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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gle or Cage 4

수치플레이

“지금 당장 대답하라는 건 아니니까 너무 걱정 마.”


마치 지금 당장 임재범한테 꼰지를 건 아니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네가 범인이라고 말하겠다고 경고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래서 나는 결국..


“..할게요.”













Jungle or Cage 4

수치플레이













“뭐? 뭘 한다고?”


김유겸이 눈을 부릅뜨면서 물었다. 쟤가 저런 표정을 지을 때마다 나는 수명이 34분씩 깎이는 기분이 든다.


“서..서..”

“서기차장?!”


다 들었으면서!!!


“응.. 그거..”

“그딴 걸 왜 하는데?”


나도 하기싫지만.. 내가 이걸 너한테 꼭 허락 맡을 이유도 없지 않니?.. 김유겸은 손에 들고 있던 명탐정 코난 42권을 덮고 본격적으로 취조 자세를 취했다. 뒷문에서 교실로 들어오려던 아이들이 슬슬 야마가 돌려고 하는 김유겸의 뒷모습을 보고 도로 내뺐다. 나도.. 나도 도망치고 싶어.. 얘들아..


“그거 학생회잖아. 거기 박진영이랑 임재범 있지 않냐?”

“어?”


일생일대의 위기다.


“그, 그래? 나, 나, 나는 몰랐네에?”


내 어설픈 연기에 김유겸의 안면이 팍삭 구겨졌다. 씨알도 안 먹힐 소리긴 했다. 나는 허둥지둥 아무 말이나 뱉었다.


“그, 그냥 학생회 활동하면 대학 갈 때도 좋다고 그러고..”

“너 대학 갈 거냐?”


???.. 내가 넌 줄 알아?


“너는 대학 안 갈 거야?”

“내 와꾸를 봐. 대학 갈 것 같이 생겼냐?”


알고 있으니 다행이다.. 라고 말할 뻔 했다. 정말 그랬다면 김유겸이 창밖으로 날 내던졌을지도 모른다. 김유겸이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 봤다. 얘가 무슨 약을 처먹고 이러는지 낱낱이 파헤쳐보겠다는 태도다. 김유겸의 의심을 피할 방법은 하나 밖에 없다. 진영선배가 말했듯이..


“너, 너도 할래?”

“..뭐를?”

“너도 같이 학생회 할래? 체육차장.. 너 체육 좋아하잖아.”


제발 아니라고 해줘.. 꺼지라고 해줘.. 너나 하라고 해줘..


“너, 너도 대학 가야지.”

“….”

“너 싸, 싸움 잘하니까 겨, 겨, 경호학과 같은 데는 어때?”


...난 이걸 말이라고 씨부리고 있는 거냐? 김유겸과 대학이라니.. 김유겸과 최영재만큼이나 안 어울리는 조합이다. 내 대책 없는 소릴 듣고 깝치지 말라며 대번에 책상을 뒤집어엎을 줄 알았던 김유겸은 의외로 조용했다. 착각인 거 같긴 한데.. 어쩐지 좀 얼이 빠져 보이기도 했다. 동공이 살짝 풀린 것이.. 너무 화가 나서 돌아버렸나?


“너 어디 갈 건데?”

“응?”

“대학 어디 갈 거냐고.”


그걸 내가 알면.. 여기서 이러고 있지 않지 않을까? 김유겸이 빨리 대답하라는 듯 눈썹을 찌푸렸다.


“목표는 없어..”

“빨리 정해.”


우리 엄마도 아직 그런 얘기를 하지 않는데 왜 니가?..


“나도 거기 가게.”

“..?”


뭔가.. 엄청나게.. 무섭고.. 불길하고.. 저주스러운.. 그런 얘기를 들은 것 같지만 넘어가자.. 곱씹지 말자..


“야.”


별안간 김유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신을 멍청한 표정으로 올려보는 내게 딱밤을 먹인다. 으악! 지는 장난일지 몰라도 난 아파죽겠다. 맞은 이마를 문지르면서 왜? 하고 물었다. 김유겸은 드물게 신이난 목소리로 외쳤다.


