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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le or Cage 3

너 내 동료가 되어라!

“24번부터 32번까지 급식실로 오세요.”


4교시가 끝나기 직전에 교실 앞문이 열렸다. 급식아주머니였다. 우리학교는 급식도우미를 1학년과 2학년 전교생이 돌아가면서 한다. 급식도우미라고 뭐 특별할 건 없다. 봉사활동시간 때문에 생긴 제도인데 한 번에 8명씩 차출되어 급식을 나눠주고 가장 마지막에 밥을 먹는 것이 일이다. 그리고 오늘은 내 차례다.


“빨리하고 튀어와.”

“왜?”


김유겸이 험악한 표정을 지었다. 또 화내..


“내가 밥 먹을 사람이 없잖아!”


친구는 나보다 김유겸이 훨씬 더 많다. 그 관계를 친구라고 부를 수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김유겸 주변에는 사람이 많다. 근데도 밥 먹을 사람이 없는 건 진짜 같이 먹을 친구가 없다기보다 김유겸이 같이 밥을 먹고 싶은 사람이 없다는 뜻일 거다. 반면에 나는 김유겸을 제외하고는 울 반 애들이랑 말도 몇 마디 못 나눠봤다. 지금도 그렇다. 우르르 급식실로 뛰어가는 아이들을 멀찍이 떨어져 따라가 본다. 나도 중학교 때는 쟤들과 다르지 않았다. 마당발은 아니었지만 반에 적당히 친한 무리가 있었고 다른 반 애들이랑도 안면은 트고 지냈다.


“영재야. 너 어디 할래? 1학년? 2학년?”

“응?”

“이거 1학년할지 2학년할지 선택하라고 하셔서..”


딱 보니 자기들끼리 넷, 셋 짝을 지었나보다. 괜히 네 명 팀에 껴들면 안 될 것 같아 아무데나 괜찮다고 하니까 2학년 급식도우미가 되었다. 준비된 앞치마를 입고 머리 수건을 둘렀다. 팔토시와 마스크까지 장착했더니 전문직업인포스가 풍겼다. 2학년 배식대엔 아이들이 밥, 반찬1, 반찬2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내가 설 곳은 국 퍼주는 자리밖에 없었다. 국이 제일 힘든데.. 뜨겁고 무거워서. 게다가 오늘 하필 육개장, 튀면 답도 없는 거.


내가 이렇게 낙동강 오리알 꼴이 된 데에는 김유겸의 공이 크다. 김유겸이 일찐 그것도 일짱이니까 평범한 애들은 감히 내게 말도 못 걸고 그렇다고 일찐애들이랑 놀자니 내가 싫고.. 걔들도 아마 싫을 거다. 하다못해 동물들도 무리에서 지들이랑 좀 다르게 생긴 애가 있으면 왕따를 시킨다는데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종이 울렸다. 복도 저 멀리서 성난 물소 떼가 이동하는 것 같은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1등으로 밥을 먹는 2학년 선배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몇몇은 몸싸움까지 해가면서 자리를 사수했다. 줄서서 이동하는 1학년들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선배들은 밥이나 반찬의 양을 가지고 애들이랑 딜을 했다. 특히 탕수육 배식을 하는 윤재는 더 달라는 선배들이랑 정량을 지키라는 급식아주머니 사이에서 쩔쩔맸다. 육개장이라서 다행이다. 육개장을 더 달라는 사람은 없었다. 안 받는다고 쌩하니 지나치는 사람은 있어도..


“영재야!”


멍 때리면서 육개장 건더기를 휘젓고 있는 와중에 이름이 불려 주변을 휙휙 돌아봤다. 멀지않은 곳에서 진영선배가 급식판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진영선배의 그림자처럼 임재범이 서 있었다. 이젠 놀랍지도 않다. 내가 꿈벅꿈벅 눈을 감았다 뜨는 사이 진영선배가 내 앞까지 왔다. 나는 뒤늦게 목례를 했다. 그리고 그 바람에 느슨하게 묶었던 머리 수건이 내려와 눈을 가렸다.


“어이쿠.”


진영선배가 빠르게 머리 수건을 위로 당겨줬다. 우리는 꽤 가까운 거리에서 눈이 마주쳤다. 급식실 조명은 쨍한 형광등이어서 이 거리에서 보면 누구라도 못 생겨 보일 텐데 진영선배는 역시 다르다. 얼굴에서 막막 빛이 나는 것 같다. 고딩남자가 피부가 이래도 돼? 어떻게 사람이 이렇게 맑고 깨끗하게 생길 수 있어? 청소년드라마에 주인공으로 나올 것 같은 얼굴이다.


