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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기 7

괴소문 (7)

삼이가 아픈 것 같다. 평소보다 움직임도 둔하고 입에다가 풀떼기를 가져다대줘도 몇 번 오물거리다가 만다.


“삼아. 아파?”


겨울방학 내내 수위아저씨가 돌봐주셨다고 들었다. 아저씨가 뭔가 탈 날만한 음식이라도 준 걸까? 하나랑 둘이는 겨우내 잘 먹었는지 덩치가 더 커졌는데.. 이상한 일이다. 등을 돌리고 숨은 삼이의 엉덩이를 살살 긁었다. 삼이는 하지 말라는 듯이 몸을 더 웅크렸다. 어쩔 수 없이 삼이 앞에 풀떼기를 잔뜩 놓아두고 토끼사를 닫았다. 하나랑 둘이가 다 뺏어먹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아픈 삼이를 보니까 김태형이 떠올랐다. 김태형이 드문드문 학교를 나오는 탓에 토끼사 당번은 오롯이 내 몫이 되었다. 이번 주에는 벌써 세 번이나 학교를 빠졌다. 며칠 전에 다른 지역 군수님인가가 김태형을 불렀다고 마을이 발칵 뒤집어졌었다. 아마도 그 일 때문인가 보다. 김태형이 병 고치는 신통한 아이라는 건 이제 우리 마을 사람 모두가 인정하는 사실이다. 김태형에게 병을 고침 받은 어른들은 김태형을 ‘경외한다.’라고 말했다. 나는 경외라는 단어를 몰라 국어사전을 뒤져 뜻을 찾아보았다.


경외하다 (敬畏--) [경ː외하다, 경ː웨하다]

[동사] 공경하면서 두려워하다.


다 큰 어른들이 손주벌인 김태형을 공경하고 두려워한다니 이해가 안됐다. 나도 가끔 김태형 때문에 등골이 오싹할 때가 있긴 하지만 나는 애구, 어른들은 어른이잖아.


“태형아. 지민이 왔다.”


교실로 돌아오니 김태형이 있었다. 아이들이 썰물 빠지듯 빠져나간 교실에는 담임선생님과 김태형 둘 뿐이었다. 김태형이 담임선생님한테 숙제한 것을 검사받고 있는지 선생님 앞에 공책이 펴져있었다. 슬쩍 보니 동그라미가 가득이다.


“학교 다 끝났는데 뭐 하러 왔어?”


숙제검사야 내일 받아도 되는 일이다. 종례도 마치고 청소도 다 끝난 시각에 굳이 등교한 김태형이 바보 같았다. 나라면 절대 안 온다.


“너 오늘 학원 안 가는 날이잖아. 같이 놀려고..”


김태형은 한글과 함께 말도 제법 늘어 전처럼 에베베 거리지는 않았다. 얘기가 길어지면 말꼬리를 흐리는 버릇은 여전하지만 적어도 말더듬이는 아니니 훨씬 보기가 좋았다. 담임선생님이 책상에서 막대사탕 두 개를 꺼내어 줬다. 우리는 사이좋게 하나씩 나눠 물고 교실을 나섰다. 사탕은 원래 칭찬받을 일을 했을 때만 주는 거다. 요즘 어른들은 김태형만 보면 뭐가 주고 싶어서 안달 나 했다. 김태형을 데리고 동네 한 바퀴를 돌면 여기저기서 공짜 군것질거리들이 건네어졌다.


“오늘은 여기서 놀자.”


우리 초등학교 운동장 구석에는 정글짐, 구름다리, 철봉, 미끄럼틀 등이 있다. 대부분이 낡고 칠이 벗겨져 아이들은 여기서 잘 놀지 않는다. 오늘따라 김태형을 데리고 돌아다니기가 싫었다. 실은 며칠 계속 그랬다. 하도 사람들이 김태형에게 말을 붙이니까 좀 피곤했다. 기분도 이상하구. 전엔 김태형이랑 놀지 말라고 했으면서.


“너 탈출 알아?”

“탈출?”

“엉.”

“몰라.”