“가자! 학생회로!”


가자! 디지몬세계로!도 아니고.. 뭐냐? 2학년 층으로 올라가는 김유겸을 쭐래쭐래 따라갔다. 얘가 뭘 알고 가는 건지 의문이 들 때쯤 깨달아 버렸다. 김유겸이 진영선배 반으로 향하고 있단 걸. 너무 놀라서 엉겁결에 김유겸의 팔뚝에 코알라처럼 매달렸다. 제정신이었다면 절대 못 했을 짓이다.


“어, 어디 가는 건데?”

“학생회.”

“여기는 2학년 5반이잖아..”

“박진영 학생회잖아. 걔한테 말함 돼.”

“!!.. 그래도 등록은 고, 공식적인 데서 해야 하지 않을까?”

“아아~~ 박진영이 너 꼬드긴 건지 아닌지도 좀 알아보려고.”


딸꾹. 몸은 너무나 정직하다. 역시나 김유겸.. 거슬리는 거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난 김유겸의 한 마디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김유겸이 일찐모드를 장착하고 2학년 5반의 뒷문을 힘차게 열어 제꼈다. 쾅! 교실에서 히히덕거리던 2학년 선배들은 갑작스럽게 들린 굉음에 일제히 행동을 멈췄다. 교실 내의 모든 시선이 김유겸 쪽으로 파바박 박혔다. 김유겸은 그것들을 싹 다 무시하고 진영선배를 향해 일직선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뒷문 앞에서 얼어있던 나는 재빨리 임재범을 찾았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임재범은 보이지 않았다. 2학년 5반 선배들한테 연신 죄송하단 소리를 해가며 김유겸의 뒤를 쫓았다.


“서기 차장.”


김유겸이 나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체육 차장.”


이번에는 자기를 가리키면서 말했다. 무표정으로 일관하던 진영선배가 풉- 비웃음을 터뜨렸다.


“네가? 정말 할 맘 있어?”

“못할 건 뭔데요.”

“알았어. 등록은 해놓을 게. 영재도. 면접 있는 거 알지?”

“네.. 네에.. 감사합니다..”


김유겸의 마빡에 핏줄이 툭 튀어나왔다. 여유작작한 진영선배의 태도가 맘에 안 드나보다. 여차하면 큰 일 나겠다싶어 살살 김유겸을 달랬다.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김유겸은 들은 척도 안 했다.


“그리고 하나 더.”

“뭐가?”

“얘는 내 밥이니까 눈독들이지 마요.”

“..영재가 왜 네 밥이야?”

“아, 말이 많아.”


이로써 나는 김유겸피셜 김유겸의 좆밥이 되었다. 하나도 기쁘지 않았다. 김유겸이 싹퉁머리 없게 일갈하고 먼저 자리를 떴다. 나는 반 밖으로 나가는 김유겸과 앉아있는 진영선배 사이에서 어쩔 줄 모르고 쩔쩔맸다.


“와. 진짜 김유겸을 데려 올 줄은 몰랐어.”

“..죄송해요.”

“아니, 뭐가 죄송해. 놀라서 그런 거야.”

“그냥 물어본 건데.. 바로 자기도 한다고 그래서..”

“그러니까. 그게 놀랍다고. 쟤가 너 많이 좋아하나봐.”

“예????”


잘 못 들은 건가?


“아니야. 가 봐. 기다리겠다.”

“예.. 안녕히 계세요.”


잘 못 들은 거겠지.. 하하...... 진영선배한테 구십도로 꾸벅 인사를 하고 2학년 5반을 튀어나왔다. 그 때까지도 임재범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1학년 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에 도달했을 무렵 김유겸이 코너에서 불쑥 튀어나왔다.


“꺅!”

“꺅같은 소리 하네. 너 뭐했어. 박진영이랑!!! 내가 나가면 바로 따라 붙어야 될 거 아냐!?!?”

