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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통기 8

괴소문 (8)

김태형의 선포는 목격자들에 의해서 마을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아이들은 나팔수가 되어 저마다의 상상력을 덧붙인 이야기를 전했다. 입이 두 개 이상 모이는 곳에는 무조건적으로 김태형의 이름이 오르락내리락 했다. 엄마아빠는 외출만 하고 돌아오면 내게 그 날 있었던 일을 추궁했다. 마을 사람에게 이러이러한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이냐고 물었다. 엄마아빠로부터 전해 듣는 이야기는 하나같이 해괴했다. 그랬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니었던 것 같기도 한 얘기들을 곱씹고 있자면 그 날의 일이 머릿속에서 잔뜩 뒤엉켰다. 하지만 모든 이야기 속에서 하나는 확실했고 나도 그건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다. 김태형은 이제 선택을 한다고 했다. 자기가 고치고 싶은 사람을.


김태형을 마을을 난장판으로 만들어놓고 또 일주일째 학교를 빠지고 있다. 접때 김태형에게 당뇨병을 고침 받은 지방 군수님이 서울에 더 높은 분들을 소개해주셨다는 소식이 들렸다. 군수님보다 높은 분들이라니 감도 오지 않았다. 티브이 뉴스에 나오는 국회의원쯤 되려나? 아님 장관? 어른들 사이에서도 추측만 무성할 뿐이었다.


“아빠. 나 학교가기 싫어.”


늦잠을 자 아빠의 트럭을 타고 등교하는 길이다. 사실 눈은 제 시간에 뜨여졌다. 학교에 가기 싫어서 일부러 자는 척하고 늦장을 부린 거다. 그 때문에 아침 내내 엄마의 꾸중을 잔뜩 들었다.


“왜?”

“…애들이 따돌려.”

“애들.. 누구.”

“그냥 다. 김태형 때문인 것 같아.”


아빠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김태형 때문에 내 입장이 아주 난처하게 됐다. 아이들은 내가 김태형의 마음을 바꾸는 데에 소용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까 걔들 입장에서 나는 쓸모가 없어져 버린 것이다. 김경재를 비롯한 아이들은 나를 끈 떨어진 연 취급했다. 혹시나 김태형에게 밉보일까봐 대놓고 괴롭히고 때리진 않았지만 철저히 무시하고 무리에서 제외시켰다. 그게 벌써 일주일째다. 김태형에게 직접적으로 풀지 못하는 울분을 나를 따돌림으로써 풀려고 했다. 이제는 내가 교실의 외딴 섬이 되어버렸다.


“그래도 학교는 가야지..”

“진짜 싫단 말이야.”

“조금만 참아봐. 싸우지 말고. 아빠가 선생님이랑 얘기해볼게.”

“선생님도 똑같아.”

“박지민.”

“아빠. 우리 이사 가면 안 돼?”


이사란 말에 앞을 주시하고 있던 아빠의 눈이 내 쪽으로 향했다.


“우리도 서울로 이사 가면 안 돼? 응?”


아빠는 오래도록 대답이 없었다. 그러는 사이 차가 교문 앞에 섰다. 나는 죽상을 하고 조수석에서 버텼다. 내리기가 싫었다. 아빠가 나를 살살 달랬다.


“일단 오늘은 학교 가자. 이사는 아빠가 생각해볼게.”

“뻥.”

“진짜. 약속할게. 자.”


아빠가 내 손에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나는 복사, 도장, 싸인까지 마치고 나서야 트럭에서 내렸다. 교문 앞에서 뒤를 돌아봤다. 아빠가 잘 다녀오라고 손을 흔들고 있었다. 나도 마주 손을 흔들고 교문으로 들어갔다. 복도에서부터 교실 분위기가 수선스러운 게 느껴졌다. 아니나 다를까 김태형이 오랜만에 등교를 했다. 김태형은 당연스럽게도 내 옆자리에 앉아있었다. 내가 교실에 들어서자 모두의 눈이 내 쪽으로 쏠렸다.


“지민아!”


김태형은 날 발견하더니 입 꼬리가 귀에 걸려선 내 쪽으로 뛰어왔다. 흘긋 김경재를 확인했다. 김경재는 부리부리한 눈으로 김태형과 나를 노려보고 있는 중이었다. 김경재의 노골적인 적의, 김태형의 눈치 없는 해맑음, 구경꾼들의 감시하는 눈초리가 모두 나를 향해있었다. 교실에 들어가기가 싫었다. 그렇다고 도망칠 수도 없었다. 학교에 오지 말 걸 그랬어. 아프다고 꾀병을 부릴걸 그랬어.


“….”

“지민아?”


내가 대답을 하지 않자 김태형이 물음표를 띄우고 나를 살펴보았다. 굳은 내 표정을 확인한 김태형이 내게로 한 발짝 다가왔다. 나도 모르게 주춤 뒤로 물러났다. 김태형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그라들었다. 나는 김태형을 지나쳐 자리에 가 앉았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지나친 자리에서 얼마간 서 있던 김태형이 뒤늦게 자리에 와서 앉았다. 김태형이 뭔가 말을 하려 입을 벌렸을 때, 앞문에서 담임선생님이 등장했다. 나는 번쩍 손을 들고 앞으로 나갔다. 김태형의 눈동자가 내 뒤통수에 들러붙는 느낌이 들었다.