“숨바꼭질이랑 비슷한 거야. 잠깐만 기다려봐.”


나는 화단 주변에서 쓸 만한 나무 막대기하나를 주워와 미끄럼틀 바로 옆에 작은 원을 그렸다.


“술래가 눈을 감고 다른 애들을 찾는 거거든? 술래 아닌 사람들은 미끄럼틀 안에서만 있어야해. 술래를 피해서 숨어 있다가 저기 원을 터치하면 탈출하는 거야. 그럼 술래가 져. 알겠어?”

“응응.”


탈출은 여럿이서 하는 놀이다. 5학년 때는 경재네랑 맨날 이 놀이를 했다. 김경재는 술래를 할 때마다 눈을 감은 척 실눈을 뜨고 나부터 잡으러 다녔다. 잡힌 내가 왜 반칙을 하냐고 따지면 반성은커녕 오히려 자기가 언제 그랬냐며 시치미를 떼서 자주 싸웠었다.


“가위바위보해서 술래 정해야해. 가위, 바위, 보!”


내가 가위 김태형이 바위를 냈다. 나는 김태형한테 눈을 감고 30초를 셀 테니 아무데나 숨으라 했다. 김태형이 알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 삼~ 이~ 이일~ 땡! 나 찾으러 간다?!”


미끄럼틀의 구조는 눈 감고도 훤했다. 일단 아까 김태형이 서있던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니나 다를까 몇 걸음 떼지도 않았는데 김태형의 숨소리가 들렸다. 도망가겠지? 손을 쭉 뻗어보았다. 손에 바로 김태형의 잠바가 잡혔다. 감았던 눈을 떴다. 김태형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가만히 서 있으면 어떻게 해! 도망가야지!”

“움직여도 되는 거야?”

“여기 가만있으면 저 원을 어떻게 찍어? 막 뛰고 매달리고 그러는 게임이라구.”

“몰랐어.. 미안.”

“우쒸~ 내가 한 번 봐준다. 대신 다음에 너 술래 할 때도 나 한번 봐줘야해?”

“응. 알았어.”

“진짜다?”

“응응. 봐줄게.”

“약속했다?”

“난 약속 꼭 지켜.”


그렇게 말한 김태형은 두 번째에도 너무나 쉽게 잡혀 내 김을 빠지게 했다. 긴박감이 넘쳐야 재미있는 게임이라 금세 흥미를 잃어버렸다. 에잇! 탈출은 집어치워야겠다. 영 말귀를 못 알아듣는 김태형을 데리고 구름다리로 갔다. 김태형에게 시범삼아 구름다리 타는 법을 보여주었다. 김태형은 곧잘 따라했다. 우리는 손이 시커멓게 될 때까지 구름다리를 탔다. 김태형은 몇 번 만에 구름다리를 완주해 나를 시무룩하게 만들었다. 나는 아무리 노력해도 다섯 번째 칸이 한계인데 말이다.


“집에 갈래.”


괜히 심통이 나서 그렇게 말하자 김태형이 구름다리에서 뚝 떨어져 내 앞에 섰다.


“벌써?”

“응. 재미없어.”


내 말에 김태형이 안절부절 했다.


“다른 거 할래? 얼음땡?”

“둘이서 얼음땡을 어떻게 해. 둘이선 무궁화 꽃도 못하고 아무 것도 못해. 너 아는 놀이도 없잖아.”


말하고 보니 정말로 그랬다. 몇 달간 김태형과 둘만 어울려 다니느라 못한 것들이 많았다. 물론 김태형이 날 잘 따라서 뿌듯하고 기분이 좋은 건 여전하다. 하지만 경재네랑 놀 때처럼 신나는 감각은.. 글쎄다. 갑자기 경재, 재웅이, 영식이 등등이랑 우르르 몰려다닐 때가 그리워졌다.


“나도 컴퓨터 살까?”


김태형이 내 눈치를 보며 물었다. 김태형은 이제 컴퓨터 같은 걸 아무렇지도 않게 산다고 말 할 만큼 부자가 되었다. 그게 또 마음에 안 들었다.