“이, 인사하고 나왔어.”

“인사를 시발 무슨.. 17초나 해. 뒤질래 진짜?”


내가 왜 이런 수모를 당하고.. 고초를 겪어야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 김유겸 말마따나 내가 쟤 밥이라서 그런 걸까?..


“내가 이번은 이렇게 넘어간다만 또 허튼 수작 부리기만 해.”

“응. 안 그럴게.”


그냥 귀신을 속일게.. 너 말고.. 그 편이 낫겠다.


“진짜 산 채로 씹어 삼켜 버릴 라니까.”


대체 누구를 씹어 삼킨다고 하는 줄은 몰랐지만.. 일단 그냥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나는 아니겠지라는 작은 희망을 담아..

















지각이다. 완전히 지각이다. 난 지각하는 게 싫다. 악랄하기가 김유겸보다 더한 학년부장은 지각한 등수대로 손바닥을 때린다. 난 맞는 게 싫다.


“기사님.. 문 열어주세요..”


그래서 쪽팔림을 무릅쓰고 막 출발하려고 출입문을 닫은 버스를 통통 두드렸다. 버스기사아저씨가 인상을 팍 쓰면서 문을 열어주었다. 버스는 언제나 그랬듯이 만원이다. 기분 탓일까? 오늘 따라 사람이 더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콩나물시루처럼 빽빽하게 들어찬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가 대충 자리를 잡았다. 지금도 버스가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이 포화상태인데 다음 정거장에서 사람들이 더 들이닥쳤다. 나는 이스트팩을 앞으로 멘 전투적인 여고생1에게 떠밀려 버스정중앙까지 날아갔다.


“미, 밀지마세요.. 으아아..!”


까딱 넘어지겠다! 하는 순간에 거짓말처럼 중심이 잡혔다. 아니다. 중심을 잡은 게 아니구나. 내가 어떤 사람의 가슴팍에 굴러들어갔고 그 사람이 내 무게를 버텨준 거구나. 나는 고마운 사람의 얼굴을 확인하기 위해 위를 올려봤다. 그리고 그대로 까무러칠 뻔 했다.


“헉.”


다행히 기절은 하지 않았고.. 대신 혀를 깨물었다. 반 뼘 거리에 무심한 표정의 임재범이 서 있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도 전에 버스가 급정거를 했다. 나는 다시 한 번 임재범 가슴팍에 온 몸을 기댔다. 임재범은 모든 사람이 넘어지고 구르는 버스 안에서 자유의 여신상마냥 홀로 고고하게 서 있었다. 임재범의 가슴근육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내 무게를 버티느라.. 그런 거 같다.


“죄, 죄송합니.. 아!”


재빨리 임재범으로부터 떨어지려했다. 헌데 그럴 수가 없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임재범의 가슴팍에 부비작거린 옆머리를 뗄 수가 없었다. 뭔가가 머리칼을 단단히 쥐고 놔주지 않았다. 억지로라도 떼어내려고 힘을 주니까 머리칼이 아니라 두피가 다 떨어질 것 같았다. 너무 아파서 코끝이 찡했다.


“가만 있어봐.”


임재범이 나직하게 말했다. 목덜미에 임재범 숨이 느껴져 얼굴이 폭발할 것처럼 달아올랐다. 임재범 앞에 앉은 여고생2가 우리를 질색팔색하는 눈으로 쳐다봤다. 왜.. 왜.. 뭐!


“단추에 머리카락이 엉켰어.”

“어, 어떻게 해..”

“기다려 봐.”


