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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le or Cage 2

도둑이 제 발 저리다.

“야.”


응? 이라고 되묻기도 전에 콧구멍 앞으로 뭔가가 확 드밀어 졌다. 김유겸 손가락이다.


“담배냄새 나?”


킁킁-


“조금.”

“나면 나는 거고, 안 나면 안 나는 거지.. 조금은 뭐야?”


하란대로 해줘도 지랄이다.


“아니, 나 비염 있어 가지고.. 냄새 잘 못 맡아.”

“하여튼 가지가지 해. 가지가지.”


김유겸이 담배냄새에 전 손가락으로 내 볼을 툭툭 건드리고 옆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러자마자 뒷문에서 김유겸의 일찐 친구들이 등장했다. 김유겸의 일찐 친구들은 나를 아랑곳하지 않고 우리 자리를 비잉 둘러쌌다. 덕분에 아침 자습을 끝내고 조용히 수업을 준비하던 반 아이들이 슬금슬금 자리를 피하기 시작했다. 아놔.. 이런 사회의 암적인 존재들 같으니라고..


“겸. 너네도 반 옮기냐?”

“엉. 3교시 때 2학년 5반인가랑 바꾼다던데. 맞냐?”


김유겸이 내 팔뚝을 퍽 치면서 물었다. 혹여나 이목이 집중될까 재빠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 아침자습 시간에 재익이 창문으로 떨어지는 척 해가지고 정애 완전 기절했잖아.”

“아.. 개또라이새끼.”


변재익은 1학년 삼짱쯤 되는 인물로 싸움은 그닥이지만 말빨이 쩔고.. 형들이랑 친하다. 뭣보다 똘끼가 장난 아니어서 신경 거슬리는 일 없으면 무난하게 생활하는 김유겸과 달리 하루가 멀다않고 사고를 치기 일쑤다.


“근데 레알 뛰어내렸어?”

“아니 창틀잡고 매달려 있었지. 완전 미친놈이야.”

“아 존나 씹관종새끼.”


각자 무용담을 늘어놓는 일찐아이들의 얼굴이 설레어보였다. 그렇다. 오늘은 4월 1일 만우절. 짓궂은 장난이 공식적으로 허용되는 유일한 날인 것이다.


“야. 넌 뭐 할 거야?”


일찐1이 일찐2에게 물었다.


“국어 뒤에서 확 안아버릴까?”

“병신아. 그건 성희롱이잖아. 근데 재밌겠다. 국어 오늘 민소매 원피스 입고 왔던데.. 하악.”


사자들 무리에 던져진 미어캣의 기분을 느끼고 있던 와중이었다. 갑자기 뒷문이 쾅하고 열렸다. 무슨 일인가 보니..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변재익이 서 있었다. 변재익의 등장을 반기는 일찐아이들과 달리 그나마 남아있던 우리 반 아이들은 겁에 질려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그도 그럴 것이..


“정애년이 문식이한테 꼬질러 가지고 존나 처맞았어. 씨팔년!!! 병신같은 년!!! 아오!!!”


아까도 말했지만 김유겸과 달리 변재익은 스치기만 해도 싸움을 거는 진짜 개쌩양아치인 것 이다. 변재익은 초싸이어인으로 변해서 담임과 자신을 때린 학년부장 욕을 했다. 그 기세가 얼마나 살벌한지 조금 있다 변재익이 지네 담임을 칼로 찌른 대도 별로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지 않냐? 영재야?”

“응?!”


갑자기 이름이 불려 당황한 티를 있는 대로 내버렸다. 변재익이 내 이름을 부를 거라고.. 아니, 내 이름을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김유겸을 쳐다봤다. 그게 변재익의 심기를 건드렸나보다.


“야. 내가 너한테 물어봤는데 왜 김유겸을 보냐?”

“어? 아니, 그게..”

“뭐야. 김유겸한테 허락받고 말해야 돼? 얘가 니 주인이야?”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거의 모든 아이들이 나를 김유겸의 따까리쯤으로 취급하고 있는 상황에.. 새삼스럽게 내 소속을 물으니 뭐라 할 말이 없어졌다. 상황이 난처해질수록 내 안구는 신경계의 통제를 벗어나 자꾸만 김유겸을 흘끔거렸다. 좀 도와달란 의미루다가.