“맨날 놀러 갈 수 있는 것도 아니면서.”


김태형은 말문이 막혔는지 어.. 어.. 거리기만 했다.


“우리 다른 애들이랑도 놀자. 맨날 우리 둘만 노니까 할 것도 없구..”

“난 너랑 노는 게 좋아.”

“그니까 나도 포함해가지고.”

“나는 너랑만 놀아도 괜찮아.”


내가 안 괜찮다고!


“에효.. 알았어.”

“나 재미없어?”


김태형이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또 불쌍한 얼굴이 됐다.


“네가 재미없는 게 아니라..”

“난 재밌는데”

“..나도 재밌는데 더 재밌을 수 있으니까”

“지금 최고로 재밌어.”

“더더 재밌을 수가.. 아, 됐어.”


말이 안 통하는 김태형 때문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김태형은 그런 내 기분을 눈치 챘는지 불안한 강아지처럼 내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얜 정말 왜 이럴까? 전에야 애들이 안 놀아줘서 왕따로 지냈다고 쳐도.. 이제는 안 그럴 수 있는데 왜 나랑만 놀려고 그러지?


“지민아. 지민아.”


김태형이 애타게 내 이름을 불렀다.


“다른 애들이랑 놀고 싶어?”


그렇게 물으면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보는 눈이 어른 같았다. 꼴깍. 나도 모르게 마른 침을 삼켰다.


“….”


솔직하게 그렇다고 말하기가 힘들었다. 입이 안 떨어졌다. 나보다 작은 김태형이 태산같이 크고 무겁게 느껴졌다.


“..안 그랬으면 좋겠어.”


김경재도 종종 나한테 다른 애들이랑 놀지 말라고 얘기하곤 했었다. 소풍 때 다른 애랑 짝을 하거나 지한테 말 안하고 영식이네 놀러 가기라도 하면 난리를 쳐 피곤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경재의 그런 태도가 짜증이 나는 한편 친구욕심을 부리는 유치함이 귀엽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이상하게 김경재 반 토막도 안 되는 김태형은 무섭기 만하다.


“다..”

“응?”

“..다음 주 수요일에 읍내에 장서니까 거기 가자. 너 오일장 한 번도 안 가봤지?”

“응!”

“맛있는 것도 많이 팔고 공연도하니까 재밌을 거야.”


김태형의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신난 표정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했다. 아까랑.. 지금이랑.. 둘 다 같은 김태형인데 꼭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왠지.. 어른들이 말한 ‘경외한다.’는 단어의 의미를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땅따먹기를 하다가 문득 올려다 본 하늘이 캄캄했다. 이크! 또 늦었다! 나는 바닥에 내팽겨 친 가방을 허겁지겁 멨다. 김태형이 나를 졸졸 따라왔다.


김태형과 헤어지고 나서 걸음을 재촉했다. 울 엄마는 학원가는 날 빼놓고는 캄캄할 때 들어오는 걸 봐주는 법이 없다. 내가 아직도 애긴 줄 아나봐. 집 앞 골목까지 헥헥 뛰어갔다. 대문 앞에 엄마가 나와 있었다. 엄마뿐만이 아니었다. 경재네 아줌마도 엄마 옆에 서서 골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아줌마가 이 시간에 무슨 일이지? 원래 자주 놀러 오긴 하지만 저녁 먹을 시간까지 있었던 적은 없는데.. 경재네 아줌마는 울상으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어머! 지민이 왔네! 지민아!”


엄마가 나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경재네 아줌마는 눈이 크게 뜨여선 내 앞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나는 속도를 늦췄다. 어느새 대문에는 아빠도 나와 있었다.


“너 왜 이렇게 늦게 왔어!”

“태.. 태형이랑 놀다가..”


내 입에서 태형이라는 소리가 나오자 경재네 아줌마가 어흐윽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줌마가 내 어깨를 붙들고 엉엉 울었다. 아줌마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몰라 당황스러워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눈물바람으로 몸을 못 가누는 아줌마를 부축했다. 아빠가 다가와서 내 손을 잡았다.


