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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3

복귀와 복기의 차이


Girls Talk Boys - 5 Seconds of Summer






지민은 아몬드향을 맡으면서 꿈의 끝자락에 서 있었다. 의식은 반쯤 깨어났으나 깨기 싫은 기분이 들었다. 잠자리가 무척이나 편안.. 잠깐만, 아몬드향? 아몬드으으?! 지민의 눈이 번쩍 뜨였다.


“…!”


지민이 머리 털 나고 처음 보는 인테리어였다. 눈앞에 시커먼 벽이 있었다. 침대 옆 협탁 에는 하만카돈 오라와 조말론 디퓨저가 놓여있었다. 사부작거리는 이불의 볼륨감이 평범치 않았다. 이거 구스 같은데? 모텔이라기엔 지나치게 고급스러웠고 호텔이라기에는 과하게 아늑했다. 지민은 결론을 내렸다. 이곳은 누군가의 집이다! 지민은 눈알로 재빨리 바닥을 훑었다. 어제 자신이 입었던 옷들이 뱀의 허물처럼 늘어져 있었다. 헉? 지민은 살짝 당황했다. 처음 본 사람과 베드인 하는 거 원투데이가 아니지만 숙박시설이 아닌 집에 쳐들어가 부대낀 것은 손에 꼽았기 때문이다. 겁도 없어, 박지민. 이러다가 장기 탈탈 털려봐야 정신 차리지. 지민은 섣불리 일어나지 않고 누운 상태 그대로 기억을 복구하기 시작했다. 적어도 자신의 목덜미에 간질간질한 숨을 내뱉는 놈이 누군지는 알아야 했거든. 그리고 곧 지민의 동공이 크게 확장됐다. 민대리!












마이 블러디 발렌타인 3

복구와 복기의 차이












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발씨바아알 또 잤어! 미친놈! 미친놈! 미친놈!


“아….”


어제 지민은 탐탐에서 민대리와 적당히 노가리를 까다가 신논현역에 위치한 이자카야로 이동했다. 연어사시미를 안주로 사케를 마셨다. 좀 많이. 그 후의 기억은 어렴풋하지만 대충 짐작하건대 취해서 민대리한테 헬렐레 끼를 떨었던 거 같다. 신 새벽이 다 되어서 이자카야에서 나왔고.. 민대리가 대리를 불렀는데.. 그 사이 잠깐 카톡을 확인했고..


잘들어갔어?


새벽 1시에 김태형한테서 온 카톡을 발견했다. 혈압이 수직 상승했다. 헤어진 게 언젠데 오밤중에 잘 들어갔녜? 그 때까지 뿌랑 전화질을 했나 싶었다. 지민은 자신도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열이 받아서.. 그래서.. 그대로 민대리에게 입술 박치기를 시도했다. 민대리는 당황은커녕 기다렸다는 양 지민의 뒷목을 손으로 감아 당겼다. 결국 대리 부른 것을 무르고 민대리가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민대리는 원래도 운전스타일이 얌전한 편은 아니라는 불길한 소리를 지껄이면서 시동을 걸었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광란의 질주를 시작했다. 계기판의 숫자가 쭉쭉 치솟았다. 민대리는 깜빡이도 안 켠 채로 옆 차선을 내 집처럼 드나들었다. 앞 차를 추월하는 건 예사였다. 과속방지턱에선 엉덩이가 30cm쯤 튀어 올랐다. 지민은 술이 홀딱 깨다 못해 커브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는 민대리 때문에 차가 관성을 이기지 못하고 기우뚱 기우는 것을 느끼며 기절했다. 얼마 후, 정신을 차려보니


「헉, 헉-」


민대리가 제 위에서 신나게 허리를 흔들고 있었다.


「좀, 후- 일어나봐.」


다시 까무룩 정신줄을 놓으려는 지민의 뺨을 쳐올리는 민대리의 손목 스냅이 수상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지민은 의식의 셔터를 내려버렸지만 말이다.