“선생님. 저 아파요. 양호실에 가도 돼요?”


담임선생님의 눈이 김태형을 훑었다. 아프다고 한 건 난데 김태형 눈치를 보는 것이다. 울고 싶어졌다. 기분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양호실 갈래요.”


내가 울먹이자 담임선생님이 난감해했다. 나와 김태형을 번갈아 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태형아. 지민이 양호실에 데려다 줄래?”


드르륵. 김태형이 의자를 끌며 일어났다. 나는 돌아보지 않고 곧장 앞문으로 뛰쳐나갔다. 담임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지만 발을 멈추지 않았다.


양호선생님은 내 귀에 체온계를 대보더니 미열이 있다고 그랬다. 꾀병인 걸 들켜 쫓겨날 까봐 잔뜩 겁을 집어먹고 있었는데 다행이었다. 양호실 가장 구석에 위치한 침대에 자리를 잡았다.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아무 것도 생각하기가 싫고 그저 도망만 치고 싶었다. 잠이 몰려온 것은 순간이었다. 한 교시의 파종이 울릴 때마다 번뜩번뜩 정신이 들었다가 다시 아득해졌다가 그랬다. 잠자리가 뒤숭숭해서 계속 선잠을 잤다. 점심시간 종이 길게 울리는 걸 들으며 완전히 잠에서 깼다. 양호선생님이 점심을 드시러 나갔는지 양호실 안은 고요했다. 배가 조금 고팠지만 급식을 먹으려면 반에 올라가야했다. 그건 싫었다.


끼이익. 양호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지는 말소리가 없었다. 대신에 슥, 슥.. 실내화 끄는 소리가 났다. 김태형이 자주 내는 소리였다. 눈을 질끈 감고 몸을 더 웅크렸다.


“….”


실내화 끄는 소리는 내 침대 바로 앞까지 와서야 멈췄다. 눈으로 보지 않아도 김태형이 내 침대 곁에 서서 무덤처럼 솟은 이불을 관찰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숨까지 멈추고 자는 척을 했다. 김태형은 인기척을 내지 않고 한동안 자리를 지켰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이 상황이 공포스러웠다. 한참이 지난 후에 다시 슥, 슥 실내화 끄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끼이익 문이 닫혔다. 난 비로소 참았던 숨을 뱉었다.


청소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하나둘삼이를 챙겨 줄 사람은 나뿐이라 내키지 않아도 일어나야만 했다. 이부자리를 정리하고 토끼사로 향했다. 도착한 토끼사 앞에는 김태형이 서 있었다. 예상한 일이었다.


“지민아.”

“삼이가 아파.”

“응?”

“삼이가 아프다구. 계속 밥도 안 먹고 만져도 반응을 안 해.”


나는 삼이를 억지로 끌어내 품에 안았다. 그리고 김태형을 똑바로 쳐다봤다.


“삼이 고쳐줘.”


김태형이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얘는 나한테 뭘 못 주는데..”

“꼭 뭘 줘야해?!”


김태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화가 났다. 가슴이 콱 막힌 듯 답답하기도 했다.


“친구잖아. 친구 부탁도 못 들어줘?!”


삼이의 경우에만 해당하는 말은 아니었다. 김태형도 그걸 눈치 챘는지 그 날처럼 안면을 싹 굳혔다. 김태형과 나는 서로를 노려보면서 몇 분간 대치했다. 그때였다. 갑자기 삼이가 몸을 뒤틀기 시작했다. 깜짝 놀라서 삼이를 바닥에 떨어뜨려버렸다. 삼이가 흙바닥에서 기괴한 모양으로 발작했다.


“삼아!”


이윽고 삼이의 뒤틀림이 멈췄다. 삼이의 몸에서 묽은 주황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어, 어떻게 해?”

“….”


손가락으로 살짝 만져본 삼이의 등이 딱딱했다.


“왜 이러는 거야?”

“….”

“고쳐줘.”

“….”

“고쳐 줄 수 있잖아! 고쳐줘!”


내 눈에서 생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가 주면 되잖아! 고쳐줘!”

“지민아.”

“뭐 갖고 싶은데!”

“..이미 죽었어.”

“….”


나는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아버렸다. 전에 경재도 이런 적이 있다. 이렇게 무기력한 기분이구나. 이렇게 억울한 기분이구나.


“방광이 터져서 그래..”


김태형은 너무 쉽게 삼이를 진단했다. 다 알면서도 고쳐주지 않은 거야? 삼이가 줄 수 있는 게 없어서? 왠지 김태형은 삼이가 내 품에서 금방 죽을 것도 알고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입에서 엉엉 소리가 나는 걸 참을 수가 없었다. 김태형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죽은 삼이는 김태형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난 또 그게 소름끼쳤다. 내 우는 소리를 듣고 수위아저씨가 오셨다. 바닥에 널브러진 삼이를 보더니 상황을 파악하셨나보다. 수위아저씨는 자기가 삼이를 묻어 줄 테니 우리더러 반으로 올라가라했다. 나는 도리질을 쳤다. 삼이를 그냥 내버려두고 갈 수가 없었다. 수위아저씨는 모종삽과 쓰레받기를 가져왔다. 수위아저씨가 삼이를 빨간 쓰레받기 위에 쓸어 담았다. 수위아저씨는 뒤뜰로 삼이를 데려갔다. 그리고 가장 커다란 느티나무 아래에 삼이를 묻어주었다.