“급식당번이구나.”


진영선배가 머리 수건을 제대로 고정시켜주려고 내 윗머리를 만지작만지작 거렸다. 선배의 손길이 꼭 나를 쓰다듬는 것처럼 느껴졌다.


“..네.”


나 왜 쑥스럽지?! 미쳤나 봐!


“잘 안 되네.”


진영선배가 머리 수건을 잡고 있으니 뒷줄에 정체가 생겼다. 뒤에 있는 선배들이 “뭐야. 왜 안가.”라고 볼멘소리를 하다 진영선배를 확인한 뒤 입을 합 다무는 게 보였다.


“나와 봐.”


진영선배의 호위무사처럼 서있던 임재범이 식판을 쾅 내려 놓길래 저걸 내려놓고 날 본격적으로 패려고 하나 겁을 먹었다. 허나 걱정이 무색하게도 임재범은 진영선배를 밀어내고 내 앞에 서더니, 서더니..


“어, 어..”


내 헐렁한 머리 수건을 풀러 다시 묶어주는 게 아니겠는가? 와나 이게 대체 무슨 상황? 너무 놀라서 들고 있던 국자로 임재범을 칠 뻔 했다. 그랬으면 진짜로 한 대 맞았을 거다. 차라리 맞는 게 나은 거 같아.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던 눈동자가 무슨 자석에 이끌리듯이 임재범의 얼굴로 향했다. 진영선배와는 다른 종류의 비쥬얼 숔이 말초신경계를 강타했다. 임재범도 청소년드라마 주인공처럼 생겼다. 진영선배가 밝은 성장드라마라면 임재범은 음침한 분위기 드라마에 방황하는 고딩으로 등장할 것 같아. 나 지금 뭔 소리 하는 거니?


“앗.”


임재범이 머리 수건을 꽉 당겨 묶었다. 윽, 아픈데? 일부러 그러는 거지? 지금? 근거는 없지만 왠지 그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른 사람보기에도 그랬는지 진영선배가 놀라서 임재범을 만류했다.


“너무 조이지마.”

“이래야 안 풀리지.”


매듭까지 야무지게 묶어주고 다시 급식판을 잡는 임재범의 눈빛이 살벌했다. 후덜덜.. 난 잘못한 게 하나도 없는데 왜 이렇게 매번 눈치보고 떨어야만하나? 아무리 생각해도 김유겸 때문이다. 이 모든 게 김유겸 탓이야! 진영선배랑 임재범은 육개장을 받아들고 유유히 떠났다. 밥도 둘이 먹나보다. 재범선배 뒤로 찍소리 못하고 기다렸던 선배들이 배식하는 내내 내 얼굴을 유심히 관찰하는 게 느껴졌다. 하, 나 정말 이런 관심 적응 안 된단 말이야.


배식이 끝나고 나도 급식을 받았다. 후식으로 나온 항아리 우유는 딸기맛, 바나나맛, 메론맛 세 가지였는데 인기 좋은 메론맛은 이미 다 떨어지고 없었다. 아쉬운 대로 바나나맛을 식판에 올렸다. 다른 애들은 1학년 테이블에서 저들끼리 옹기종기 식사 중이었다. 나는 저기 낄만한 깜냥도 안 되고 어차피 김유겸이랑 밥을 먹어야하는 몸이다. 자기들끼리 휑~ 가버린 게 조금 서운했을 뿐이다. 혼자 급식판을 들고 덩그러니 서있으니 약간 왕따 같아서 창피하지만.. 티내지 말아야지. 쟤네랑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자리 잡고 빨리 김유겸한테 전화해야겠다.


“영재야!”


상대적으로 사람이 없는 2학년 테이블을 기웃거리다가 한창 식사 중이었던 진영선배랑 눈이 마주쳤다.


“같이 먹자. 여기 앉아.”

“아니, 전..”


임재범이 뒤를 돌아봤다. 나는 재빨리 시선을 육개장에다가 처박았다. 진영선배가 일어나서 내 쪽으로 다가왔다. 어쩔 수 없는 거부반응으로 뒷걸음질 치는 내 손목을 박력 있게 끌어당겼다. 진영선배에 대한 평가가 헷갈리기 시작했다. 자상하고, 착한 거 확실한데.. 뭔가.. 묘하게.. 자기 맘대로 하는 경향이..


“밥을 왜 이거 밖에 안 먹어?”

