. 벌써부터 고등학교 생활이 다 망한 기분이 들었다.












「쟨 왜 엎어져 있어?」


삼일을 관찰한 결과 두 가지 사실을 알아낼 수 있었다. 첫째, 김유겸은 클래시 오브 클랜 9홀 110레벨 유저다. 둘째, 김유겸은..


「아프대요.」


잠이 많다.


덕분에 나는 각 교과 선생들에게 앵무새처럼 같은 변명을 지껄여야만 했다. 딱히 김유겸이 부탁한 건 아니지만..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뭐? 아파? 어디가 아픈데?」


인상이 더러운 사회선생이 나에게 물었다. 삼일 동안, 웬만한 선생들은 그냥 넘어가주었기 때문에.. 난 좀 당황했던 걸로 기억한다.


「..감기요.」


말을 하기 전 짧은 머뭇거림을 캐치한 사회선생이 뭔가 눈치를 깠는지 우리 자리로 척척 걸음을 옮겼다. 손에는 당구큐대를 잘라 만든 매를 들고.


「야. 일어나.」


김유겸은 끄떡도 안 했다. 사회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 해졌다.


「이 새끼가.. 안 일어나?!」


교실의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김유겸과 사회선생에게 쏠렸다. 약 서른 쌍의 동공이 격렬하게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사회는 생긴 것처럼 다혈질이었는지 더 고민 않고 김유겸의 책상을 시원하게 걷어찼다. 책상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넘어갔다. 더불어 그 여파로 내 책상까지 밀려나 흔들거리다가 쾅 고꾸라졌다. 두 개 책상의 서랍에서 온갖 쓰레기를 비롯하여 교과서 핸드폰 필통 등등이 튕겨져 나와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김유겸은 단잠을 방해받은 맹수처럼 성난 얼굴이 되어 번쩍 일어났다.


「아!!!」


김유겸이 눈을 부라리며 사회선생 앞에 위협하듯이 섰다. 사회선생보다 김유겸의 키가 컸기 때문에 조금 우스운 장면이 연출되었으나.. 교실 안 누구도 입도 뻥끗 안 했다. 사회는 약간 당황한 듯이 눈동자를 데록데록 굴리다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얼굴이 확 굳었다.


「저거 뭐야.」


사회가 바닥에 뭔가를 가리켰다. 사회의 손끝을 주욱 따라가 보니 말보로 레드가.. 말보로 레드?!


「헉.」, 「헙.」, 「헐.」


교실 곳곳에서 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이 새끼가.. 쳐돌았나.. 너 교무실로 따라와! 니넨 자습해!」


사회가 사자후를 내질렀다. 담뱃갑이 사회의 손에서 처참하게 구겨졌다. 와, 김유겸은 끝장났다. 담배면 최소 사회봉사에 정학감이다. 라고 생각하면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을 때였다.


「..제 꺼 아닌데요.」

「뭐?」

「제 꺼 아니라고요.」


사회는 당황했는지 김유겸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사회만 당황했냐? 나도 당황했다. 김유겸은 아주 뻔뻔하게 대꾸했다.


「그, 그럼 누구 껀데!?」

「저야 모르죠.」


갈피를 못 잡고 헤매던 사회의 눈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내 쪽으로 옮겨졌다.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설마..」

「….」


내 인생이 단단히 꼬일 것 같은 그런 기분 말이다.


「설마.. 네 꺼냐?」


사회가 나에게 물었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으면 할 말을 잃는다는 감정을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했다.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당황해 턱을 늘어뜨리고 김유겸을 바라봤다. 같은 중학교 3년 쁠라스 같은 고등학교 짝으로서 삼일을 거쳐 드디어 김유겸과 눈이 마주쳤다. 김유겸의 눈동자에 내 멍청한 표정이 반사되었다.


「네 꺼냐고.」


사회가 다시 물었다. 어찌할 바를 몰라 장애인처럼 어버버 거리면서 사회를.. 김유겸을.. 말보로 레드를 번갈아보았다.