“지민아. 네 잘못이 아니야.”


김태형의 말대로 삼이가 죽은 건 내 잘못이 아니었다. 그건 김태형의 잘못이었다. 알면서도 모른 척한 잘못, 고칠 수 있으면서도 안 고쳐준 잘못,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은 잘못.


앞으로 이런 일이 수도 없이 일어날 거란 예감이 들었다. 김태형은 지 맘에 안 드는 사람을 고쳐주지 않을 것이고 선택받지 못한 사람들은 나를 찾아올 거다. 내가 김태형의 마음을 바꾸는데 아무 소용이 없단 걸 깨달은 사람들은 반 아이들처럼 내게서 등을 돌릴 것이다. 모두가.. 모두가! 그리고 나는 내 부탁을 들어주지 않는 김태형을 원망하면서 속수무책으로 죽어가는 것들을 지켜봐야만하겠지. 그럴 수는 없었다. 아저씨나 삼이 같은 일을 또 겪고 싶지 않았다.


“나 너랑 다시는 안 놀 거야.”


나는 결단을 내렸다.


“절교하자.”
















우리 마을은 한식에 풍년을 기원하는 고사를 지내고 잔치를 연다. 마을 회관 옆에 자리하고 있는 마을의 상징인 고인돌 앞에 고사상을 차리는 것으로 행사를 시작한다. 고사상이 차려지면 마을의 대표 어르신이 나와 한해농사의 풍년과 마을 주민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축문을 읽는다. 남자어른들은 차례대로 나와 절을 올리고, 여자어른들은 잔치음식을 준비한다. 아이들은 뒤에서 구경을 하고 있다가 잔치음식이 준비되면 열심히 집어먹는다. 마을 사람이라면 갓난아이부터 최고령 어르신까지 모두 참석해야하는 중요한 연례행사이다.


때문에 나도 엄마아빠 손에 이끌려 억지로 행사에 참석했다. 어른들은 물론이고 아이들 얼굴도 보기가 싫어 안 간다고 떼를 쓰다가 끌려나온 참이었다. 등짝에 엄마 손바닥 자국이 가득할 것이다. 아빠는 퉁퉁 부은 나를 달래려고 손에 아이스크림을 쥐어줬다. 별로 소용이 없는 해결책이었다. 올해 축문은 이장님이 읽기로 하셨다고 들었다. 원래는 경재네 할아버지가 하시던 일이다. 마을의 최고 어르신들이 절을 한 뒤, 아빠를 비롯한 아저씨들이 절을 했다. 고사는 금방 끝이 났다. 나는 잔칫상의 말석에 앉아 조용히 음식을 축냈다. 원래는 아이들과 뛰어다니면서 연도 날리고 그래야 했지만 이번에는 아무도 날 껴주지 않았다. 엄마는 뒤집개를 손에 들고 일손을 돕는 중이었고, 아빠는 다른 아저씨들과 어울려 막걸리 술판이 한창이었다. 외톨이가 된 기분이다.


“….”


젓가락으로 메밀국수를 깨작이고 있던 중이었다. 왁자지껄했던 주변이 음소거 버튼을 누른 티브이같이 조용해졌다. 무슨 일인가 슬며시 고개를 들어 앞을 봤다. 비어있던 앞자리에 김태형이 앉아있었다. 깜짝 놀라서 젓가락을 놓칠 뻔 했다.


“지민아.”


김태형이 고개를 내 쪽으로 드밀며 내 이름을 불렀다. 사실 절교선언 이후 계속 김태형을 피해 다녔다. 반에서 어쩔 수 없이 김태형을 상대해야 할 때를 빼놓곤 김태형의 머리 꽁무니라도 보이면 재빨리 달아났다. 어차피 김태형은 학교를 띄엄띄엄 다니고 그나마 나오는 날도 종례시간에 가깝게 등교할 때가 많아 마주치는 일이 드물었다.


“지민아. 오늘 우리 집 가서 놀래?”

“….”


할 말을 잃었다. 속에서 천불이 났다. 눈치가 없는 건 그렇다 치자. 왜 놀러가자는 말을 동네 사람들이 다 모인 데서 하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자기 때문에 내가 동네에서 제일가는 왕따가 되어버린 걸 진정 모르는 걸까?


“컴퓨터 샀어. 게임씨디도 잔뜩 있어. 우리 집 가서 놀자. 저번에 했던 거. 그것도 있어.”


김태형은 자신을 쏘아보는 내 눈빛을 아랑곳하지 않고 천진난만하게 놀러가잔 소리를 했다.


“너 절교 뜻이 뭔지 몰라?”

“응?”