“예?”

“잘 먹어야지. 한창 클 때잖아.”


자기는 다 큰 것처럼 말한다.


“콩밥 싫어해요.”


진영선배가 파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 별로 재밌는 얘기는 아닌 것 않은데 허리까지 꺾어가면서 웃는다. 휘어지는 눈꼬리랑 벌어지는 입매가 너무 선량해서.. 불순한 생각을 한 나를 패버리고 싶었다. 나는 맞은편에 임재범을 두고 진영선배랑 나란히 앉았다. 숟가락을 드는 손이 덜덜 떨릴까봐 걱정됐다.


“배고팠구나?”

“예..”


다행히 손은 떨지 않았지만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나는 다 식은 반찬을 입에 퍽퍽 욱여넣었다. 빨리 이걸 해치워야 여기서 벗어날 수 있을 것 같.. 어, 나 뭔가를 까먹은 거 같은?


지이잉지이잉


귀신같이 핸드폰이 울렸다. 그제야 떠올랐다. 김유겸의 존재가! 내가 사색이 되어서 핸드폰 액정을 쳐다보니 진영선배가 무슨 일인가 옆에서 얼굴을 드밀었다. 너무 놀라서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혔다. 이걸 받아야하나? 받아서 뭐라고 해? 너랑 밥 먹는 거 까먹었다고? 그것만 해도 사형감인데 하필 지금 김유겸이 엮이지 말라던 진영선배랑 있다. 어떻게 하지?


“안 받아?”


망설이는 사이 부재중 전화 1통이 찍혔다. 아앜! 또 전화 온다! 놀란 나는 불에 덴 사람마냥 화들짝 폰에서 손을 뗐다. 폰은 테이블위로 떨어져서도 우렁차게 진동했다. 지이잉지이잉. 부재중 전화 2통이다. 한숨 돌릴 새도 없이 또 진동이 시작됐다.


“받는 게 좋을 걸.”


가만있던 임재범이 조언했다. 내 생각에도 그러는 게 나을 거 같은데 선뜻 손이 안 간다. 김유겸에 대한 공포가 이 정도다! 나는 무서웠지만 계속 전화를 안 받으면 김유겸이 급식실에 등장할 것 같아서 최악의 사태를 면해보고자 떨리는 손가락으로 수신을 눌렀다.


“어..”

ㅡ어? 어~어? 너 어디야? 아직 안 끝났어?

“..아니 끝났어.”

ㅡ어딘데

“진영선배가 밥같이 먹자고 해서.. 여기 에어컨 앞..”

ㅡ뭐?! 네가 왜 걔랑 같이 밥을 먹어?


김유겸이 목소리가 너무 커서 반사적으로 진영선배와 임재범의 눈치를 살폈다. 진영선배가 호로록 육개장을 먹으면서 풋 웃었고 임재범은 별다른 반응 없이 묵묵히 먹던 밥을 먹었다. 난 다급하게 볼륨버튼을 눌러 소리를 줄였다.


ㅡ너 진짜 미쳤냐?

“아, 아니.”


김유겸과의 대화에서 당당하고 싶다. 무슨 직장 상사 대하듯이 말하는 거 쪽팔리다구!


ㅡ내가 걔랑 엮이지 말랬지?

“왜.. 왜 화를 내.”


마누라가 바람을 펴도 이보단 덜할 것 같다.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고 진영선배와는 말도 섞지 말고 눈도 마주치지 말라는 김유겸의 명령은 나한테 좀 억울한 면이 있다.


ㅡ너 5분 내로 반으로 와. 안 그러면 진짜..


김유겸이 특유의 무게 잡는 후- 한숨을 내쉬고 전화를 끊었다. 나는 끊긴 전화를 황망하게 바라보았다.


“가봐야 하는 거 아니야?”

“아뇨.. 아니.. 네.”


짧은 전화통화로 상황을 모조리 파악한 진영선배가 나를 다독였다.


“밥도 못 먹었는데 어떻게 해?”

“괜찮아요. 맛있게 드세요.”


추욱 쳐지는 어깨를 끌어올릴 수가 없었다. 도살장 끌려가는 소 마냥 잔뜩 기가 죽은 채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영재야. 잠깐만. 이거 가지고 가.”


진영선배가 나를 멈춰 세우더니 자기 몫의 딸기우유를 건넸다.


“나 단 거 안 좋아해서.”

“감사합니다..”

“이것도 가져가.”