「..둘 다 교무실로 따라와.」


그렇게 김유겸과 나는 나란히 교무실로 불려갔다.


우린 삼일 동안 갖은 고문을 받고 반신불수가 되어 풀려났다. 는 거짓말이고~


처음 이틀 동안 김유겸과 나는 격렬하게 담배의 소유권을 부정했다. 취조실처럼 꾸민 학생지도실에 감금되어 수업도 못 듣고 담배의 출처를 조사받아야 했다. 김유겸은 중학교 때도 곧잘 담배를 걸려서 사회봉사를 하곤 했다. 선생들한테 걸리는 거에 별로 연연하지 않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왜 갑자기 잡아떼는지 알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문제는 선생들도 나처럼 생각했다는 거다. 정말 억울하다는 표정에 간간히 욕까지 섞어가면서 「씨발.. 제 꺼 아니라구요.」라고 말하는 김유겸에 몇몇이 넘어가기 시작했다. 선생들의 마음에 ‘진짜 아닌 가?’하는 자그마한 의문이 자라나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취조가 삼일 째 되는 날, 내내 성난 코뿔소같이 굴던 학년 부장이 조심스러운 어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영재야. 선생님은 이해해.」


아니 대체 뭘 이해한단 말인가?


「요즘 애들 힘들지. 힘들어. 학원에.. 야자에.. 뭐 이성친구 문제도 있을 수도 있고..」

「쌤..」

「그래도 이런 일탈은 옳지 않아.」

「제 꺼 아니라구요..」


담배가 내 거라고 거의 확신하는듯한 학년 부장의 말투에 울컥했다.


「진짜 담배 안 핀다구요..」


나는 어느새 질질 짜고 있었다. 내가 하지도 않은 일로 이틀 동안 부당한 처우를 받은 것에 대한 억울함과 더불어 나에게 죄를 덮어씌우려는 김유겸에 대한 미움과.. 믿어주지 않는 선생들에 대한 서운함이 겹쳐져 내 마음은 갑작스런 풍랑을 만난 돛단배처럼 위태롭게 흔들거렸다. 으어어어, 으엉, 허어어어어어~! 무지막지하게 울어 제끼는 날 보고 학년부장이 당황했다. 옆에 나란히 앉은 김유겸은 질질 짜는 나를 오랜 시간동안 쳐다봤다. 내가 겨우겨우 울음을 그쳤을 무렵이었다. 옆에서 무언가 드밀어졌다. 김유겸이 건넨 두루마리 휴지였다. 맘 같아서는 휴지를 발기발기 찢어서 김유겸의 입에 처넣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어 건네어진 휴지로 코를 풀었다.


크으으응~


김유겸 나쁜 새끼. 개새끼!


크으으으응!!


「쌤.」


한 차례 코를 풀고 새로운 휴지를 손에 돌돌 말았을 때였다. 내가 코 푸는 꼴을 빤히 쳐다보던 김유겸이 갑자기 학년부장을 불렀다. 김유겸의 얼굴이 학년부장 쪽으로 돌아갔다. 김유겸이 학년부장을 올려다보면서 입을 열었다.


「담배 제 거예요.」

















김유겸은 벌점 50점을 받았다. 걱정했던 것치고는 싱거운 처벌이다. 라고 생각했지만 알고 보니 벌점 60점이면 교내봉사이고, 80점이면 정학과 동시에 생기부 기록, 100점이면 강제전학이 이란다. 참고로 지각 한 번에 벌점 1점, 복장불량 걸리면 벌점 2점이다.


담배사건 뒤로 김유겸은 나에게 대화란 것을 시도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제 핸드폰의 갤러리를 열더니 사진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야. 이거 봐봐.」


액정에는 희고 길쭉한 똥 덩어리.. 아니.. 하얀 족제비가 떠 있었다.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지 몰라 허둥지둥 댔다. 김유겸은 손가락을 옆으로 쭉쭉 밀어 여러 장의 사진을 보여주었다. 대개가 김유겸의 손에 족제비가 잡혀있는 사진이었다.