지민은 기척을 죽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선 셔츠부터 꿰어 입었다. 팬티, 팬티가 어디 갔지? 아, 저기! 걸음을 옮기는 지민의 허벅지를 타고 정액이 주륵 흘렀다. 지민은 그 선뜩한 느낌에 경악해 아래를 확인했다. 민대리가 싸지른 정액이 복숭아뼈 있는 데까지 거침없이 낙하하는 중이었다. 이, 씨발, 새끼. 지민은 이를 까득까득 갈면서 바닥에 널브러진 민대리의 셔츠로 아래를 닦았다. 언뜻 본 셔츠라벨에 조르지오 아르마니라고 적혀있어 잠깐 식겁했지만 식겁만 하고 말았다. 지민은 민대리의 셔츠를 공처럼 구겨 구석으로 던졌다. 속옷과 바지를 광속으로 장착했다. 넥타이를 목에 걸치고 재킷과 수트케이스를 집어 들었다.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에?”


지민은 현관문에 이르러 크게 당황했다. 이게 뭐지? 내가 아직 취해있나? 마땅히 있어야 할 열림버튼 대신에 번호키가 있었다. 설마 안에서도 잠기는 문? 민대리 이 새끼.. 리얼 변태구나. 지민은 혹시나 해서 일단 문고리를 아래로 내려 보았다. 철컥.


“미친.”


철컥, 철컥, 철컥!


“너 그거 습관이지?”


지민은 어깨를 타고 넘어 온 민대리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뒤를 돌아보니 민대리가 손으로 머리를 받치고 누운 자세로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힘이 쭉 빠졌다. 지민은 터덜터덜 민대리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언제부터 깨있었어요?”

“네 머리 굴리는 소리가 좀 요란해야지.”


민대리가 지민의 팔을 잡아끌었다. 지민은 에라 모르겠다~ 들고 있던 것들을 집어던지고 침대로 뛰어들었다. 지민의 등이 침대에 닿자마자 민대리가 전광석화처럼 지민 위로 올라탔다. 새벽 내내 사람을 묵사발로 만들고도 모자란가 보다. 민대리는 지민의 바지를 능숙하게 벗겼다. 지민은 팬티까지 끌어내리려는 민대리의 손을 저지했다.


“왜 콘돔 안 했어요?”

“처음에는 했어. 나중에 모자라더라.”

“..해장이나 하죠.”

“난 해장 섹스로 하는데?”


옘병!











지민은 결국 민대리와 맨 정신으로 한판 더 뛰었다. 시발.. 자연소멸하고 싶다. 난 왜 술만 마시면 이럴까? 쓰레기가 틀림없어. 알콜쓰레기. 이럴 바엔 태어나지 않은 게 나았을 지도 몰라. 앞으로 민대리랑은 어떻게 하지? 이왕 이렇게 된 거 그냥 쿨하게 섹파나 해버려? 아니 직장상사랑 섹파가 말이 되냐고오.. 그건 쓰레기를 넘어 핵폐기물이야. 아! 모르겠다. 아무 것도 모르겠다.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하는 지민의 앞에 냄비가 툭 던져졌다.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라면이었다.


“어제 기억은 나?”

“우리 어제 말 놓기로 했어요?”


지민이 민대리를 새치름하게 쏘아봤다. 민대리는 대꾸 없이 픽 웃고 말았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머릿속이 아수라장인 와중에도 라면은 입으로 꿀떡꿀떡 잘도 넘어갔다. 지민은 민대리가 꺼내준 열무김치를 오독오독 씹으면서 생각을 없애려 노력했다. 생각이 없으면 된다. 생각을 하지 않으면 맘고생 할 일도 없어. 그냥 물 흐르듯이 쓰루하자. 그래, 투나잇까지는 괜찮은 거 같아. 야구도 삼진아웃이-


“사귈래?”


콜록콜록!!! 지민은 식도 입구까지 들어갔던 라면을 주루룩 뱉었다. 민대리가 그 꼴을 보고 인상을 팍 썼다.


“둘러보면 알겠지만 나 약한 결벽증 있어. 그러지 마.”

“노, 놀랐잖아요!”

“놀랄 만한 내용이 있었나?”

“사귀자면서! 말이 돼요?”

“말이 안 될 건 뭔데. 사내커플 별로야?”


이건 극강의 또라이다.


“장난치지 마요.”

“장난 아냐.”


평소 같으면 그래 그러자~ 하고 받아쳤을 지민이다. 헌데 오늘따라 이상하게 그 말이 안 나왔다. 인정하기 싫지만 김태형 때문인 것 같다. 지민이 젓가락을 딱! 소리 나게 내려놨다.


“계급장 떼고 말할게요. 민윤기씨.”