진영선배한테 인사하고 정말 가려는데 임재범의 목소리가 발목을 잡았다. 임재범은 내 쪽을 보지도 않고 손만 뻗어 자신의 우유를 건넸다. 나는 행여나 임재범의 팔이 떨어질까 재빨리 그것을 받아들었다. 건네받는 과정에서 내 손가락이 임재범의 손등에 살짝 닿았다. 순간 손끝이 정전기가 오른 것처럼 찌릿했다. 이상한 일이다. 임재범이 건넨 우유는 메론맛이었다.


나는 색색깔의 우유를 품에 안고 헐레벌떡 뛰어 반에 도착했다. 우유 때문에 손이 없어서 살짝 열린 문을 어깨로 힘차게 밀었다. 그리고 그대로 김유겸의 가슴에 박치기 했다.


“….”

“….”


와씨. 깜짝아. 내가 올 줄 알고 여기 서있던 거야? 아니겠지? 올려다 본 김유겸의 얼굴이 낯설었다. 학기 첫 날을 제외하고 저렇게 무게 잡은 표정을 본 적이 없다. 만나면 소리부터 지를 줄 알았지.. 말없이 내려다보는 게 더 무서운 것 같다. 나는 쩡! 얼어붙은 분위기는 모면해 보고자 품에 안은 우유를 김유겸 쪽으로 내밀었다.


“네 꺼 가져왔어..”


이걸로 풀릴 것 같지 않다. 개수작 부리지 말라며 집어던지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부들부들 떨면서 다음 처분을 기다렸다. 한참 우유를 쳐다보던 김유겸이 갑자기 픽 웃었다. 처음엔 잘못 들었나 싶었고 그 다음에는 김유겸이 너무 화나서 미쳐 버린 건가 했다.


“넌 진짜 왜 통제가 안 되냐?”


친구를 통제하려는 지가 이상하다고는 전혀 생각지 않는 김유겸이다. 어쨌든 얼굴이 많이 풀어진 걸 보니 이대로 넘어가려나 보다! 다행이다. 김유겸이 우유를 들여다보다가 메론맛우유에 손을 뻗었다. 나는 흠칫 놀라서 몸을 휙 돌렸다. 김유겸이 얼굴에 의문을 띄우고 쳐다봤다.


“..이건 안 돼.”

“?”

“내가 먹을 거라서..”


김유겸은 쉽게 납득을 하고 옆에 있던 바나나 우유를 가져갔다. 애써 풀린 분위기를 다시 망칠 뻔 했다. 휴.. 메론맛우유야 집에 가는 길에 씨유에서 사먹으면 그만인데 내가 방금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매점 갈 거야. 따라와.”

“응.”


















JYP

[영재야 5교시 끝나고 올라 와~]-오후1:50


엥? 한참 졸음과 싸우고 있는데 카톡에 모르는 이름이 떴다.


[누구?]-오후1:50

[나 진영이ㅎㅎ마인드 맵 줄게]-오후1:51


헐. 뭐야. 내 번호 어떻게 알았지? 나는 당황해서 옆자리 김유겸을 쳐다봤다. 다행스럽게도 김유겸은 책상에 머리를 박고 자고 있었다. 나는 재빨리 답장을 했다.


[제 번호 어떻게 아셨어여?]-오후1:51

[1학년 애들한테 물어봤어]-오후1:51


대체 누가 내 번호를 넘긴 건지 궁금했지만 [1학년 애들 누구요?]까지 물으면 너무 구질구질해 보일까봐 참았다. 난감했다. 방금 전에 김유겸한테 진영선배를 멀리하겠다고 다짐까지 한 상태였다. 이러다가 걸리기라도 하면..


[김유겸한테는 비밀로 하고]-오후1:52


진영선배가 내 맘을 읽은 것처럼 답장했다. 김유겸을 다시 흘긋 훔쳐봤다. 종례 때까지 깨지 않을 태세다. 아, 몰라. 화장실 가는 척 빨리 갔다 와야지.


[쫌 따 뵐게요]-오후1:53


남은 5교시를 좌불안석으로 보냈다. 종이 울리고 한동안은 김유겸이 깰까봐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최대한 자연스러운 걸음으로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나가자마자 위층으로 뛰었다. 쉬는 시간은 이미 5분이나 지나있었다. 진영선배 반 앞으로 달려갔다. 진영선배가 복도창가에 서있었다. 진영선배 손에는 파일과 딸기슈크림빵이 들려있었다.


“늦게 와서 죄송해요.”

“아니야. 이거 마인드맵 복사한 거. 맘대로 써도 돼.”