「어때?」


뭐, 뭐가 어떻냐는 거지?


「..네가 사냥한 거야? 대단하다.」


내 말에 김유겸의 얼굴이 팍 구겨졌다. 사냥이라는 어휘가 적절치 않았나..? 포획이라고 했었어야 하나? 잠시 그런 고민을 했다.


「애완용 패럿이거든?」

「아.. 미안.」


실수했다. 김유겸이 동물을 키울 만한 감성을 가졌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완전히 실수했다. 잔뜩 쫄아서 제 눈치만 보는 내 옆으로 김유겸이 핸드폰을 드밀었다. 때리는 줄 알고 움찔했는데.. 아니었다. 김유겸은 핸드폰 액정과 내 얼굴을 나란히 두고 번갈아 바라보다가 씩 웃었다.


「역시.」

「..?」

「얘랑 너랑 닮았어. 너도 느끼지?」

「얘, 얘랑?」

「어. 완전 똑같애. 지금 표정.」


초기의 대화는 거의 이런 식이었다.


김유겸은 단지 내가 자신이 키우는 패럿을 닮았단 이유로 나를 ‘친구’라는 카테고리에 넣었다. ‘야. 매점가자.’, ‘다음 시간 음악이야?’, ‘피방 갈래?’, ‘야자 튀자.’, ‘아. 오늘 점심 구려. 신떡 가.’.. 등등.. 김유겸은 일거수일투족에 나를 대동하고 다녔다. 그런 김유겸의 요구들을 꼼짝 못하고 들어주다보니.. 어느새 나도 ‘노는 애들’ 무리에 발을 걸치게 되었다.


김유겸의 친구들은 당연하게도 다들 중학교 때부터 한 가닥 하던 일찐님들 뿐이었다. 엉겁결에 그들과 어울리긴 했지만.. 생각보다 더 막장인 그들에게 거부감과 공포를 느끼고 있던 와중, 지난 주말에 김유겸이 기어코 나를 술집으로 불러냈다. 안 오면 집을 불 질러 버린다는 근본 없는 드립에 얼굴이 하얗게 돼서 헐레벌떡 뛰어나갔다. 김유겸은 홈웨어에 쪼리를 신고나온 내 꼴을 아래위로 스캔하더니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쪽 팔려서 못 데려가겠다고 말해주길 간절히 바랬지만 김유겸은 “졸라 못생겼어.”라고 한 마디 한 뒤 옆구리에 날 끼고 문제의 호프집으로 이동했다.


처음 감상은 ‘숨이 막힌다.’ 였다. 술집은 담배 연기로 꽉 차 자가 호흡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눈까지 매워질 정도의 연기에 눈물을 찔끔 찍어내며 콜록거렸다. 김유겸이 촌스럽게 굴지 말라고 야단쳤다. 지가 데려왔으면서!


김유겸의 손에 이끌려 테이블 한 구석자리에 억지로 앉혀졌다.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무슨 일찐정모가 벌어지고 있었다. 우리 지역 전설의 레전드 찐들이 한 자리에 다 모여 있었다. 풍문으로만 들었던 인물들이 살아 움직이면서 내 존재에 의문을 나타냈다.


「쟨 뭐야?」

「그러게. 첨 보네.」

「제 친구에요.」


시발.. 고딩들이 이래도 되는 건가? 여긴 정상적으로 영업을 하는 곳이 맞나? 왜 민증 검사를 하지 않는 거지?


「여기 주인이 우리 학교 출신 선배야. 다섯 살 위.」


김유겸이 내 귓가에 속삭이며 대충 설명을 해주었다. 스물 두 살짜리가 이런 가게를 가지고 있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닌 듯 익숙하게 처음처럼 세 병을 외쳐대는 그들의 모습은 거의 판타지였다.