“내가 너한테 절교 하자고 했잖아. 절교 뜻이 뭔지 몰라?”


김태형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는 것 같기도 하고 모르는 것 같기도 했다. 알면 더 확실히 못을 박고 모르면 제대로 알려줘야겠다.


“너랑 게임 안 해. 너네 집에 안 놀러 갈 거야.”

“….”

“앞으로 너한테 말도 안 걸 거고, 아는 척도 안 할 거야.”

“….”

“이해했어?”

“얼마나?”


김태형이 웃음기 없는 얼굴로 물었다.


“얼마나 그래야 해?”

“평생. 절교는 평생이야.”


마을 사람 모두가 우리가 하는 대화를 듣고 있었다. 나는 알아주길 바랐다. 이제 얘랑 나랑은 아무 사이도 아니에요. 나한테 뭔가 부탁하지 말고, 나를 미워하지도 마요.


“..그러면”


축 쳐져서 국수그릇 위로 떨어질 것 같던 김태형의 목이 다시 솟아올랐다. 아까까지만 해도 반짝반짝 빛나던 김태형의 눈은 생기 없이 시커멓게 죽어있었다. 김태형이 한참 만에 입을 뗐다.


“네가 나랑 절교하면 아무도 안 고쳐 줄 거야.”


흡. 여기저기서 숨 삼키는 소리가 들렸다. 휘익 주변을 둘러보니 마을 사람들의 표정이 하나같이 똑같다. 경재네 가족과 나를 점령했던 절망이 마을 사람들의 얼굴에도 그림자를 드리웠다. 다들 간절한 눈으로 나를 재촉했다. 어서 아니라고 말해! 어서! 또 속이 울렁거렸다.


“내가 그랬으면 좋겠어?”

“어차피 내가 고쳐달라고 해서 고쳐줄 것도 아니잖아.”

“고쳐줄게.”

“그럼 아저씨부터 고쳐줘.”

“안 돼.”

“것 봐!”


답이 없는 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화가 나서 번쩍 일어났다. 울렁거리던 속이 제대로 뒤집혔는지 울컥하고 토사물이 솟았다. 나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먹었던 음식을 다 토해냈다. 창피했다. 하늘로 솟든지 땅으로 꺼지든지 사라져버리고 싶었다. 김태형이 괜찮냐고 다가왔다.


“마음대로 해!”


나는 김태형의 손을 쳐내고 집으로 달려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잠갔다. 몇 분 뒤 엄마아빠가 우당탕 집으로 들어왔다. 엄마가 이게 무슨 소동이냐며 문 밖에서 호들갑을 떨었다. 아빠는 문고리를 돌리면서 좀 열어보라고 사정을 했다. 엄마가 안 되겠다고 아빠한테 열쇠를 찾아오라했다. 그때였다. 집 안에 다른 사람 목소리가 들렸다. 마을 어른들이었다. 고사를 지내다말고 달려온 어른들이 날 방에서 끌어내라고 엄마아빠를 다그쳤다. 나는 겁을 집어먹고 이불로 몸을 둘둘 말아 옷장에 숨었다. 귀를 막아도 고함소리가 들렸다. 할머니들이 네 아들 때문에 마을에 큰 화가 닥치면 책임질 거냐고 엄마를 닦아세웠다. 아빠와 엄마가 방문을 막고 섰나보다. 당장 비켜서라는 노성이 집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쿵, 쾅, 쿵, 쾅. 방문이 금방이라도 쪼개질듯이 덜컹거렸다. 퍽!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와 함께 까무룩 시야가 암전되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땐 아빠가 있었다. 아빠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내 이마에 서늘한 손을 대고 있었다. 엄마는 책상에 기대서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있었다.


“아빠.”

“..응.”

“나 이사 가고 싶어.”

“….”, “….”

“무서워.”


아빠의 어깨 너머로 열린 방문이 보였다. 뭔가로 내려치기라도 했는지 방문에 찍힌 자국이 한 가득이었다. 집안은 폭격에 맞은 것 마냥 폐허가 되어있었다. 아빠의 조끼는 너덜너덜했다. 엄마는 곱게 빗었던 머리가 쥐어뜯겨있었다. 아빠가 엄마를 쳐다봤다. 엄마는 초조하게 손톱을 물어뜯다가 아빠의 시선을 느끼고 아빠와 눈을 마주했다. 엄마가 이내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아빠는 여전히 걱정스런 표정이었지만 난 왠지 안심이 되었다.


아빠는 새벽에 혼자 집을 나섰다. 엄마와 내게 절대로 문을 열어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엄마는 나를 껴안고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집 현관문을 이중 삼중으로 잠갔다. 하루 종일 엄마랑 집안청소를 했다. 깨진 화분들을 치우고 바닥에 어지럽게 찍힌 신발자국을 닦았다. 그리고 나선 짐을 쌌다. 엄마가 당장에 이사 가는 것은 아니니 간단하게만 짐을 꾸리라 했다. 고모네나 작은 아빠 댁에 잠시 머물 거라 그랬다. 엄마는 안방 문을 닫고 안에서 오랫동안 통화를 했다. 나는 거실에서 티브이를 보는 척 몰래 안방 문에 귀를 대었다.