“감사합니다..”

“그리고 아까 점심 못 먹었지? 이거 먹어.”


진영선배가 파일과 딸기슈크림빵을 건네줬다. 너무 잘해줘서 민망할 정도다. 내가 조금만 더 용기가 있었다면 “저한테 왜 이렇게 잘해주세요?”라고 물었을 텐데.. 이유를 알 수가 없어 아쉽다.


“가지고 내려가면 김유겸이 어디서 났냐고 물을 테니까 먹고 가.”


맞는 말이다. 역시 똑똑한 사람은 생각하는 게 다르구나. 나는 점심에 김유겸과 해치운 피자빵이 아직 소화되기 전이라 배가 불렀지만 선배의 성의를 무시할 수가 없어 빵 봉지를 뜯었다. 상큼한 딸기향이 후각을 자극했다. 진영선배는 딸기를 좋아하나보다.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진영선배는 내가 오물오물 빵을 씹는 걸 따듯한 눈빛으로 지켜보았다. 아, 누가 보는 앞에서 먹는 거 굉장히 민망한 일이구나. 처음 알았다. 살짝 체할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면서 빵을 해치우고 있을 때였다.


“영재야. 너 학생회 서기해볼래?”

“켁.”


사레가 제대로 들렸다. 나는 켁켁 거리면서 목에 걸린 빵 조각을 뱉어내려 애썼다. 진영선배가 등을 두드려줬다. 가까스로 토하는 걸 면했다.


“괜찮아?”

“..네. 괜찮아요.”

“많이 놀랐어? 갑자기 서기하라고 해서?”


당연하지. 학생회라니! 난 인생 통 털어 반장감투 한 번 써본 적이 없다. 중2때 서기했던 것도.. 애들이 다 안 하려고해서 제비뽑기로 된 거라고! 글씨를 딱히 잘 쓰지도 않고 뭔가 정리해야하는 일은 질색이다. 근데, 근데.. 학생회 서기라니.


“1학년을 서기차장으로 뽑아야 하거든 거기에 널 추천할까해.”

“아뇨. 그러지 말아주세요.”

“왜?”


정녕 이유를 모르세요!?


“김유겸 때문에 그래?”

“그것도 있고..”

“김유겸도 학생회 하라 해. 같이 하면 되잖아.”


김유겸이 퍽이나 학생회를 하겠다.


“저 그냥 주목 받는 게 싫어요.”


내 대답에 진영선배가 벙찐 표정을 지었다. 나에게 “서기가 무슨 주목을 받아?”라고 묻고 싶어 하는 얼굴이다.


“선배가 많이 챙겨주셔서 감사한데”


모르겠다. 그냥 솔직히 말해야겠다. 진영선배는 착하니까 솔직히 말하면 이해해줄 거 같다.


“선배가 잘해주시면 제가 주목 받아서 싫어요.”


관심은 김유겸 똘마니로서 받는 걸로 족한 것 같아요. 선배.


“영재야. 저기-”

“빵이랑 마인드맵 감사합니다.”


천만다행으로 내가 말을 마치자마자 수업종이 울렸다. 나는 일부러 더 꾸벅 90도 각을 맞춰 인사하고 휙 뒤돌아 도주하다시피 자리를 떴다. 뒤에서 선배가 나를 부르는 게 들렸지만 못 들은 척 계단을 내려갔다. 난 진짜 괘씸한 애인 것 같다. 선배도 이런 황당하고 예의 없는 경우는 처음일거다. 마음이 몹시 심란해졌다. 반으로 들어와 사물함을 열었다. 진영선배가 준 파일을 사물함 깊은 곳에 잘 감추고 다음 시간 국어교과서를 꺼냈다.


“어디 갔다 옴?”

“헙.”


애 떨어 질 뻔했다! 자는 줄 알았던 김유겸이 책상에 볼을 맞댄 자세 그대로 눈만 떠서 날 올려다보고 있었다. 등에 식은땀 한 줄기가 흘렀다.


“담임이 불렀어.”

“왜 그렇게 발발 떠냐?”


웬일로 김유겸은 더 추궁하지 않았다.


“복도 추워가지고..”


내 말에 김유겸이 자신의 의자 뒤에 걸려있던 체육복을 건넸다. 이거 뭐 어떻게 하라는 거야? 빨아오라고..?


“입어. 입고 지퍼 턱 끝까지 잠가.”