「나, 나도 마셔야 돼?」

「그럼 손가락만 빨고 있으려고 했냐?」


술이 좀 들어가서 그런지 김유겸은 무지 기분이 좋아보였다. 쭈구리처럼 지 등 뒤에 숨어있는 내 앞으로 술잔을 놓더니 술병을 기울여 반 정도 채웠다. 나는 그 때까지 태어나서 술이란 것을 마셔본 적이 없었다. 내 앞에 놓인 술잔을 거의 사약 바라보듯이 보고 있으니까 김유겸은 더 신나서 빨리빨리를 외쳤다. 마지못해 한 모금만 살짝 마셨는데도 쓴 맛에 혀가 마비될 것 같았다. 심장은 입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쿵쾅 뛰었다.


「야. 원래 첫 잔은 다 비우는 거야.」


김유겸이 제법 무게를 잡고 말해서 정말로 그래야 하는 줄 알고 나머지를 입 안에 털어 넣었다. 김유겸은 드물게 큰 소리를 내면서 웃었다. 그리고 쉴 틈도 주지 않고 잔을 채웠다. 두 번째 잔이니까 원샷 안 해도 되겠지?라는 생각에 입술만 축이고 내려놓자 김유겸이 또 딴지를 걸었다.


「너 이렇게 꺾어 마시는 거 걸리면 형들이 화낼지도 몰라. 나도 이래서 몇 번 맞은 적 있어.」

「꺾어 마셔?」


뭘 꺾어? 술잔을?


「나눠서 마시는 거 말이야.」


헉. 또 원샷 하라고? 눈으로 물었더니 김유겸이 단호히 고개를 끄덕인다. 아, 모르겠다. 진짜. 으악.. 식도가 타들어 간다! 김유겸한테 이제 그만 달라고 말을 하자마자 무슨 단체로 건배 같은 걸 했다. 세 잔이 연달아 들어가니까 정신이 하나도 없고 온 몸의 털이 바짝 섰다.


「한잔 더. 한잔 더.」


또 내 잔에 술을 채우려는 김유겸의 팔을 잡아 눌렀다. 세 잔에 가버렸나 보다. 제정신이라면 절대 못했을 짓인데..


「안 돼.. 코로 나올 것 같아.」

「아 존나 웃겨. 코로 왜 나와.」


김유겸은 말 그대로 존나 웃으면서 내가 지한테 매달리는 꼴을 지켜봤다. 내가 안 돼.. 안 돼.. 중얼거리는데도 김유겸이 기어코 내 잔에 술을 채웠다. 아, 싫어! 싫다고! 김유겸의 팔뚝에 얼굴을 묻고 거부의사를 표하자 김유겸이 손으로 내 턱을 잡아 올렸다. 뭔가.. 이상했다.


「..」

「..?」

「뿌르리랑 똑같이 생겼어. 진짜..」


뿌르리는 김유겸이 키우는 패럿 이름이다.


「한잔만 더 마셔. 한잔만.」

「진짜지? 나 막 힘들어.. 막막.. 어지러울라 그래..」

「알았어. 알았어.」


전혀 알아들은 것 같지 않은 말투로... 김유겸이 웃음을 섞어서 대답했다.


「후..」


깊은 한숨을 내쉬고 술잔을 들려고 할 때, 웬 허연 손이 등장해 술잔 위를 덮었다. 조금 느려진 반사 신경 때문에 뒤늦게 상황을 파악하고 손의 주인을 찾아봤다. 내 대각선에 앉아있는.. 선밴데.. 우리 중학교 출신..


「여긴 억지로 마시게 하고 그런 사람 없어.」


이름이 박... 박진영??? 학생회장 박진영?????????????????


「저 쪽은 좀 사정이 다르지만.. 여기 있으면 괜찮아.」


헉? 이 선배가 왜 이런 양아치들 사이에 껴있지? 난 너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진영선배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이런 자리에서는 뭘 후라리냐며 시비 걸리기 딱 좋은 행동인데도.. 진영선배는 웃어넘겼다.