“사람들이 지민이를 데리고 가려 했어요. 졸도한 애 팔다리를 잡고 안 놔줬어요. 지민아빠가 깨진 유리조각이라도 안 휘둘렀으면 분명 지민이 데리고 갔을 거예요. 납치야, 납치. 다들 미쳤어. 눈 뜬 채로 애를 뺏길 뻔 했어요. 그 손들이 지민이 잡아끄는 데 정신이 확 드는 거예요. 아, 내가 알던 사람들이 아니다. 다들 미쳤구나. 미친 사람들 천지구나. 나도 잠시 미쳤었구나. 이러다가.. 이러다가..”


엄마는 울음을 터뜨렸다.


“내 아들 진짜 잃겠구나.”


아침에 엄마가 맨소래담을 발라준 손목을 내려다보았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냥 빨갛기만 했던 손목은 이제 시퍼렇게 멍이 올라와 있었다. 멍은 손가락모양이었다. 발목도 마찬가지였다. 등골이 오싹해져 엄마를 불렀다. 엄마가 급하게 전화를 끊고 나왔다. 나는 엄마한테 안겼다.


“고모네 가자. 고모가 빨리 올라오래.”

“정국이네?”

“응. 아빠 오면 바로 올라가자.”


아빠는 저녁 늦게 귀가를 했다. 한나절 사이에 얼굴이 많이 상했다. 아빠한테 달려가서 안겼다. 아빠는 날 오래도록 안고 있었다. 일단 우리는 식탁에 둘러앉아 저녁식사를 했다. 엄마는 저녁식사 내내 한숨을 쉬고 머리를 짚었다. 아빠도 두통이 이는지 계속 인상을 찡그렸다.


“온 사방 부동산을 다 돌아다녔는데도 맡겠다는 사람이 없어.”

“그럼 어떻게 해요?”

“영수 사촌이 중개업자거든. 영수한테 부탁해서 겨우 급매로 내놓았어. 과수원은 많아야 이천만원 받을까 말까라네. 그마저도 마을 사람들은 절대로 안 살 거라더군. 귀촌용 토지로 팔아보는 수밖에 없겠대.”


아빠의 술친구인 노총각 영수아저씨는 아빠한테 목숨을 빚진 적이 있다. 지난여름 태풍이 몰고 온 산사태가 영수 아저씨의 컨테이너집을 덮치기 직전에 아빠가 영수 아저씨를 집에서 끌어냈었다. 그 뒤로 영수아저씨는 아빠를 생명의 은인이라 부르며 언젠가 꼭 은혜를 갚겠다고 거듭 약속을 하곤 했다.


“이천이요? 이 땅 감정가가 최소 오천이에요. 반 토막도 안 되는 거 받아 어떻게 살라구요.”

“그래도 살아야지. 여기서 다 같이 죽을 거야?”


아빠의 언성이 높아졌다. 내가 아빠아.. 하고 부르자 아빠가 한숨을 쉬면서 고개를 떨궜다. 엄마는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엄마가 밥맛이 없다며 식기를 정리하고 일어났다. 그리고 쿵! 쨍그랑!


“엄마!”

“여보!”


엄마가 부엌바닥으로 고꾸라졌다. 아빠가 엄마의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엄마는 미동도 없었다. 엄마의 몸이 축 늘어졌다. 아빠가 엄마를 안아 올렸다. 아빠가 빨리 따라오라며 내 이름을 크게 불렀다. 힘없이 달랑거리는 엄마 팔을 보니 삼이가 연상되었다. 바지에 오줌을 지려버렸다. 아빠가 트럭에 엄마를 태웠다. 그리고 얼어붙어있는 나를 안아 올려서 트럭 안으로 내던졌다. 나는 정신을 잃은 엄마 옆에서 졸도하지 않으려고 애를 썼다. 아빠의 트럭은 미친 듯이 속도를 내서 수 분만에 읍내 종합병원에 도착했다. 아빠는 고함을 지르며 엄마를 응급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아빠는 날더러 금방 영수 아저씨가 올 테니 어디가지 말고 얌전히 대기 의자에 앉아있으라고 그랬다. 난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민아!”


아빠 말대로 영수 아저씨가 도착했다. 아저씨는 축축한 내 바지를 보더니 간호사에게 가 병원복 하의를 얻어왔다. 아저씨랑 화장실에서 대충 뒤처리를 했다. 나는 영수 아저씨의 손을 생명줄마냥 꼭 붙들고 아빠를 기다렸다. 이윽고 응급실에서 아빠가 나왔다. 아빠는 귀신을 본 것처럼 얼굴에 핏기가 싹 가셔있었다. 영수아저씨가 일어나서 아빠한테 다가갔다. 나는 아빠의 입에서 나올 말이 무서워 옴짝달싹도 못했다. 아빠가 영수 아저씨한테 알아듣지 못할 단어를 얘기했다. 급성신부전증.. 방사선.. 혈액검사.. 사망가능성.. 사망.. 가능성.. 사망.. 아빠는 혼이 빠져선 영수 아저씨한테 나를 부탁한다고 그랬다. 그리고 뭐에 홀린 듯이 병원 밖으로 뛰쳐나갔다. 나는 아빠 뒤를 따라 달렸다. 아빠가 어디로 갈지 알 것 같았다.