“어.”

“저 좋아해요?”


윤기가 또 픽 웃었다. 나름 진지하게 꺼낸 질문을 무시하는 투라 지민은 기분이 상했다.


“요즘 세상에, 우리 나이에 꼭 좋아해야만 사귀나? 그거 아닌 거, 너 잘 알잖아.”

“….”

“소개팅도 세 번 안에 쇼부봐야 하는 시대야. 세 번 만나고 서로 사랑한다 어쩐다 사탕발린 말 지껄이는 애들 수두룩 빽빽한 마당에 우리가 사귀는 건 왜 말이 안 되는데? 적어도 서른 번은 만났지, 두 번 잤지, 최소 다섯 번은 갔을 걸? 너?”

“가, 가긴 뭘 가요! 헛소리 작작-”

“헛소리 같아?”


윤기가 냄비를 집어던지고 식탁을 넘어올 기세라 지민은 세차게 고개를 가로 저었다. 오랜만에 강적을 만났다. 민대리 이 자식 보통이 아니다. 세상 기운 없어 보이는 앞면을 뒤집으면 섹스의 화신이 튀어나오고, 저 무기력한 껍데기 속에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사람 홀리는 능구렁이가 들어앉아있다. 지민은 벌렁벌렁한 심장을 부여잡았다. 나 만렙인데? 나 만렙맞는데.. 왜 이렇게 말려들어가지? 어제 김태형도 그렇고, 전정국, 민대리까지..


“새, 생각해 볼게요.”

“되게 촌스러운 대답이다.”

“아이씨!”


지민이 벌떡 일어났을 때 방 어디선가 짧게 진동이 울렸다.


“카톡 왔나본데요?”

“응. 근데 네 꺼야.”


윤기가 주머니에서 자신의 폰을 빼내 흔들어 보였다. 지민은 휙 돌아 진동소리가 울리는 곳으로 갔다. 폰이 침대와 협탁사이에 껴 있었다. 밧데리가 간당간당했다.


일어났어?연락이없네


씨바.. 김태형이다. 태형은 1이 없어진 걸 확인하고 연달아 카톡을 보냈다.


일어남?

ㅋ어ㅋㅋ방금일어남ㅋㅋㅋ

오래도잤네


힉. 벌써 2시가 가까웠다.


집?

응ㅋㅋㅋㅋ집ㅋㅋㅋ

오늘약속있어? 어제물어본다는게깜빡했어 너갑자기사라져가지고

왜?ㅋㅋㅋ

만나자


지민은 카톡을 보면서 손톱을 짓씹었다. 어떻게 하지?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 만나는 게 맞나? 아직 멘탈데미지가 회복되지 않은 것 같은데 어쩐담? 아! 몰라!


그래ㅋㅋㅋ

3시까지성수역괜찮아?

응ㅋㅋㅋ

쫌따봐

엉ㅋㅋㅋ


지민은 카톡창을 끄고 헐레벌떡 옷을 주워 입기 시작했다.


“너 뭐해?”


지민이 부산떠는 모습을 관찰하던 민대리가 물었다.


“약속 있는 거 깜빡했어요. 집 들러서 준비하고 3시까지 성수가야해요.”


지민은 바지지퍼를 올리면서 대답했다.


“…? 너 여기 어딘지 알고 하는 소리야?”

“예? 여기가 어딘데요?”

“당산.”

“헐!”


당산?! 당산이라니?! 끽해야 서초양재 부근인줄 알았던 지민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당산에서 집까지 택시타고 20분, 씻고 옷 갈아입으면 20분, 성수까지 차로 20분. 모자란다! 모자라! 시간이 모자라!


“당산까지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요!”


지민이 민대리를 향해 빽 소리를 질렀다.


“웃기려고 하는 말이지? 그거?”


민대리가 어이없다는 듯 대꾸했다. 지민은 고민에 빠졌다. 약속이야 늦추면 늦출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 싫었다. 죽어도 싫었다. 어쩌지, 어쩌지.. 우뚝. 지민은 제자리걸음을 멈추고 민대리를 보았다. 정확히는 저와 비슷한 민대리의 체격을.


“대리님.”

“웬 대리님이야? 갑자기?”

“저 욕실 좀 쓸게요.”

“..어. 써.”

“그리고”

“어.”

“옷 좀 빌려주세요.”