「너.. 영재지?」

「네?」

「이름이 최영재 아냐?」


헉! 완전 소름 돋았다. 뭐야, 뭔데.. 날 어떻게 아는 건데?


「문일중 2학년 3반 서기. 학생회의 때 몇 번 봤잖아. 우리.」


보긴 봤다만.. 당근 나만 본 줄 알았지. 선배는 회장이고 나는 선배 말마따나 2학년 3반 서기였으니깐.


「너 서기였어? 꼭 지 같은 거 했네.」


김유겸이 욕인지 칭찬인지 알 수 없지만 왠지 욕 같은 소릴 했다. 진영선배의 관심은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다시 반듯한 모범생의 얼굴로 술을 마시며.. 제 양아치 친구들이랑 하하호호 떠들기 시작했다. 난 진영선배와의 대화로 좀 멍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게 된 기분이랄까..


「야야. 저기 봐봐.」


김유겸이 다급하게 나를 부르기 전까지 잠깐 졸았던 것 같다.


「싸움났어. 싸움.」


뭐? 어디어디?? 주변을 둘러보자마자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야이 씨발새끼야.」


헉. 우리 바로 뒷 테이블에서 살벌한 욕이 난무하는데도 누구하나 신경 쓰는 이가 없었다. 김유겸이랑 나만 빼고.


「왜, 왜 싸우는 건데..」

「임재범이잖아.」


왜 싸우냐고 물었더니. 임재범이란다. 그게 이유가 되나..? 하고 싸움의 당사자들을 쳐다봤을 때다. 전형적인 근육돼지를 상대로 시건방진 눈빛을 쏘고 있는 핵미남을 발견했다. 진영선배도 우리 지역에서 알아주는 잘생김인데.. 이 사람도 그에 못지않다. 아니 뭔가 카리스마가 더 해져서 범접할 수 없는, 아주 날카롭게 몇날며칠을 벼른 칼 같은..


「좆같은 새끼가.. 쳐 뒤지고 싶냐?」


엠창 오줌 쌀 뻔 했다. 핵미남은 자기 덩치의 두 배인 근돼를 상대로 입에 담을 수 없는 욕들을 내뱉었다.


「작작 해라. 안 그래도 기분 엿같으니까..」


난 그 때까지 김유겸을 우리 학교에서 제일 무서운 아이로 생각했는데... 정말 우물 안 개구리라는 표현이 딱 나를 일컫는 말이란 걸 깨달았다.


「내가 보기엔 준사이코패스야.」

「저 사람..?」


혹시나 들릴까봐 조심조심하며 물었더니


「거의 쌈닭이지 뭐. 좀 만 거슬려도 다 시비걸구 다니구.」


김유겸은 조심성이라곤 1도 없는 목소리로 툭 대꾸했다.


「1년 꿇음. 작년에 애 패서 실명 직전까지 만들어 놨다는데」

「그건 범죄잖아.. 소년원 가야되는 거 아냐?」

「그치. 근데 집이 좀 사나봐. 졸라 재수 없게. 아빠가 국회의원일걸? 하는 꼴만 보면 불우한 집에서 태어나서 사회에 불만 많고 삐뚤어진 것 같은데 말이지.. 중학교 때까지 태권도 선수였대. 막 집에 개인 사부도 있고..」


운동을 했다니.. 더 무섭다. 한창 김유겸으로부터 임재범이라는 남자의 악행에 대해 듣고 있는데 별안간 당사자가 자리에서 번쩍 일어나 우리 테이블로 왔다. 헉, 어떻게 해? 들었나 봐!


「야. 가자.」


임재범이 진영선배의 뒤통수를 기분 나쁘게 건드리며 말했다. 마치 종 부리는 듯한 태도다. 진영선배는 뒤를 돌아 얼굴을 확인하더니 알았다고 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 간다. 저 갈게요.」


진영선배는 인사까지 살뜰히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모두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누구도 진영선배를 잡지 않았다.