“씨발년아. 나 무시 하냐?”


씨..씨발년이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욕에 크리티컬 데미지를 입어서 땀이 찔찔나기 시작했다. 어쩔 줄 모르고 눈만 떼록떼록 굴렸다. 일찐아이들이 하나 둘 나서 변재익을 말려주기 시작했다.


“아. 병신아. 그만 해.”

“가만있는 애 왜 건드려.”


애들이 말리니까 더 열이 받나보다. 변재익이 콧김을 뿍뿍 뿜으면서 나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나 드디어 얻어터지는 건가? 그래.. 그동안 너무 별 일 없다 했다. 변재익이 주먹을 들자 옆에 서있던 일찐1과 일찐2가 몸을 날려 변재익을 막았다. 아, 어쩌지. 지금이라도 미안하다고 해야 하는데.. 순식간에 흉악해진 분위기에 입이 안 떨어진다.


“미, 미..”


쾅!


“헉.”


김유겸이 날았다. 지 책상을 발로 밀어 찬 김유겸은 정확히 두 걸음 만에 날아올라 변재익의 명치를 걷어찼다. 와호장룡인 줄 알았다. 김유겸의 발길질에 나가떨어진 변재익은 잠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상황을 파악하고 번쩍 일어나 김유겸 앞에 섰다. 변재익이 뭐라 따질 시간도 주지 않고 김유겸이 주먹을 날렸다. 변재익은 다시 한 번 교실 바닥을 굴렀다. 변재익이 끙끙거리며 일어나려하자 김유겸이 복부를 걷어찼다. 얼마나 세게 걷어찼냐면 변재익이 날아가 청소도구함에 등허리를 부딪칠 정도로 세게 걷어찼다. 액션영화 같은 데서 보면 싸우는 중에 말도 많이하더만 김유겸은 단 1초 허용치 않았다. 아까 변재익을 말리던 일찐 아이들은 손을 늘어뜨리고 김유겸이 변재익을 묵사발 만들어 버리는 상황을 구경만 했다. 왠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인 것 같지만 나 때문이건 아니건 상황이 너무 살벌해서 몸을 사리고 싶었다. 정말 그러고 싶었는데,


“유..김유겸.”


하필 이 순간 김유겸이 벌점 57점을 돌파하고 있단 게 떠올랐다. 내가 뒤에서 작게 지 이름을 불러도 김유겸은 쳐다보지도 않았다. 변재익이 쿨럭거리며 기침을 토했다. 오, 마이, 갓. 코피가 터졌나보다. 시뻘건 피가 교실 바닥에 촤악 퍼졌다. 이건 보통일이 아니다. 아무리 일찐 쌈이라지만 이 정도면 학폭위 감이다. 급한 맘에 김유겸의 팔뚝을 붙들려다가 때마침 김유겸이 팔꿈치를 뒤로 확 빼는 바람에 명치를 가격 당했다.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잠깐 숨이 탁- 멎으면서 내장들이 모조리 오그라드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윽-”

“헉!”


아! 죽겠다! 이건, 이건 진짜다. 김유겸이 괜히 일짱이 아니구나. 몇 십대를 맞은 변재익은 이미 죽었을 지도 모른다.


“왜 거기 서 있어! 병신아!”


다리에 힘이 쫙 풀려가지고 바닥에 주저 앉아버렸다. 몸을 웅크리니까 고통이 좀 덜 한 것 같다.


“괜찮아?!”


말 시키지 마라. 뒈질 것 같아..


“야!”


차라리 변재익한테 주먹따귀 한 대 내주는 게 나았을 지도..


한참을 끙끙거리다가 겨우 정신이 들어 주변을 살펴보았다. 나를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는 반 애들과 얼굴이 하얗게 질린 김유겸이 보였다. 변재익과 일찐 아이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괜찮아? 어질어질 안 해?”


숨을 들이킬 때마다 가슴 쪽이 아렸지만 참을만해서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놈아. 놀랐잖아! 괜찮은 거 맞냐? 괜히 쫄아서 구라치지 말고 제대로 말해.”