“아들. 태형이랑 놀다왔어?”


끄덕끄덕.


“밥은?”

“안 먹었어..”

“배고파?”


흘끔 아줌마 눈치를 봤다.


“아직 배 안고파..”

“그래. 일단 들어가자.”


아빠는 내 손을 붙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엄마에게 몸을 기대다시피 한 아줌마는 자기 집에 가지 않고 우리를 따라 들어왔다. 엄마는 아줌마를 거실 쇼파에 앉혔다. 밝은 데서 본 아줌마의 얼굴은 평소와 많이 달랐다. 고운 화장은 찾아 볼 수 없고 머리는 잔뜩 헝클어져있었으며 입술은 파리했다. 엄마가 아줌마 오른편에 앉았다. 아빠가 나를 아줌마 왼편에 앉히고 바닥에서 날 올려다봤다.


“아들. 아줌마가 너한테 부탁이 있대.”

“지민아.”


아줌마가 엉덩이를 움직여 내 쪽으로 바짝 다가왔다.


“지민아. 아저씨.. 아저씨 알지?”

“네.”


내가 경재네 아빠를 모를 리가 있나?


“아저씨가.. 많이 아파.”


아줌마는 또 울기 시작했다. 엄마가 크리넥스 휴지곽에서 휴지뭉텅이를 뽑아서 아줌마의 눈가에 대어줬다. 아줌마는 눈물을 닦을 생각도 안했다.


“아저씨가 지금.. 눈이 많이 아파.”

“..네?”


무슨 소린지 이해가 안 갔다. 아저씨는 본래 눈이 나빠 안경을 쓰고 다닌다. 거기서 더 나빠졌다는 소린가? 이런 얘길 왜 나한테 하지?


“이대로 두면 앞이 안 보이게 될 수도 있대.”

“벼, 병원에..”

“의사들도 고칠 수가 없대.”


아저씨 그럼 장애인 되는 거야? 앞이 안 보이면 장님이잖아. 심장이 팔딱팔딱 뛰었다.


“그럼 태형이! 태형이한테 고쳐 달라하면 되잖아요!”


아줌마 표정이 더 어둡게 변했다. 엄마는 아예 다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빠가 내 무릎 위에 손을 올려놓았다. 말을 못 잇는 아줌마 대신 아빠가 입을 열었다.


“태형이가 싫다고 그랬대.”

“어?”

“태형이가 하기싫다고 그랬대.”

“뭐 줘도?”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줌마가 내 손을 꼭 붙들었다.


“지민아. 아줌마가 부탁 좀 할게. 지민이가 태형이랑 친하니까.. 태형이한테 아저씨 고쳐달라고 해주면 안 될까?”

“제가요?”

“태형이가 지민이 많이 좋아하잖아. 고쳐달라고 얘기 좀 해주라. 아줌마 이렇게 빌게.”


아줌마가 내 손바닥에 얼굴을 묻었다. 나는 흠칫 놀라 손을 빼내려했지만 너무 단단하게 잡혀있어 그럴 수가 없었다. 손바닥이 아줌마의 눈물로 흥건해졌다.


“지민아.. 태형이 좀 설득해줘. 응?”

“….”

“지민이 갖고 싶은 거 있으면 다 해줄 테니까.. 아저씨 좀 도와줘.”


지켜보고 있던 엄마까지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아줌마가 울음 섞인 비명을 질렀다. 엄마가 아줌마를 내게서 떼어냈다. 아줌마는 엄마의 가슴에 안겨 오열했다.


“지민아. 태형이한테 말해 줄 수 있지?”


엄마가 어서 대답하라는듯한 눈으로 물었다. 아빠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고 나를 쳐다봤다. 당장 그렇게 하겠다고 말하는 게 맞는 것일 텐데.. 왜인지 “네.” 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내가 대답을 하지 않아서 아줌마의 울음소리는 더 커졌다. 하는 수 없이 아빠가 나섰다.