지민은 민대리의 대답을 듣지 않고 욕실로 직행했다. 약한 결벽증이 있다는 말이 허투가 아니었는지 욕실에는 세면용품들이 물기하나 없이 열 맞춰 정렬되어있었다. 지민은 급해서 플러스 약간의 심술도 좀 부릴 겸 욕실을 개판 오 분전으로 만들며 샤워했다. 샴푸? 이거 뭐 어딜 눌러야 나오는 거야? 아, 뚜껑이구나. 러쉬꺼네? 대디오? 샴푸를 쭈욱- 짜내니 펄가루를 머금은 보라색 액체가 흘러나왔다. 흐엑! 샴푸 맞아? 반신반의하며 머리에 양껏 치덕치덕 바른 후 박박 비볐다. 우려와는 다르게 향긋한 꽃냄새가 퍼지면서 두피가 시원해졌다. 오, 대박. 지민은 린스 역시 흥청망청 짰다. 민대리 좋은 것만 쓰네? 마트에서 엘라스틴 대용량을 사다 쓰는 지민과 비교되는 취향이었다. 바디클렌저, 쉐이빙폼, 클렌징폼까지 모조리 백화점 브랜드였다. 지민은 입술을 삐죽이면서 양치를 마쳤다. 민대리 연봉 얼마일까?


“드라이기! 드라이기 좀 쓸게요!”

“야! 다 닦고 나와!”


무시했다. 지민은 알몸으로 민대리의 화장대 앞에 앉아 미친 듯이 머리를 털었다. 물방울이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민대리가 설거지를 하다말고 윽박을 질렀다. 민대리는 웬만해선 큰 소리를 내지 않는 사람이다. 지민은 머리를 반쯤 말리고 드라이를 시작했다. 좋은 걸 써서 그런지 오늘따라 모양이 아주 예쁘게 잡혔다. 만족스런 표정으로 얼굴을 요리조리 돌려 본 지민은 거울 앞에 늘어선 기초화장품을 집어 들었다. 세상에… 기초가 뭐 이렇게 많냐? 것도 다 SK-II MEN이네. 난 우르오스로 한방에 끝낸다구! 대충 로션으로 보이는 걸 찍찍 짜서 챱챱 두드리고 일어났다. 민대리가 센스 있게 속옷을 건넸다.


“너 진짜 매너 황이다.”

“정 좀 떨어져요?”


제발 그래줬으면 좋겠는데


“그냥.. 신선하네. 충격적이고.”


아닌가 보다.


지민은 민대리를 지나쳐 옷장을 열어젖혔다. 옷장 한 가득 온통 셔츠뿐이었다. 주말 데이트에 셔츠라니. 가뜩이나 나이 들어 만나는데 그만큼 지루한 착장도 없을 듯싶었다.


“좀 캐쥬얼한 거 없어요?! 캐쥬얼한 거?!”


지민이 셔츠가 걸린 옷걸이를 헤집으면서 묻자 민대리가 척척 걸어와 옷장 아래 서랍을 열어주었다. 서랍 안에는 니트와 티셔츠류가 가지런히 정리되어있었다. 지민은 눈을 반짝였다.


“여기서 뭐가 제일 괜찮아요? 안 가르쳐주면 저 이거 다 뒤집어엎을 텐데.”

“뭐, 잘 보여야 되는 사람 만나?”

“아니요!?”


지민은 괜히 찔려서 또 빽! 소리를 질렀다. 민대리가 귀 아프다며 인상을 찡그렸다. 민대리는 무심한 손길로 옷을 뒤적였다.


“너 발 몇이야.”

“이..백 육십?”

“신발은 못 빌려주겠네. 너 어제 로퍼 신었지?”

“네.”

“그럼 이거 입어.”


윤기가 고른 것은 아이보리색 라운드 니트와 검정슬랙스였다. 지민은 후다닥 옷을 입고 전신거울 앞에 섰다. 헐? 집에서 준비한 것보다 천 배는 나았다. 민대리는 거기까지 소임을 마치고 침대에 털썩 주저앉았다. 한 것도 없는데 기운이 쪽 빠졌다. 박지민이가 가고 나면 또 한참 집을 치워야할 터였다. 착장을 마친 지민은 수트재킷에서 지갑을 빼내 바지 뒷주머니에 찔러 넣었다.