“아빠! 가지마! 아빠!!!!!!”


영수 아저씨가 달려가는 나를 붙들었다. 아빠의 트럭이 쏜살같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영수 아저씨 품에서 바들바들 몸을 떨었다. 아빠가, 아빠가.. 엄마가! 온 몸에 경련이 일었다. 간호사들이 달려들어 내 사지를 붙들고 진정제를 놓았다. 통나무처럼 빳빳하게 굳어버린 팔다리를 영수 아저씨가 계속 주물러줬다.


“지민아. 아무 생각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아저씨 말이 최면이 되어 생각을 앗아갔다. 머지않아 진정제의 약기운이 돌았다. 무거워지는 눈꺼풀을 이기지 못하고 잠깐 잠에 들었던 것 같다. 멍한 의식 끝에 누군가 아른 거렸다. 누군가가 구체적인 형상을 갖춰갈 때 귓가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와 함께 누군가는 먼지가 되어 파스스 흩어졌다.


“지민아.”

“….”

“지민아. 깼어?”

“엄마?”

“응. 엄마야.”


엄마가 나를 안고 있었다. 처음에는 꿈인가 싶었다. 하지만 파리한 엄마의 입술이.. 덜컹거리는 트럭의 움직임이.. 이건 꿈이 아니라고 얘기했다.


“엄마. 괜찮아?”

“응. 엄마 이제 괜찮아.”

“다 나았어?”

“응. 다 나았어.”


차마 태형이가 고쳐줬냐고 물을 수가 없었다. 운전석의 아빠는 입술을 한 일자로 꾹 다물고 눈앞의 도로만 주시하고 있었다. 시커먼 밤이었다. 빼도 박도 못하는 야반도주였다. 엄마아빠가 무얼 가지고 도주하는지.. 나는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엄마 품으로 더욱 파고들었다. 엄마가 내 머리를 쓸어 올렸다.


“지민아. 엄마 말 잘 들어.”

“응.”

“이제까지 있었던 일은..”

“응.”

“잊어버려.”

“..응.”

“다 잊어버려도 돼.”

“응.”

“엄마아빠도 그렇게 할게. 우리 다, 다 잊어버리자.”


아빠의 트럭이 터널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기억을 터널 입구에 모두 털어놓고 달렸다. 기억이 발이 달려서 따라오지 않기를 바라며 마을로부터 달아났다.


우리는 당분간 고모네 집에 머물기로 했다. 고모와 고모부는 우리 가족을 따듯하게 맞아주었다. 어른들이 거실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와 정국이는 방에 있었다. 정국이는 예상치 못한 방문에 잔뜩 신이나 보였다. 정국이가 넋 나간 내 앞에서 재롱을 피웠다. 내 관심을 끌기 위해 온갖 앙증맞은 짓을 해댔다. 평소 같으면 마주 장난을 쳐줬을 텐데 도무지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놓고 온 기억이 고모네집 현관문을 두드리는 기분이 들었다. 어서 들여보내 달라고.


고모네 신세를 진지 일주일이 되었을 무렵 아빠는 급하게 원룸을 구했다. 고모네집과 멀지 않은 곳이었다. 두고 온 짐은 영수 아저씨가 직접 싣고 와주기로 했다. 우리 가족은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나는 정국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에 전학 수속을 마쳤다. 주말에 이사를 하고 다음 주 월요일부터 학교에 갈 예정이었다. 고모네 가족이 이사를 도와주겠다고 했다. 어른들이 이삿짐을 내리는 동안 정국이와 나는 원룸 단지 안에 위치한 놀이터로 향했다. 놀이터에는 아이들이 많았다. 정국이는 놀이터의 아이들 무리에 자연스럽게 꼈다.


“형! 얘네 탈출한대! 우리도 하자!”


탈출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온 몸이 용광로에 던져진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눈앞에 알록달록한 놀이터는 어느새 시골 분교의 초라한 그것으로 바뀌어있었다. 미끄럼틀에 올라선 낯모르는 아이 둘 위로 김태형과 나의 모습이 덧입혀졌다. 우리가 그때 나눈 대화가 머릿속에서 번개처럼 번뜩였다.


「우쒸~ 내가 한 번 봐준다. 대신 다음에 너 술래 할 때도 나 한번 봐줘야해?」

「응. 알았어.」

「진짜다?」

「응응. 봐줄게.」

「약속했다?」

「난 약속 꼭 지켜.」


김태형은 자신이 술래 할 때 한번만 봐준다고 그랬다.


삐뽀삐뽀


멀지 않은 곳에서 불길한 사이렌소리가 들렸다. 나는 정국이를 내버려 두고 곧장 엄마아빠가 있는 곳을 향해 뛰었다. 원룸에 가까워질수록 소리가 커졌다. 우리가족이 입주하기로 한 빌라 앞에 사람들이 구름떼같이 몰려있었다. 앰뷸런스에 아빠와 고모가 급하게 탑승하는 장면이 보였다. 영화같고 꿈같았다. 진짜일까? 내 눈으로 보고 있는 게 진짜가 맞을까? 사실 아직도 그날 내 옷장 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건 아닐까? 앰뷸런스는 눈뜬 채로 기절한 나를 지나쳐 원룸촌을 빠져나갔다.