김유겸은 수업시간에 체육복 입으면 안 되는 교칙 따위는 모르나보다. 말할까말까 잠깐 눈치를 보다가 김유겸의 심기를 더 건드리기 싫어 울며 겨자 먹기로 체육복을 입었다. 국어선생님이 지문을 읽으면서 3분단과 4분간 사이 통로를 지나가다 체육복을 입은 날 발견했다. 그리고 곧 나에게 한마디 하려는 듯 입을 벌렸다. 국어선생님의 눈이 체육복에 박힌 ‘김유겸’이라는 명찰을 스캔하는 게 느껴졌다. 국어선생님은 별다른 언급 없이 나와 김유겸을 외면했다. 마침 교과서에서는 이번 지문의 주제로 호가호위狐假虎威라는 고사성어가 등장했다. 호가호위라…. 나는 내 옆에서 도롱도롱 자는 김유겸의 얼굴이 세상 무심한 호랑이처럼 보인다고 생각했다.













청소 시간이다. 이번 달 분리수거 당번인 나는 아이들이 청소를 마칠 때까지 사물함 앞에서 대기했다. 김유겸도 나랑 같이 분리수거 당번이지만 걘 청소 따위는 하지 않는다. 김유겸은 종이 치자마자 일찐친구들이랑 어울려 끽연을 하러갔다. 덕분에 나는 3개나 되는 분리수거함을 혼자 들고 낑낑거리면서 계단을 내려가는 중이다. 어제가 모의고사였기 때문에 종이함에 애들이 찢어버린 모의고사 시험지가 가득해 유난히 무거웠다. 그냥 나눠들고 갈 걸 그랬나봐. 까딱하다가 넘어 지겠-


“내가 좀 도와줘도 돼?”

“..네.”


이미 분리수거함 하나를 가져가 놓고 그렇게 물으면 할 말이 없잖아요. 무슨 홍길동도 아니고.. 또 진영선배다. 진영선배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나타나서 선의를 베푼다. 나한테만 저러는 게 아닐 텐데 피곤해서 어떻게 살지?


“혼자 분리수거 당번이야?”

“아뇨. 김유겸이랑..”

“완전 단짝이네.”


아까의 대화 때문에 선배가 불편하다. 안 불편했던 적이 있는 건 아니지만 더더욱 불편하단 얘기다. 선배는 분리수거함을 옮겨주는 데에 그치지 않고 분리수거까지 도와주었다. 덕분에 일이 빨리 끝났다. 선배가 매점에 가자고했다. 우리는 분리수거함을 잠시 치워두고 매점으로 향했다. 이번에도 선배가 아이스크림을 사줬다. 선배가 빠삐코 꽁다리를 똑 따서 내게 건네줬다. 빨리 반으로 들어가려했는데 뭔가 뉘앙스가 여기서 먹고 가잔 뉘앙스다. 우리는 운동장과 교문이 보이는 매점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운동장에는 청소를 빨리 끝낸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있었다. 보충 시작 전에 허기를 채우려고 근처 분식집으로 향했던 애들이 손에 컵볶이를 들고 귀환하는 모습도 보였다.


“영재야. 진짜 서기 안 할 거야?”


결국 이거 물어보려고 했던 건가 보다.


“네에..”

“정말 안 해?”

“죄송해요.”

“진짜로?”

“네.”


싫다는 데 왜 자꾸 물어봐! 진영선배 의외로 끈질긴 구석이 있구나.


“내가 임재범한테 네가 오토바이 부셨다고 말해도?”


툭. 들고 있던 빠삐코를 떨어뜨렸다. 빠삐코가 흙바닥을 데굴데굴 굴렀다.


“..어, 어떻게 아셨어요?”


너무 놀라서 목소리도 이상하게 나왔다.


“그냥 어쩌다보니 알게 됐어.”


그냥 어쩌다보니? 그냥 어쩌다보니 알 수 있는 건가? 그게? 자리에서 번쩍 일어났다. 불안하고 불쾌해서 진영선배랑 나란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운동장을 응시하고 있던 진영선배의 시선이 내 쪽으로 옮겨왔다. 진영선배는 일어선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생각해보면 나는 자주 진영선배한테 이질감을 느꼈던 것 같다. 선한 인상 저편에 불편함을 읽었고 친절한 행동 뒤에 있는 강압을 알아챘다. 그걸 모조리 무시했던 건 선배가 나한테 잘해주었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날 마음에 들어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영재야. 이래도 안 할 거야?”


근데.. 이제는 모르겠다. 선배가 왜 이러는지.


@mysteryhomo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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