「영재도 안녕~」


입을 헤에.. 벌리고 진영선배와 임재범이라는 남자를 지켜보고 있던 나는, 갑자기 내 이름이 불린 데에 놀라서.. 김유겸 뒤로 숨어버렸다.


「네에.. 안녕히 가세요.」

「학교에서 마주치면 인사하자?」

「네..」


진영선배는 상큼한 미소를 날리고 사라졌다. 등을 보이면서 멀어져 가는 둘의 대화를 엿들었다. 임재범이 진영선배에게 ‘누구야?’라고 물었다. 진영선배는 가벼운 어투로 ‘중학교 후배.’라 설명했다. 임재범이 뒤를 돌아봤다. 나는 잽싸게 김유겸의 팔뚝에 얼굴을 묻었다. 무, 무서워!.. 그냥 가라.. 그냥 가.


「쫄았냐?」


김유겸이 내 꼴을 보고 키득댔다.


「쟤가 좀 망나니긴 한데.. 너 같은 애는 안 건드려. 지 체급보다 좀 위에 있는 놈들한테 덤비는 거 좋아하거든.」

「정말?..」


다행이고도.. 무서운 얘기다.


「엉. 좆나 큰 잘못을 하지 않는 이상 엮일 일 없으니까 걱정 마.」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좆나 큰 잘못을 저질러 버린 거다. 내가.


“이쪽은 개박살이 났는데?”

“어떻게 해..”


김유겸과 야자를 튀던 길이었다. 나는 공부를 착실히 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책상에 앉아서 뭐라도 들여다보는 게 마음이 편한 타입인데. 김유겸을 만난 뒤로 일상이 아주 엉망진창이 되어 버렸다. 야자를 튀자는 김유겸의 명령에 끌려나와 억지춘향 격으로 매점 뒤 담을 넘었다. 별로 높지도 않은 담 위에 올라서 쩔쩔 매는 나를 김유겸이 확 밀었고 나는 2m 가량을 추락해서.. 추락해서..


“어쩌긴 뭘 어째.”


담 옆에 비스듬히 대어있는 오토바위 위로 떨어졌는데.. 문제는 내가 생각보다 무거웠던 건지 이 험악하게 생긴 오토바이의 앞부분이 완전히 부서져 버린 것이다. 거기까지만 해도 인생 워스트 경험 퐈이브 안에 들텐데 하필 그 오토바이가..


“튀어야지.”

“거, 걸리면?”

“그럼 이실직고 할래?”


임재범 것이다. JB라고 쓰여진 커다란 스펠링은 일부러 무시하려해도 무시할 수가 없을 만큼 강한 존재감을 내뿜었다.


“아니..”


내가 생각해도 튀는 것 밖에 답이 없다.


“너 때매 돌겠다. 이 사고뭉치새끼야.”


나보고 사고뭉치라니?! 나의 모든 재난은 너로부터 시작 되었거늘! 억울한 눈을 하고 김유겸을 봤다. 김유겸은 내 눈빛을 단단히 오해했는지.. 고인이 된 오토바이 옆에 서서 발을 못 떼는 내 팔을 낚아채 끌었다.


“야 너무 걱정 마. 내가 설마 너 맞게 하겠냐?”


애초에 김유겸과 나는 신뢰를 기반으로 엮인 관계가 아니었지만(담배사건) 지금 이 순간 믿을 사람은 김유겸 뿐이라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가 나 지켜줘야 돼. 모른 척 하면 안 돼.의 느낌을 듬뿍 담아서 말이다.


“..모르겠지? 본 사람 없으니까..”

“당연하지.”

“그래도 혹시 누가 봤으면..”

“걸리면 임재범이랑 다이다이 함 뜨지 뭐. 가자.”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오도바이를 두고.. 우리는 그렇게 유유히 범죄 현장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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