진짜루.. 진짜루.. 기절하겠다.. 심장이 너무 크게 뛰어서 신경이 쓰였다. 누, 눈치 채면 어떻게 하지? 내 귀에 닿은 임재범 가슴은 평온하기가 한 겨울 절간 같은데.. 말이다. 임재범은 한참을 단추와 씨름했다. 정말 단단히 얽혔는지 임재범이 답지 않게 고군분투했다. 그러는 새에 버스는 학교 앞에 섰다. 아이들은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양 썰물 빠지듯 빠져나갔다. 나랑 임재범은 하는 수 없이 그 상태 그 대로 버스에서 내렸다. 버스에서 내린 아이들이 경주마들처럼 교문을 향해 달려가는 와중에 우리는 정류장에 서서 얽긴 단추와 머리카락을 분리하기 위해 애썼다. 저 멀리서.. 딩~동~댕~동~ 50분을 알리는 학교종소리가 들렸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이거 그냥 잘라야겠다. 칼 있냐?”


필통에 커터 칼이 있긴 했다. 필기도 안 하는 주제에 어쩌다 글씨 쓸 일이 생기면 사이코처럼 4B연필만 고집하는 김유겸 때문에 가지고 다니는 물건이었다. 선뜻 칼 있다고 말하기가 두려웠다.. 왜냐면.. 칼을 건네주면 그 칼로 내 목을 따 버릴지도 모른다는.. 근본 없는 불안감이 불쑥 고개를 들었기 때문이다.


“가방에 있어요.. 필통 안에..”


하지만 딱히 수가 없었다. 임재범이 내 가방 문을 열고 소지품을 뒤적여 커터칼을 꺼냈다. 드르륵- 커터 칼 올라가는 위협적인 소리가 들렸다. 저걸로 내 머리를 잘라버리겠지.. 땜빵이 얼만할까..? 너무 크지 않았으면 좋겠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처분을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야. 여기.”


임재범은 1초 만에 도로 커터칼을 건넸다. 난 후다닥 떨어져 커터칼을 건네받고 머리통을 만져보았다. 땜빵대신에 단추가 손에 걸렸다. 놀라서 임재범을 쳐다보았다. 임재범의 두 번째 단추가 사라져있었다. 내 머리카락 대신 자기 단추를 자른 것이다. 뭐랄까.. 임재범에게 이런 상식과 배려가 존재하리라고 생각해본 적 없었기에.. 크나큰 충격을 받았다.


“안 가냐?”

“아, 아뇨!”


학교를 향해 달리는 임재범을 따라 뛰었다. 교문에 들어설 때까지 얼떨떨한 기분은 가시지 않았다. 그리고 교문에 들어섰을 때, 어마무시하게 많은 수의 지각생들을 보고 정신이 퍼뜩 들었다. 아까 학년부장이 지각한 등수대로 손바닥을 때린다고 했던가? 난 오늘 63등이었다. 62등은 임재범. 학년부장이 앞에서부터 아이들 손바닥을 갈기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맞은 아이들은 휙휙 자기 교실로 떠났다. 30등부터 울음이 터지기 시작했다. 45등인 여자아이는 통곡을 하면서 손바닥을 맞았다. 점점 숨통이 조여 오고 있다. 실시간으로 보니까 더 공포스러웠다. 게다가 나는 이 폭력적인 연출의 주인공이나 다름없는 63등이다..! 51등을 때리는 사이 아침 자습시간의 끝을 알리는 학교 종이 울렸다. 전교생이 고개를 내밀고 지각생들이 맞는 장면을 구경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각을 해보긴 했어도.. 10등 이상으로 넘어간 적은 없었다. 54등 여자애가 더 이상 못 맞겠다고 주저앉은 것을 학년부장이 진정시켜가며 때리는 걸 보고 식은땀이 주륵 났다. 55등부터는 가방을 내려놓고 맞으라고 그랬다.


“야!”


저 멀리서 김유겸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교생이 우리 반 교실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 아.. 제발.. 김유겸.. 아무 말도 하지 마.. 닥쳐줘..


“최영재!”


못 본 척 하는 걸 눈치 챘는지 김유겸이 사납게 내 이름을 외쳤다. 으악!


“너 왜 거기 있어!?!?!?”


이걸 대답 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떻게 해야 하지 고민하는 사이 학년부장이 나대신 외쳤다.


“지각 했다!!!!”