“저 옷 세탁하실 필요 전혀전혀 없으니까 그냥 회사에 가져다만 주세요. 가방이랑 같이. 진짜 죄송해요. 제가 급해서-”

“태워다 줄게.”

“에?”


민대리가 차키를 들고 일어섰다. 지민은 잠깐 뻥쪘다가 현관 쪽으로 향하는 민대리 앞을 가로 막았다.


“어딜요?”

“성수역 간다며.”

“태, 택시 탈건데요?”

“여기 택시 잘 안 잡혀.”

“카카오택시 부르면 되는데요?”

“내가 더 빨라.”

“아니, 아니. 진짜 됐어요. 대리님 쉬세요.”

“나 어차피 좀 있다가 코스트코 가려고 했어.”

“그럼 쉬다가 가세요.”

“왜 오바야.”


너야말로 왜 오반데! 민대리가 이렇게까지 끈질기게 나올 줄 몰랐다. 민대리와 지민은 마주보고 대치했다. 그때, 지민의 폰이 진동했다. 태형의 카톡이었다.


어디야?나다와가


3시 45분. 지민은 더 이상 민대리와 승강이할 시간이 없었다.


나도 가고있어ㅋㅋㅋ


답장을 보낸 후 민대리를 쳐다봤다. 민대리의 시선이 카톡창에 꽂혀있었다. 매너, 매너 따지더니.. 남 카톡 훔쳐보는 게 매너 있는 행동인가?


“그럼 빨리 가요.”


지민이 민대리의 등을 떠밀었다.


새벽엔 술기운 때문에 그런 줄 알았더니 멀쩡할 때도 운전 스타일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악소리를 너무 질러서 목이 다 쉬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배터리가 간당간당하던 폰이 기어코 꺼지고 말았다. 번호를 외워놔서 다행이긴한데 중요한 건..


“내꺼 써.”


성수역 앞에 도착해서 민대리가 지민에게 자기 폰을 건넸다. 아, 시발. 왜 하필 지금 핸드폰이 꺼지고 난리야. 미치겠네. 지민은 울며 겨자 먹기로 민대리 폰에 태형의 번호를 찍고 통화를 눌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태형이 전화를 받았다.


ㅡ여보세요?

“나 지민이. 어디로 가면 돼?”

ㅡ어?

“나 지민이. 핸드폰 밧데리 나갔어. 어디로 가면 되냐고.”

ㅡ이거 누구 껀데?

“..그냥 잠깐 빌렸어. 빨리 말해.”

ㅡ너 어딘데? 데리러 갈게.

“아니, 아니. 됐어. 나 성수역 앞인 거 같아. 네비찍고 갈 테니까 어디 있을 지만 말해.”

ㅡ대림창고 앞으로 와.


둘의 대화를 엿듣고 있던 민대리가 입모양으로 나 거기 알아라고 했다. 지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전화를 끊었다. 지민은 민대리에게 핸드폰을 건네주기 직전 도로 손을 거두고 통화기록을 지웠다.


“야. 나 그렇게 질척거리는 사람 아니야.”

“아까 태워다준다고 할 때 엄청 질척거려놓고..”

“뭐라는 거야? 크게 좀 말해봐.”

“아, 됐어요. 어! 저긴가 보다!”


진짜 창고네. 빨간 벽돌로 지어진 창고. 벽에는 흰 페인트로 크게 [대림]이라 적혀있었다.


“내려주세요!”


민대리가 창고 맞은편에 차를 세웠다. 지민은 내리려고 손잡이를 잡아당기다가 열리지 않는 차문에 황망해졌다. 덜컥, 덜컥, 덜컥!


“열어 줘요.”

“누구 만나러가?”

“..친구요. 변태에요? 가두는 거 좋아하고.”

“친구? 친구 아닌 거 같은데.”


민대리가 건너편 대림창고 앞을 응시하면서 말했다. 아씨! 태형이 나와 있었다. 지민 못지않게 잘 차려입은 태형이 창고 앞에서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서 있었다. 민대리가 문을 열어줬다. 지민은 용수철처럼 차에서 튀어나왔다. 혹여나 태형이 발견할까봐 잽싸게 움직여 무단횡단을 하려는데-


“야! 박지민!”