“애가 지금 어리둥절하고 당황해서 그러는 거 같으니.. 일단 오늘은 집에 가시고 애는 우리가 잘 설득해 볼게요.”


아빠가 데려다 주겠다며 차키를 들고 일어섰다. 아줌마는 엄마아빠의 도움을 받아 겨우 발걸음을 옮겼다. 대문을 나서기 전 아줌마가 나를 돌아봤다. 붉게 충혈 된 아줌마의 눈동자가 오랜 시간 내게 머물렀다. 꼭 나를 원망하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엉거주춤 배꼽인사로 아줌마를 배웅했다.


며칠 후, 아저씨가 녹내장에 걸렸단 소문이 온 동네에 파다하게 퍼졌다. 김태형은 또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경재가 날 찾아와 김태형이 언제에 학교에 나오냐고 물었다. 나도 잘 모르겠다고 하니까 입술을 꾹 깨물고 자리로 돌아갔다. 경재뿐만이 아니었다. 가는 데마다 내게 태형이한테 얘기 좀 잘 해달라고 부탁하는 소리들이 넘쳐났다. 마을 사람들은 겁에 질려있었다. 김태형이 경재아저씨처럼 자신들을 안 고쳐줄까 봐.


“결국 수술한다면서?”

“약이 아무 것도 안 드니 별 수 있겠어요?”

“수술하면 보이긴 하는 거야?”

“그런 개념이 아니라니까요. 그냥 더 안 나빠지려고 수술하는 거예요. 망가진 시력은 되돌릴 수 없고..”

“어휴.. 무슨 날벼락인가..”

“그러니까요.. 벌써 반 장님이 되었다던데..”


자다가 오줌이 마려워 쉬를 싸러 화장실로 가던 중이었다. 안방 문 틈 사이로 엄마아빠가 나누는 이야기가 새어나왔다.


“걔 엄마는?”

“안 그래도 경재엄마가 과부 찾아가서 다시 부탁을 해봤는데 지 엄마가 뭔 짓을 해도 애가 꼼짝도 안 하더래요. 경재엄마랑 어르신 둘이 거의 실성하다시피 전 재산 다 주겠다 그러고 걔네 엄마는 때리고 야단쳐도 입 다물고 버티더라는 거예요.”

“갑자기 왜 그러는 거야?”

“나도 모르죠. 그 과부도 지 아들 그러는 거 처음이라고 했대요.”

“전에는 쌀 한 가마니만 줘도 금방금방 고쳐 주더만..”

“애 엄마가 돈 맛본 뒤로부터 애도 이상해진 거 같지 않아요? 이제 지 맘에 안 들면 안 고쳐준다고 그럴 거 같아.”

“난리가 나겠군.”

“휴.. 경재엄마한테 면목 없어 죽겠어요.”

“뭔 소리야? 왜 면목이 없어?”

“그나마 지민이 믿어 본 건데.. 아무 것도 못해주니까..”

“이 여편네가 진짜! 우리가 뭐 잘못한 게 있어? 서운하게 해준 게 있어? 할 수 있는 내에서 최선 다했으니까 쓸데없는 생각 마. 그리고 얼굴을 못 보는데 어떻게 부탁을 해줘? 지금 계속 학교도 안 나온다며.”

“..그래도..”

“정 신경 쓰이면 나중에 지민이 데리고 그 집 한 번 가보든가.”

“그래야죠.”


엄마가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나는 발소리를 내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도로 방안으로 돌아갔다. 침대에 웅크려서 한참동안 아줌마와 김태형과 눈이 보이지 않게 된 아저씨를 생각했다. 오래도록 잠에 들 수 없었다. 다음날 이불에 오줌을 지렸지만 어쩐 일인지 엄마는 나를 크게 혼내지 않았다.















“삼아.”


이제는 불러도 들은 척도 안 한다. 풀떼기는 삼이의 관심 밖으로 밀려 난지 오래다. 삼이는 꼭 죽을 날 받아놓은 환자처럼 굴었다. 토끼사 구석에 웅크려서 아무리 쓰다듬어도 움직이지 않았다. 윤기가 좔좔 흐르던 까만 털이 푸석푸석해져 꼭 까만 옷에 먼지가 붙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삼이의 등을 계속 쓰다듬어주었다. 오늘 담임선생님한텐 삼이의 상태를 말해야겠다. 지난번엔 수위아저씨한테 삼이를 봐 달라 했더니 아무런 조치도 없이 끝이 났다.