괜찮다고 안 하면 한 대 더 때릴 것 같은 얼굴로.. 김유겸이 물었다.


“괜찮은 것 같.. 괜찮아.”


그래서 나는 그렇게 대답 할 수밖에 없었다.



















“뭐 이렇게 다 올라왔어. 이럼 눈치 채.”

“딱 반 만 올라온 건데.. 열여덟 명이요.”

“안 돼. 반은 내려가. 특히 너. 네가 있으면 딱 알지 않겠어?”


2학년 5반 반장 진영선배가 김유겸을 콕 집어 가리키며 말했다. 김유겸은 존나 짜증나지만 내가 참는다는.. 건방이 뚝뚝 떨어지는 얼굴을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진영선배 말이 일리가 있다. 속이려면 제대로 속여야지 재미있는데, 김유겸은 워낙 1학년 유명인사라 얘가 앉아있으면 들어오자마자 반 바꾼 걸 들킬 것이다.


“야. 가자.”


김유겸이 나보고 따라붙으라는 듯이 손짓했다.


“걜 왜 데려가?”


아무 생각 없이 김유겸 뒤로 쭐래쭐래 따라가는데 진영선배가 그렇게 물었다.


“예?”


김유겸이 눈썹을 찡그리며 반문했다.


“영재는 놔 둬. 데려갈 이유 없잖아.”


김유겸이 진영선배를 한 번 쏘아보고, 날 한 번 쏘아봤다. 저건.. 닥치고 따라오란 표정이다. 내가 난처하게 진영선배를 바라보자 진영선배는 아예 내 손목을 붙들고 자기 쪽으로 끌어 당겼다.


“매점 갈 거니까 끝나자마자 튀어 와.”


다행히 김유겸이 한 발 물러나 줬다. 저 인의예지 없는 놈이 웬일이지.. 선배라고 봐준 건 아닐 테고..


김유겸과 우리 반 아이들 몇이 우르르 사라지자 수업 종이 쳤다. 남은 아이들과 함께 진영선배를 따라 2학년 5반 교실로 들어갔다. 우리 반 아이들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옹기종기 짝을 지어 빈 자리에 가 앉았다. 나는 김유겸을 제외하곤 반 아이들과 말도 제대로 섞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사물함 옆에 서서 멀뚱멀뚱 자리가 나는 곳이 있나 관찰했다.


“여기 앉아.”


진영선배가 화사하게 웃으면서 자기 옆자리를 가리켰다. 2분단 맨 끝자리다.


“우린 지금 수1 시간이야. 너넨 무슨 시간이야?”

“국사요..”

“1학년 국사면.. 양봉일인가?”

“네.”

“그 쌤 완전 싫지? 맨날 마인드 맵 그려오라고 하고”

“네. 맞아요. 안 그려오면 점수 깎은 다음에 앉았다 일어났다 시키고.. 이상하게 그려 와도 점수 깎아요.”

“나 1학년 때 마인드맵 그렸던 거 있어. 너 줄게. 나 만점 받았었어.”

“아.. 감사합니다.”


뭔가.. 되게 친절하고, 잘해주는데.. 불편하다. 왜지? 어쨌든 마인드맵은 개이득이다. 아싸.


진영선배가 사물함에서 교과서를 꺼내오는 사이 선생님이 들어왔다. 반 아이들은 벌써부터 키득대며 웃기 시작했다. 수1 쌤은 구린 냄새를 맡았지만 모르는 척 해준다는 엄한 표정을 하고 수업을 시작했다. 나도 책상 서랍을 뒤져 수1 교과서를 꺼내 폈다.


“어디 아파?”


내가 계속 명치를 쓰다듬고 있으니까 진영선배가 물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을 줄 알았는데 괜찮기는커녕 숨을 내쉴 때마다 가슴뼈가 뽀개지는 것 같다.


“속이 좀 쓰려서요.”

“술 마셨어?”

“아, 아뇨! 아까 좀..”


김유겸한테 맞았다고 말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영재야.”