“지민이형!”


뒤따라온 정국이가 내 이름을 부르기 전까지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영수 아저씨와 고모부가 우리를 발견하고 차에 태웠다. 정국이와 나는 차 뒷좌석에 앉아 병원으로 향했다. 혼비백산한 고모부는 고모와의 통화에서 흥분을 숨기지 못했다. 엿들으려는 노력 없이도 통화내용이 귀에 와서 콕콕 박혔다. 그 중에서도 특히 ‘패혈증’이라는 단어가 고막을 할퀴었다. 뜻을 모르는 단어는 대부분 좋지 않은 사건을 만들었다. 이제까지 계속 그랬다. 심장이 오래 달리기를 한 사람의 것 마냥 펄쩍펄쩍 뛰었다.


우리는 우르르쾅쾅 발소리를 내며 응급실에 도착했다. 응급실 입구에 아빠가 주저앉아 있었다. 아빠의 뒷모습이 무너진 모래성을 닮았다고 생각했다. 영수 아저씨와 고모부가 아빠를 일으켜 세웠다. 아빠의 입에서 계속 허탈한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건 마치 귀신이 흐느끼는 소리 같았다. 아빠와 함께 앰뷸런스에 탔던 고모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빠! 엄마는? 엄마는?!”


아빠가 내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내 얼굴을 확인한 아빠의 눈에 이상한 것이 번뜩였다. 아빠는 아빠 같지 않았다. 다른 사람 같았다. 나는 뒤로 물러났다. 아빠의 얼굴이 괴물처럼 변했다. 나는 무엇이 아빠를 괴물로 만들어버렸는지 깨달았다. 엄마, 엄마다. 엄마가 없기 때문에.. 엄마가.. 엄마가..


“그때”


아빠가 날 무섭게 노려봤다.


“널”


한식날 보았던 마을사람들 같은 표정이었다.


사람의 뇌는 기이한 능력이 있어 아빠와 마을사람들의 얼굴이 비슷하다고 생각했더니 정말로 아빠 옆에 수십 개의 얼굴들이 떠올랐다. 거기엔 경재할아버지, 영진이네 할머니, 아저씨, 경재, 수위아저씨, 민식이, 정원이 아줌마, 담임선생님 등등이 다 있었다. 나는 나를 지켜보는 수십 쌍의 눈동자로부터 피할 수 있는 곳이 없었다.


“줬어야 했어..”

“아빠아..”

“널 줬어야 했어..”

“….”

“널 줬어야 했어!!!!!!”


기억은 끝내 날 찾아냈다. 꽁꽁 잠가두었던 문을 다 부시고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속수무책이었다. 김태형 앞에서 그랬던 것처럼.




















































































택시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달렸다. 국도에 들어서자 도로 양 옆으로 논과 밭들이 펼쳐졌다. 택시기사님께 도착하기까지 얼마나 남았냐고 물었다. 거의 다 와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까 톨게이트 지날 때부터 다와 간다고 했으면서..


“이제 진짜 거의 다 왔어요. 보통 저 식당까지만 데려다 줍니다. 저기가 닭백숙을 아주 기가 막히게 하는 데야.”

“그 뒤론 걸어가야 하죠?”

“그렇지. 별로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자가용을 타고 올 수도 없고 버스노선도 사라진 곳이라 많은 사람들이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택시를 이용한다고 들었다. 나 역시 택시기사님께 선불로 십 만원이 넘는 금액을 지불했다. 택시는 식당주차장에 날 내려주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2층짜리 식당은 도로 갓길에 덩그러니 위치한 집답지 않게 인테리어가 꽤나 현대적이었다. 닭백숙이 기가 막히다니 마지막 만찬으로 먹어볼까? 오늘 같이 들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일행으로 껴도 좋을 것 같고..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하며 식당에 발을 들였다.


“뭐 드릴까요?”

“닭백숙이요.”


간단하게 주문을 마치고 식당을 둘러봤다. 사람들이 드문드문 자리하고 있었다. 그렇게 이상한 사람들 같진 않았다. 어디가 심각하게 아파 보이지도 않았고.


“주변에 내륙고속도로랑 인터체인지가 있어서 사람들이 많이 들러요. 꼭 ‘거기’ 가려는 사람만 오는 데는 아니에요.”


내가 관찰하는 시선을 눈치 챘는지 밑반찬을 가지고 오던 알바생이 귀뜸을 해줬다.


“아.. 죄송해요.”

“죄송할 게 뭐 있어요.”