전교생이 창문에서 푸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김유겸이 창문에서 사라졌다. 설마.. 설마.. 여기로 오려고 그러나? 아니겠지?


“62등이니까 62대다.”


학년부장이 임재범의 손을 가져갔다. 임재범은 얼굴색하나 바뀌지 않고 62대를 맞았다. 다다다다다 다다다다다 다다다다다 다다다다다. 다 맞은 임재범이 쿨싴하게 가방을 챙겨서 농구장을 벗어나려했다.


“넌 꼴찌 63등이다.”

“네에..”


딱. 한 대 맞았는데 아파서 눈이 찡그려졌다. 와.. 이걸 62대나 더 맞아야해? 나 울면 어떻게 하지? 다다다다다 다다다다다. 한 열대쯤 맞았을 때부터 정신이 혼미해지고 몸이 베베 꼬였다. 스무 대가 되자마자 자리에 주저앉았다. 손바닥에 불 날 것 같아. 도저히 63대는 못 맞아. 아..


“안 일어서?”

“쌤.. 잠깐만여..”

“스읍~ 여자애들도 40대까지는 눈 하나 깜빡 않고 맞았어. 일어서라.”


이를 악 물고 일어났다. 다다다다다 다다다다다. 겨우 서른 대 채우고 다시 주저앉았다. 도저히.. 도저히 못하겠다. 너무 아파.


“우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나왔다. 아니에요. 하면서 일어나려는데 누군가 내 앞을 가로막았다. 임재범이었다. 임재범이 학년부장 앞에 자신의 손바닥을 드밀었다. 아니, 이게 무슨..?


“얘 저 때문에 지각했어요.”

“뭐?”

“저 때문에 지각했으니까 나머지 제가 맞을게요.”

“헐.. 쌤 아니에요. 제가 맞을게요!”


내가 앞으로 나서려 하니까 임재범이 팔을 들어 나를 제지했다. 그 때 학교 중앙현관에서 김유겸이 눈썹 휘날리며 달려오는 게 보였다.


“제가 맞는다구요.”


학년부장이 때리길 망설이자 임재범이 반항기를 섞어서 말했다. 그 말투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학년부장이 매를 세게 휘둘렀다. 따악!! 맹세코 오늘 맞은 애들 중에서 제일 세게 맞았을 거다. 그리고 저런 강도로 앞으로 남은 31대를 맞는다면 임재범 손바닥이 남아나질 않을 거다.


“헉. 쌤! 쌤! 제가 맞을게요! 제가 늦은 거잖아요!”


임재범이 다시 한 번 나를 밀어냈다. 나는 임재범의 팔뚝을 잡고 뒤로 당기려했다. 근데 갑자기.. 너무 미안하고.. 당황해서.. 그래서 눈물이 울컥 솟았다. 그래서 그냥 임재범의 팔뚝을 끌어안고 엉엉 울어버렸다.


“쌤.. 때리지 마세여.. 제가.. 늦은 거 잖아여.. 선배는.. 아무.. 잘못.. 허어어어... 잘.. 으어어어... 잘못... 흐어... 없... 히끅... 없.. 어요.. 응어어어어!!”


내가 대성통곡을 시작하자 임재범도.. 학년부장도.. 그 외 창문에 매달린 전교생들도.. 할 말을 잃고 나를 쳐다봤다. 이렇게나 많은 머리통들이 모여 있는데.. 운동장에는 내 울음소리만 메아리쳤다.


“너.. 왜 우냐?”


임재범이 당황해하면서 물었다. 임재범을 당황시키다니.. 난 생각보다 대단한 놈일지도 모른다.


“저도 모르겠..끄읍..끕..어요..으어어...”