“박지민.”


갑자기 이름이 불려 깜짝 놀랐다. 뒤돌아서 본 곳에는 김경재가 서 있었다. 청소는 벌써 다 끝났을 텐데 여긴 어쩐 일이지? 또 아빠 때문인가? 요새 하도 아저씨 관련해서 어쩌구저쩌구 얘기를 많이 들었던 터라 그런 생각부터 들었다.


“물어볼 게 있어.”

“뭔데?”


난 김태형 보지도 못했다니까 왜 다들 자꾸!


“김태형이 나 싫어하지?”

“….”

“어? 걔가 나 싫어하지?”

“….”

“싫어해서 우리 아빠 안 고쳐주는 거지?”


경재의 눈에 물기가 반짝거렸다. 목소리 끝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아빠가, 아빠가..”


경재는 울지 않으려고 말을 계속 멈추고 숨을 골랐다.


“아빠가 안 보인대. 내가 바로 앞에 있어도 안 보인대.”

“..수술하셨잖아.”


경재가 고개를 가로 저었다. 수술도 소용이 없었나 보다. 「망가진 시신경은 다시 회복되지 않아.」, 「약이란 약을 다 써봐도 소용이 없대.」, 「벌써 반 장님이 되었다던데….」. 어디선가 들은 목소리들이 환청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나 때문이지? 내가 싫어서 그런 거지?”


경재는 자신이 김태형한테 사과를 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싶나보다.


“나 때문이야. 맞지?”

“..그런 말은 안했어.”


널 싫어하는지 어떤지 모르겠어. 김태형은 다른 사람들한테 별로 관심이 없거든. 경재는 내 말을 듣더니 자리에 주저앉았다. 나는 놀라서 김경재한테 달려갔다. 김경재가 나를 쳐다봤다. 경재의 얼굴에 절망이 가득했다.


“어떻게 해? 걔가 안 고쳐주면 어떻게 해?”

“내가.. 잘 말해줄게. 내 말은 잘 들어. 걱정 마.”


경재를 진정시키기 위해 한 말이 꽤나 효과가 있었다. 김경재가 다리에 힘을 주고 일어났다. 비틀비틀 거리는 경재를 부축해 교실로 올라갔다. 담임선생님께 말해서 경재아줌마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교실에 도착하니 어찌된 일인지 아이들이 집에 안 가고 죄다 교실 뒷문에 몰려있었다. 애들은 교실의 한쪽을 눈으로 흘기면서 자기들끼리 속닥대는 중이었다. 까치발을 들어 뒤통수 너머를 보았다. 김태형과 눈이 마주쳤다. 쿵, 하고 심장이 크게 울렸다.


“지민아!”


김태형이 밝게 웃으면서 내 이름을 불렀다. 막 교실로 들어서는 나와 경재 앞으로 포르르 달려왔다.


“토끼사 갔었어? 미안해. 나 또 늦게 와서.. 혼자 했지?”


김태형은 기분이 굉장히 좋은 것 같았다. 들뜬 표정으로 연신 무슨 말을 조잘조잘 댔다. 머리가 산만해서 김태형의 얘기가 하나도 귀에 제대로 들어오지 않았다. 김태형은 자신을 동물원 원숭이마냥 구경하고 있는 반 아이들과 내 옆에서 부들부들떠는 김경재가 보이지 않는 것처럼 굴었다. ..아니, 진짜 안 보이나보다. 어떻게 저렇게 태연하게.. 어떻게..


“야. 김태형.”


김경재가 김태형을 불렀다. 감정을 꾹꾹 눌러 담은 목소리였다. 날 향해 호선을 그리던 김태형의 눈이 점점 사그라들더니 이내 무심한 눈빛으로 김경재를 올려다봤다. 일촉즉발의 상황이란 게 이런 걸까? 나를 포함한 반 아이들 모두가 숨을 죽이고 김태형과 김경재를 주시했다.