진영선배가 내 이름을 나직하게 불렀다. 예상치 못한 다정한 보이스라 난 쫌 기분이 이상했다. 최근에는 울 엄마도 날 저렇게 불러준 적이 없거든.


“예?”

“넌 김유겸이랑 왜 놀아?”


글쎄요.. 저도 그게 궁금합니다만..


“괴롭히는 건 아니지?”

“..아니에요.”

“아닌 거 같긴 하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물어봤어. 나중에라도 걔가 괴롭히면 말해.”


진영선배 쌈 잘하나? 겉모습만 봐서는 뭘 해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


“내가 해준다는 게 아니라 쟤가.”


진영선배가 자신의 하얀 손가락 사이에 단정하게 끼어있던 제도샤프를 들어 내 뒤편 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샤프가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흐억!”


그리고 기겁을 하고 뒤로 넘어갔다. 의자와 함께 곤두박질치는 나를 진영선배가 잡아주려고 손을 뻗었지만 역부족이었다. 쾅! 내 몸뚱아리는 바닥에 나동그라졌다.


“괜찮아?!”


진영선배가 날 일으켜주려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반대편.. 그러니까 3분단 끝자리에는 임재범이 앉아있었다. 도대체 이 병신은 뭐냐는 눈을 하고.


“다쳤어? 일어설 수 있겠어?”

“네네..”


재빨리 일어나 사태를 수습하려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이 상황은 내 맘대로 되지 않았다. 윽, 다리에 쥐났다. 놀란 근육이 짜릿한 통각신호를 보내면서 파업을 선언했다.


“다, 다리에 쥐가 나가지고..”


그렇게 설명을 하는 목소리 끝이 미친 듯이 떨렸다.


“쥐났다구?”


진영선배가 되물으면서 나를 따라 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진영선배는 서슴없이 내 종아리를 붙들고 마사지를 시작했다. 쥐가 풀리기는커녕 놀라서 심장마비가 올 뻔했다.


“으아악!”


그리고 너무 아팠다.


“헉. 아파? 냅둘까?”


그걸 질문이라고 하는지..??


“야. 비켜 봐.”


에?


“얘 그때 걔 아냐?”


미쳤다. 임, 임재범이다. 임재범이 코앞에 있다. 그것도 내 종아리를 붙들고.


임재범은 진영선배를 밀어내 자리에 앉히고 내 종아리를 세게 주물렀다. 손가락 마디마디에 굳은살이 박힌 하얀 손이 종횡으로 거침없이 움직일 때 마다 멘탈이 인수분해 되었다. 열라 아팠지만 찍소리도 낼 수가 없었다.


“응. 맞아.”


등 뒤로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눈동자를 굴려 재빠르게 주위를 둘러보니.. 울 반 애들은 거의 못 볼 것을 본 듯한 표정들을 짓고 있다.


“됐어?”


임재범이 잘난 면상을 드밀며 물었다.


“예?”


가까이서 보니까.. 더 무섭다.


“살만 하냐고.”


그리고 조오오오오오오오온나 잘생겼다. 우와. 진짜 토 나오게 잘생김. 왜 연옌 안 하고 이 누추한 학교에서 허송세월하는지?


“네에..”


사실 아직도 다리가 찌릿했지만 어거지로 궁둥이를 들어올렸다. 그래야만 했다. 내가 일어나는 것을 본 진영선배가 의자를 바로 세워줘서 냉큼 철푸덕 주저앉았다. 방금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 임재범이 왜 여기? 왜? 왜?!


“괜찮아?”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묻는 진영선배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반대편으로는 감히 얼굴도 못 돌리겠다.


“엄청 놀랬나보다.”

“조, 조금..”


아직도 심장이 벌렁벌렁하다. 그래서인지 아까부터 쑤시던 가슴이 더 아픈 것 같다. 내가 심장병환자마냥 가슴을 움켜잡고 책상에 엎드리니까 진영선배가 놀라서 얼굴을 드밀고 왜 그러냐고 물었다. 아, 왜 갑자기 숨이 안 쉬어지지?


“영재야. 왜 그래? 응? 영재야!”