나는 임재범을 붙들고 징징댔다. 내가 내 입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임재범은 내가 숨넘어갈 듯 우니까 반대편 팔을 들어 내 등을 토닥여줬다. 우씨.. 뭐지..? 아까 단추도 그렇고.. 좀 이상하다. 임재범은 내 생각보다 다정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하긴 나는 임재범을 제대로 겪어본 적이 없다. 그 때 술집에서 욕하고 남들과 싸우는 거, 그거 하나보고 임재범을 쓰레기 취급했다. 사실 임재범은.. 생각해보면 나 쥐났을 때 다리도 주물러줬고, 배식할 때 머리 수건도 다시 씌워줬고, 내가 먹고 싶어 하던 메론맛우유도 줬고.. 그리고..


“흐어어엉!!”


그렇게 생각하니까 더 미안하고 서러워져서 나는 아예 임재범 품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야.. 야.. 최영재..”


임재범이 당황하여 내 이름을 불렀다. 그 목소리까지 슬프게 느껴졌다. 나는 미쳤다. 미친 게 분명하다. 이대로 진정하지 못한다면 내일 자퇴서를 작성해야할지도 모른다.


“일단 그만 울어 봐. 어?”


임재범이 나를 떼어놓고 눈을 맞추면서 그렇게 말했다. 나는 고개를 완전 세게 위아래로 끄덕였다.


“나 지금 진짜 쪽팔리니까.. 이거 내가 빨리 맞고 끝내면 안 되냐?”

“그래도..”

“맞는 거는 하나도 안 아파. 그냥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그래.”

“..네에.”


재범선배가 다시 학년부장에게 손을 내밀었다. 나는 재범선배 옆에 찰싹 달라붙어 학년부장을 노려봤다. 학년부장은 남은 서른한 대를 빠르고 깔끔하게 끝냈다. 자기도 내심 이 상황이 부담스러웠나보다.


“죄송해요.”

“됐어. 들어가라.”


재범선배가 가방을 들쳐 메고 농구장을 떠났다. 언뜻 보이는 재범선배의 손바닥은 금방이라도 피를 토할 것 같은 붉은 색이었다. 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최영재.”


허나 미안하고 울적한 기분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뒤쪽에서 김유겸이 음산한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기 때문이다. 흠칫! 어깨를 떨고 뒤를 돌아봤다.


“일루와.”


김유겸이 저승사자처럼 서서 손짓했다. 김유겸이 서 있는 농구골대가 지옥으로 향하는 문처럼 보였다. 운동화를 질질 끌면서 김유겸 앞으로 다가갔다. 곧 떨어질 불벼락을 기다리며 김유겸 앞에서 땅만 보고 서있었다.


“….”

“….”


김유겸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우웅? 나는 용기를 내어 고개를 살짝 들어봤다. 성난 도깨비 표정일줄 알았던 김유겸의 얼굴은 차분하게 가라앉아있었다. 턱에 힘이 들어가 있는 거 빼면 무표정이랑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근데 난 이게 더 무서웠다. 차라리 막 화내고 소리 지르고 그러면 잘못했다고 싹싹 빌고 말았을 텐데.. 김유겸이 등을 휙 돌려 운동장을 가로질러 갔다. 내가 따라오는지 확인도 안 하고 말이다. 나는 눈치를 보면서 김유겸 뒤로 따라붙었다. 김유겸은 교실에 들어가서도 아무 말이 없었다. 내 쪽으로는 시선도 던지지 않았다. 책상 위로 쿠웅! 엎어지는 김유겸의 머리통 깨지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얘가.. 얘가 도대체 왜 이럴까? 신종 괴롭힘 수법인가?


“저기.. 김유겸..”


김유겸은 들은 척도 안 했다. 검은 오라를 내뿜는 김유겸 때문에 울 반 애들은 질식하기 직전이었다. 애들이 눈빛으로 은근하게 나를 힐난했다. 김유겸 좀 어떻게 해보라고..


“유, 유겸아..”


쿠웅!! 쿠웅!! 쿵!! 쿵!! 쿵!!


“깩!”