“왜.. 왜 우리 아빠..”


김경재는 김태형에게 주먹을 날리지 않았다. 화도 내지 않았다.


“왜 우리 아빠 안 고쳐줘?”


대신에 눈물을 터뜨렸다. 내 앞에서 잘 참아낸 눈물이 김태형 앞에서는 속수무책으로 넘쳐흘렀다. 경재가 우는 건 일곱 살 이후로 처음 본다. 다른 아이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경재는 우리 동네에서 제일가는 부잣집 아들이고 또래들 사이에선 골목대장이다. 그런 경재가.. 김태형 앞에서 떼를 쓰며 운다. 아빠를 고쳐달라고. 모두는 할 말을 잃었다. 뒤에서 수군대던 목소리들도 싹 다 사라졌다. 적막한 교실에 경재의 울음소리만 메아리처럼 반복되었다.


“고쳐줘. 아빠.. 고쳐줘! 할아버지는 고쳐줬잖아! 돈도 줬잖아!”


경재가 지르는 악다구니를 지켜보던 김태형이 천천히 입술을 뗐다.


“싫어.”


단 한마디에 김경재는 와르르 무너졌다. 분노한 김경재가 김태형에게 달려들었다. 김태형의 볼에 주먹을 꽂아 넣었다. 불시에 구타를 당한 김태형은 교실바닥에 쓰러졌다. 여자아이들 몇이 담임선생님을 불러오겠다고 뛰쳐나갔다. 나를 비롯한 남자아이들은 싸움을 말리기 위해 김경재의 팔다리를 하나씩 붙들었다. 김태형의 코에서 코피가 났다. 김태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김경재의 팔을 붙들고 있는 날 물끄러미 본다.


“지민아. 오늘 오일장 가기로 했잖아.”

“….”, “….”, “….”


시장 바닥처럼 소란스러웠던 교실이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 김태형이 코피를 소매에 슥 닦고 날 향해 다가왔다.


“읍내에 장 선다고 놀러가자고 그랬잖아. 가자. 빨리.”


‘경외하다.’라는 단어가 또 다시 떠올랐다. 그 단어는 신기하게도 안에 ‘두려워하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저번 놀이터에서처럼 김태형이 낯설게 느껴졌다. 그래서 다가오는 김태형으로부터 한 발 물러났다. 김태형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왜 그러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본다.


“..아저씨 고쳐줘.”

“….”

“아저씨 고쳐주면 갈게.”


내가 나설 때라고 느꼈다. 이제 아이들의 눈은 내게로 옮겨졌다. 김태형은 내 얘길 듣더니 안면을 싹 굳혔다. 나에게는 처음 짓는 표정이었다. 나는 무서워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기를 쓰고 버텼다.


“그건 안 돼.”


여기저기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내가 부탁해도 소용이 없다니. 오한이 들어 어깨를 부르르 떨었다. 나도 소용이 없어. 아저씨는 진짜 장님이 되는 거야. 앞으로는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나면 어쩌지? 김태형이 지 맘에 안 든다고 사람들을 안 고쳐주면.. 어떻게 되는 거지? 속이 어지러워서 토가 나올 것 같았다.


“다, 다 네 맘대로냐?!”


김경재의 꼬붕격인 민식이가 김태형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민식이는 김경재를 위해 제 소임을 다하는 중이었다. 두려움에 떨면서도 김태형에게 맞서는 거 말이다.


“이제 다 네 맘대로 할 거냐?! 니가 마음에 들면 고쳐주고! 안 들면 안 고쳐줄 거야?!”


김태형이 싸늘한 눈초리로 민식이를 쳐다봤다. 피딱지가 진 입술이 천천히 떨어졌다.


“어.”

“….”, “….”, “….”

“이제부터 그럴 거야.”


늘 당하기만 하던 김태형의 첫 번째 선포였다.

@mysteryhomo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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