선배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수학선생은 이 소동을 만우절 장난이라고 생각했는지 칠판에 죽도를 꽝꽝 때려 박으면서 “봐줄 때 그만해!”라고 윽박을 질렀다.


“서.. 선배..”


잘 돌아가지 않는 고개를 겨우 꺾어 진영선배를 봤다. 진영선배의 얼굴이 순식간에 당황으로 물들었다. 내 얼굴이 어떻길래?진영선배가 내 이름을 부르면서 손을 뻗었다. 그리고 반대편 그러니까 임재범이 앉아있던 쪽에서 드르륵- 의자 끄는 소리가 들렸다.


“야.”


뭐 때문인지, 누구를 지칭하는 건지 모를 임재범의 화난 목소리를 끝으로 시야가 암전됐다.












악몽을 꿨다. 드라이버가 없는 오토바이가 제 스스로 움직여 나에게 돌진하는 기괴한 꿈이었다. 나에게 달려드는 귀신들린 오토바이를 누군가가 뻥~차냈다 김유겸이었다. 김유겸은 오토바이를 차낸 걸로는 분이 풀리지 않는지 바닥에 쓰러진 오토바이에 미친놈처럼 발길질을 퍼부었다. 오토바이는 두 동강이 났다. 꿈속의 나는 분노한 등에 매달려 김유겸을 말렸다. 김유겸! 안 돼! 너 벌점 50점이야! 이 망나니야!


“이.. 망..망나..”

“망, 뭐?”


김유겸이 뚱한 얼굴로 되물었다. 음? 내가 왜 누워서 김유겸을 올려다보고 있지?


“너 박진영네 반에서 기절했어.”


의문을 더 키울 새도 없이 김유겸이 한 마디로 상황을 정리했다. 0점 아래로 떨어졌던 현실감각이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아! 쪽팔려!


“임재범이 너 업고 양호실까지 뛰었대. 양호선생이 119불렀고.”

“헉.”


지난 1년간 들은 얘기 중 가장 믿지 못할 소리다.


“너 기흉이래. 수술해야 될 수도 있어.”

“어?”

“너 자는 사이에 CT찍었어.”

“헐. 그럼 어떻게 해?”

“내가 알아?!”


김유겸이 갑자기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미친놈 인가봐!


“넌 진짜 내 인생에서 만난 사람 중 제일 꼴통이야!”


난 너야!!!


“내가 아프면 말하라 했지?”

“..그땐 안 아팠는데”


그렇게 대꾸하자 김유겸이 나 들으라는 듯이 한숨을 푸- 쉬었다. 잘못하면 한 대 더 맞을 것 같으니까 가만있어야겠다.


“너, 내가, 진짜!”


내가 기절한 게 저렇게 부들거릴 일이야? 애들이 쌤한테 일렀나? 김유겸이 때려서 맛 간 거 같다고.. 그랬을 리가 없는데.


“됐다. 그만하자.”


나는 시작도 한 적이 없어.. 김유겸은 혼자 치던 북과 장구를 내던지고 간병인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치킨, 피자.”

“엉?”

“고르라고!”


아씨. 진짜 분노조절장애야!!


“치킨..”

“치킨 뭐.”

“교촌 허니콤보.”

“양 적잖아. 호식이 두 마리 시킨다.”


왜 물어 본거냐 대체?


“저기.. 나 교복이랑 가방이랑 핸드폰은 어디 있어?”

“가방은 학교에. 교복이랑 핸드폰은 저기.”


김유겸의 기다란 손가락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깐 누가 개어놨는지 정갈하게 직사각형으로 각이 잡혀 포개진 교복바지와 셔츠가 보였다. 그 위에 놓여있는 핸드폰도. 손을 뻗어 핸드폰을 집으려는데 끄억 명치가 찢어지는 것 같다. 너무 놀라서 환자복 안을 들여다보니 가슴팍 중앙에 김유겸 대가리만한 피멍이 들어있다.


“엌!”

“미안.”


어마무시한 비쥬얼에 놀랄 새도 없이 청각에 새로운 충격이 가해졌다.


“응?”


김유겸은 두 번은 말하지 않겠다는 듯 입을 한 일자로 꾹 다물었다. 하지만 나 분명히 들었어. 김유겸이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다. 담배누명을 씌웠을 때조차 한 마디 안하던 김유겸이..