김유겸이 난데없이 책상에 머리를 박아대기 시작했다. 진심 귀신 들린 사람처럼 책상에 이마를 쿵쿵 박는데.. 이건 보통 미친놈이 아니구나 싶었다. 엑소시스트에 나오는 소녀를 방불케 하는 모습에 겁을 집어먹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김유겸으로 부터 떨어졌다. 옆을 보니 주변에 있던 반 애들도 이미 다 일어나서 대피한 상태였다. 심장이 벌렁벌렁했다. 김유겸이 책상에 머리를 박은 자세 그대로 고개만 내 쪽으로 돌렸다. 나를 비롯해 서 있던 반 아이들이 한 걸음 뒤로 물러났다. 악의 축.. 대마왕이 따로 없다. 김유겸은 재범선배의 손바닥만큼이나 빨갛게 달아오른 이마를 내보이면서 입을 열었다.


“나 왜 이렇게 열이 받지?”


그걸.. 나한테 묻냐.. 왜.. 니 성질 드러운 걸 왜 나한테 물어..


“넌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을까.”

“미, 미안.”


반 아이들의 성화에 떠밀리듯 사과를 했다. 김유겸이 나 들으라는 듯 푸후- 한숨을 내쉬었다.


“와서 앉아.”

“..응!”


일단은 자리로 가서 앉았다. 좀 만 더 놀라면 오줌도 쌀 수 있을 것 같다.


“담에 또 나 열 받게 하면 그 땐 나 너한테 뭔 짓 할지 몰라. 그것만 알아둬.”


김유겸이 무시무시한 경고를 날리고 눈을 감았다.


















김유겸과 나는 학생회에 무혈입성 했다. 김유겸 같은 경우는 김유겸과 같은 체육차장에 지원했던 후보들이 김유겸을 보고 알아서 면접 불참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고, 나 같은 경우엔.. 나 같은 경우는.. 어찌된 일인지 잘 모르겠다. 서기 차장 면접에는 예쁘고 귀엽고 글씨도 끝내주게 잘 쓸 것 같은 여자애들이 많이 와서 면접을 봤다. 남자는 나 밖에 없어 당연히 떨어지겠거니 했다. 그대로 떨어졌으면 너무나도 좋았을 것을.. 도대체 왜! 왜! 내가 붙은 거냐고오~


“자! 이거 익명 설문조사니까 너무 부담 가지지 말고 솔직하게 써서 내~”


부회장선배가 학생회에 새로 들어온 신입생들에게 갱지를 나눠줬다. 지금은 특별활동시간, 학생회 전원은 다용도실에 모여앉아 신입생 환영회를 하고 있다.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재범선배와 진영선배의 모습이 보였다. 둘은 또 나란히 앉아 귓속말을 하며 지들만의 세계를 뽐내는 중이었다. 괜히 짜증이 났다. 흥. 조심조심 그 둘을 흘겨보았다. 앗, 진영선배랑 눈이 마주쳤다. 진영선배가 환하게 웃으면서 손을 흔들었다. 나는 엉거주춤 목례를 했다. 진영선배 옆 재범선배가 무슨 일인가.. 이쪽으로 시선을 돌리는 게 보였다. 재범선배는 나와 김유겸을 확인하더니 별다른 제스츄어 없이 다시 진영선배에게 말을 걸었다. 점심 먹은 게 문제가 있나?.. 속에서 뭔가 갑자기 울컥 하고 올라왔다.


나는 받아든 설문지를 아주 솔직하게 작성했다. 읭? 익명인데 왜 위에 이름 쓰는 칸이 있지? 투표처럼 진행되는 건가? 별 생각 없이 내 이름을 적어 넣고 김유겸이 볼까봐 설문지를 뒤집어 놓았다. 오늘의 MC격인 부회장선배가 신입생들이 작성한 설문지를 모두 걷어갔다. 부회장선배는 갱지를 탁탁 정리하다가 말고 오잉?하는 표정을 지었다. 선배의 얼굴에 짓궂은 미소가 나타났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 쪽으로 집중되었다.


“아놔. 말귀 못 알아먹는 신입생이 하나 있네. 익명이라니까 이름을 대문짝만하게 써놓으면 어떻게 해.”


헉.


“응? 영재야?”