알바생이 빙긋 웃고 자리를 떴다. 닭백숙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식당 중앙에 위치한 티브이를 보았다. 개그맨 여럿이 나와 뜀박질을 하는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한참 재밌게 시청하고 있는데 채널이 돌아갔다. 리모콘을 쥔 사장님이 채널을 시사예능프로그램에 맞췄다. 요새 ‘거기’덕에 제대로 시청률 수혜를 받고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지난 3일 급성심근경색으로 쓰러졌던 일신그룹 김현철 회장이 입원 이틀째인 오늘 오전 11시에 갑작스런 퇴원을 결정하면서 일신건설의 주가가 폭등했습니다. 항간에선 킹덤이 관여한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는데요. 진위여부야 어찌됐든 심장마비로 CPR을 받은 지 만 하루도 안 되어 퇴원한 사실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표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확실히 킹덤의 개입이 있었다고 봅니다. CPR 직후 일신 측에선 김회장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어 자가 호흡이 가능한 상태라고 발표했지만 서울아산병원은 김회장이 에크모(ECMO: Extracorporeal Membrane Oxygenator, 체외막산소화 장치)를 사용하고 있다 했어요. 이게 뭐냐면 심장 대신 정맥의 혈액을 몸 밖으로 꺼내 동맥혈로 바꿔 일정 농도의 산소와 함께 주입하는 인공 심폐기예요. 다시 말해 김회장은 자가 호흡을 하는데 보조기구의 도움이 필요했던 상태인거죠. 보통 이 에크모를 사용하는 심정지 환자들은 상태가 아무리 빠르게 호전되더라도 퇴원까지 수일이 걸려요. 김회장은 그 과정을 무려 열 두시간으로 단축한 거예요. 상식적으로 성립할 수가 없는 일이거든요. 그리고 최근 상식적이지 않은 일들은 모조리 킹덤과 연이 닿아 있구요.」


쿵. 테이블에 닭백숙 뚝배기가 덜렁 던져졌다. 아까 그 알바생이 아니라 리모콘으로 채널을 돌리셨던 사장님이다. 사장님이 가재미 눈을 하고 나를 위아래로 스캔했다.


“솜털도 안 가신 아가 어떤 숭한 병에 걸려 킹덤에 가려는가?”


「일신이 킹덤과 모종의 거래가 있었다고 해도 이렇게 까지 쫓기듯 퇴원할 이유는 뭐죠?」

「김회장이 와병 중인 사이 시총 1500억원이 증발했어요. 일신은 김회장이 아니라 김회장 도플갱어라도 찾아내 언론에 보여줘야 했습니다. 더불어 일신.. 경영권 승계랑 상속세 문제로 말이 많잖습니까?」


멋쩍은 미소로 때우려고 했는데 물러날 기미가 안 보인다. 사장님은 아예 내 앞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노골적인 관찰자의 시선이 더 짙어졌다.


“거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 줄 알어?”


누구보다 잘 알아요. 라고 대꾸하고 싶었다.


“아픈 거, 아파서 죽는 거는 어쩔 수 없는 겨. 자연의 섭리지. 그걸 거스르려고 했다간 큰 화를 당하고 말아.”


사장님은 손님의 안면만 보고도 운전하는 길에 허기가 져서 들른 사람인지 킹덤에 가기 전 숨을 고르러 온 사람인지 구분하는 재주가 있나보다. 유독 내 앞에만 앉아서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걸 보면 말이다.


「아무튼 김회장이 좀 바빠질 것 같네요. 상속세에 리베이트에 참고인 조사까지 받으려면 말입니다. 김회장을 보면 사는 게 지옥이란 말이 떠오릅니다. 죽는 건 오히려 평안이죠.」


“병 고쳐준다는 것도 다 옛 말이랑께? 돈이 윽수로 많거나 나라에서 힘 좀 깨나 쓰는 놈들 아니면 몇 년 좆뱅이 치다가 깨꼬닥 하는 겨. 그럴 바엔 가족들이랑 단란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게 낫지 않것어? 개죽음이잖어.”

“….”

“살고픈 맘은 이해하는디. 다시 생각 해봐. 최근 몇 년간 안으로 들어간 사람은 많아도 나온 사람은 손에 꼽으니께.”

“사장님.”

“그랴. 말해봐.”

“저 아픈데 없어요.”


사장님이 고개를 갸웃했다.


“아픈데도 없는데 왜 호랑이 아가리에 머리를 드밀어?”


「그럼 변호사님은 킹덤에 관한 루머를 어느 정도 인정하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됩니까?」

「..일신에서 리베이트로 조성한 300억대 비자금 흐름을 밝혀야 해요. 필히 킹덤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변호사는 대답을 하지 않고 말을 돌렸다. 냉철한 이성의 상징이어야 할 직업이다. 더군다나 시청률이 10%에 달하는 TV쇼이다. 그가 킹덤의 능력을 인정한다고 말했을 때 일어날 파장이 불보듯 뻔했다.


「인정하십니까?」


하지만 진행자는 빠져나갈 구멍을 주지 않았다. 나는 티브이에서 시선을 떼고 내 앞에 앉은 선량한 인상의 중년 남성을 보았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았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경고를 무시하고 킹덤으로 떠났을까? 사장님도 나와 같은 경험을 했을까?


“동생..”


누군가를 잃어 봤을까?











「네. 인정합니다.」

“동생 찾으러 가요.”











지금 대한민국 전역에 괴소문이 돌고 있다.





























ep. 괴소문 fin.

Next episode. 킹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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