“봐봐.”


벙찐 나를 두고 침묵하던 김유겸이 별안간 내 환자복을 주욱 당기면서 벌어진 틈으로 얼굴을 드밀었다. 나는 낯선 이한테 맨살을 보여주는 게 민망스럽고 그게 또 김유겸이니까 너무 놀라기까지 해서 변사또에게 겁탈당하는 춘향이 마냥 옷 앞섶을 움켜쥐고 몸을 웅크렸다. 김유겸의 손가락이 허공을 휘저었다.


분위기가 이상해졌다.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닌지 김유겸도 불시에 뒤통수한대 맞은 표정으로 날 쳐다보고 있다. 뭐야뭐야.. 뭔데 이거?


“영재야.”


그때, 제야의 종소리처럼 맑은 목소리가 병실에 울려 퍼졌다. 휙! 고개를 돌려보니 진영선배가 내 가방을 들고 걸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임재범이.. 임재범?!


“너 교실에 가방 두고 갔더라. 이제 괜찮아?”

“아.. 네네..”


진영선배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가방을 건네면서 침대 한켠에 걸터앉았다. 뭐지. 이 좁은 공간에 김유겸이랑 박진영이랑 임재범이 다 있다. 혼이 빠질 것 같다. 여기 내가 있을 곳이 맞나?


“괜찮은 거 맞아? 얼굴이 엄청 빨개. 열나나?”


내 이마 쪽으로 다가오던 진영선배의 손이 공중에서 턱-잡혔다. 임재범이었다. 그리고 내 이마 앞에는 커다란 손이 하나 자리했다. 이건 김유겸 손이다. 읭?


진영선배가 김유겸을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눈빛은 수질1등급 계곡물마냥 맑은데 이상하게 쏘아보는 느낌이 들었다. 김유겸도 그에 질세라 진영선배를 거만하게 내려다봤다. 그리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임재범은 나를 무섭게 노려보는 중이다. 놀라 눈을 내리깔자마자 진영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진영선배가 사라라~ 웃었다.


“..저 열 안나요. 괜찮아요.”

“알았어. 괜찮으니까 다행이다. 가방 가져다주려고 온 거야. 우린 그만 가 볼게 쉬어.”


진영선배가 일어나서 손을 흔들었다. 나도 따라서 홀린 듯이 손을 흔들었다. 진영선배는 몇 걸음 떼다 말고 별안간 뒤를 돌아 김유겸을 봤다.


“넌 안가?”


김유겸은 짝다리를 짚고 서서 대꾸를 안했다. 괜히 나만 가시방석에 초조해졌다. 이러다가 김유겸 버릇없다고 임재범한테 처맞으면 어쩌지!


“저랑 치킨 먹기로 했어요. 치킨 시켰거든요..”


김유겸이 치킨을 시켰는지 삼계탕을 시켰는지 모를 일이지만 그냥 그렇게 둘러댔다.


“아.. 그래?”


맛있게 먹어~ 진영선배랑 임재범이 드디어 병실에서 나갔다. 진영선배랑 임재범이 나가자마자 김유겸은 씨발이라고 대뜸 욕을 뱉었다.


“너 중딩 때 박진영 안 친했던 거 맞아?!”


김유겸이 입에서 불을 뿜으며 물었다.


“응! 진짜 안 친했어..”

“정말이지? 구라면 한 대 더... 아니다.”

“아니야. 진짜야.”


학교의 크고 작은 행사마다 얼굴을 비치는 진영선배를 보고 멋있다고 생각하긴 했다. 학생회의 때도 넋 놓고 쳐다본 적이 몇 번 있긴 하고.. 하지만 맹세코 그게 다다. 친하다니? 진영선배랑.. 내가?!


“알았어. 쟤랑 웬만하면 엮이지 마.”


네가 싫다는 술자리 데려가서 이렇게 된 거잖아! 근데 김유겸은 왜 이렇게 진영선배를 싫어하지.. 뭔가 이유가


“눈깔병신 되기 싫으면”


있나...?

@mysteryhomo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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