헉!!!!!!!!!!!!!


“저, 저 몰랐어요. 이름 칸이 있길래! 저 주세요!”

“에이이~ 줄 거면 말하지도 않았지! 우리 영재꺼 한번 볼까요?”


난리가 났다. 당장 까보라면서 다들 책상을 두들기고 소리를 지르고.. 난 식은땀이 삐질 났다. 안 돼!! 진짜 안 돼!! 나 진짜 솔직하게!!


“자~ 1번. 친해지고 싶은 선배!”

“아악!”

“임재범.”


솔직하게 썼단 말이야.........................................................................................................


“….”, “….”, “….”, “….”, “….”, “….”


어마어마한 침묵이 흘렀다. 무거운 공기가 다용도실에 내려앉았다. 예쁜 미소를 지으며 영재를 놀리지 말라던 진영선배도, 그 옆에서 심드렁히 핸드폰을 만지던 재범선배도.. 그리고 팔짱끼고 뭐라 지껄였는지 함 봐보자던 김유겸도.. 싹 다 굳어버렸다.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다.


“재, 재범이랑 친해지고 싶었구나.. 영재가.. 자자! 그럼 2번! 제일 잘생겼다고 혹은 예쁘다고 생각하는 선배!”

“….”

“임재범.”


접시 물에 코 박고 죽고 싶어!


“3번 후배를 잘 챙겨줄 것 같은 선배. 임재범.”

“….”

“4번 이성친구에게 다정할 것 같은 선배. 임재범.”

“….”

“5번 임재범. 6번 임재범. 7번 임재범.. 영재야. 너 재범이 좋아하냐?”

“아, 아니에요!!”


창피해서 죽을 것 같다. 내일은 진짜 자퇴서를 쓸 거다. 아니다. 자퇴서 말고 유서를 써야겠다.


“엇, 여기 다른 선배이름 하나 나왔네요. 10번 제일 무서운 선배.”

“아악! 제발!”

“완전 의외입니다. 영재 사람 보는 눈이 좀 독특하구나?”

“안돼요!”

“10번 제일 무서운 선배. 박진영.”


진영선배가 나를 쳐다봤다. 학생회에 들어오라고 제안하던 그 때와 똑같은 눈빛으로. 다정함이 사라진 진영선배의 눈은 차갑고 날카로웠다.


“어어? 진영이 열 받은 거야?”


부회장선배가 그렇게 묻자 진영선배가 표정을 풀고 사르르 웃으면서 아니라고 손을 내저었다. 그리고 이제 영재를 그만 괴롭히라며 부회장선배의 손에서 내 설문지를 뺏어갔다. 나는.. 나는.. 집에 가고 싶었다. 창피하고, 무섭고, 놀라서.. 이게 다 꿈이었으면 싶었다. 하지만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신입생 환영회는 예정된 순서대로 진행되었다. 부회장선배가 얼굴이 하얗게 질린 내 쪽으로 다가왔다.


“이제부터 신입생들이 좋아하는 랜덤게임을 할 건데요~ 영재 고생했으니까 특별히 짝선배 고를 기회 줄게! 첫 번째는 빼빼로 게임이야.”


옆에서 김유겸이 벌컥 일어났다. 드르륵! 의자가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요란하게 났다.


“누구랑 할래?”


날 보고 있던 진영선배와 눈이 마주쳤다. 그 다음은 재범선배..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유겸 눈치를 봤다.


“에이 뭘 이걸 고민하나~ 빨리 정해. 안 그럼 내가 그냥 시킨다?”


입술이 바싹바싹 말랐다. 토하기 일보직전이었다. 부회장선배는 눈치가 황인 건지 옆에서 레이저를 뿜어내는 김유겸이 보이지 않는 건지.. 어쨌든 신나서 제 할 말만 지껄였다.


“그럼 영재는..”


나는.. 왜.. 내가.. 왜..


“재범이랑 하자.”


으악!!!!!!!!!!!!!!!

@mysteryhomo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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