이런 씨바..! 뒤에서 민대리가 지민의 이름을 불렀다. 민대리의 외침을 들은 태형이 핸드폰에서 시선을 떼고 앞을 쳐다봤다. 지민은 어색하게 손을 들어 태형에게 인사를 했다. 태형이 고개를 쭉 빼고 지민 뒤에 있는 사람을 확인하는 게 느껴졌다. 지민은 훽 뒤를 돌아보았다. 언제 운전석에서 튀어나온 건지 민대리가 차에 기대 서 있었다. 한 손으로 지민의 폰을 달랑달랑 흔들면서 말이다. 존나존나존나존나게 낭패다! 지민은 안면을 팍삭 구겼다. 그리고 민대리를 향해 빠르게 걸었다.


“진짜 이러기에요?”

“내가 뭘?”


지민이 민대리의 손에서 핸드폰을 낚아챘다. 민대리는 뭐가 그렇게 신나는지 주먹을 입에 대고 키득키득 웃었다. 지민은 민대리를 한 번 쏘아봐준 다음 태형에게 달려갔다. 태형은 뚱한 표정으로 지민과 민대리를 번갈아 봤다.


“야. 나 밧데리가 나가가지고.. 미안.”

“누구야?”

“어?”


태형이 턱 끝으로 민대리를 가리켰다.


“누구냐고.”

“..직장상사.”

“집에 있었다며.”


이 새끼 말투가 왜 이래? 지민은 불쾌한 기시감이 들었다.


“자기도 이 주변에서 약속 있다길래 얻어 타고 왔어.”

“상사랑 친해?”

“..가까이 살아.”

“보통 부하직원한테 야야 거리냐? 너네 회사는?”

“아니. 저 사람만 그래.”

“진짜 별로다.”


태형이 쌀쌀맞게 몸을 돌려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지민은 열불이 터져 뒤에서 태형 모르게 발을 크게 굴렀다.


“우와. 여기 뭐야? 갤러리?”


지민은 대림창고에 발을 들이자마자 그 규모에 압도당했다. 높은 층고와 수평으로 탁 트인 공간이 주는 인상이 대단했다. 창고라더니 진짜 창고를 개조한 모양이다. 입구 쪽에 나무를 철로 이어붙인 커다란 조형물이 있었다. 매끈한 블랙스틸이 받치고 있는 천장은 투명한 마감재를 써 햇빛이 수직으로 창고바닥에 내리꽂혔다. 기다란 공간의 끝에는 무성한 나무들이 옹기종기 모여 정원을 이뤘다. 공간을 장식하는 소품 하나하나가 감각적이었다.


“갤러리도 되고 카페도 되고.”


태형의 말대로였다. 창고를 개조한 이 문화공간은 여러 가지 작품들을 전시해 놓고 있었다. 지민은 조형물, 판화, 그림, 사진 등을 살펴보면서 태형을 따라 걸었다. 둘은 1층의 안쪽에 자리를 잡았다. 지민은 앉자마자 충전기부터 찾았다. 태형이 작게 한숨을 쉬면서 보조배터리를 던져줬다. 폰에 전원이 들어왔다. 지민은 민대리에게 카톡을 했다. 그 사이 태형은 주문을 마쳤다.


옷 깨끗하게 입고 돌려줄게요 오늘 죄송하고 고마웠어요


바로 1이 없어졌다.


그냥 너 가져


이건 또 뭔 소리래?


잘 어울리더라


참내.. 내가 사양할 줄 알아?


개이득ㅋㅋ 땡큐땡큐ㅋㅋㅋ


“야.”


지민이 폰 액정만 들여다보면서 실실 웃으니까 태형이 불퉁한 목소리로 지민을 불렀다. 왜. 지민은 폰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면서 머리를 쓸어 넘겼다.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확실히 세월이 흐르긴 흘렀나보다. 자신과 사귀던 시절의 지민은 순둥순둥하고 귀여운 느낌이 가득이었다. 제가 좀만 화내도 깨갱하고 약간은 찌질하기도 했던.. 근데 지금 지민은


“불러놓고 말이 없어.”


농염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야.”


태형이 고개를 털어 과거로 튀어나가는 생각을 붙들었다. 지민은 기지개를 켜면서 창고 내부를 두리번두리번 둘러봤다.


“네가 이런 데도 다 알아?”

“여기 데이트장소로 유명하잖아.”

“그래? 난 몰랐네.”


지민은 빈정이 상했다. 태형이 하는 말이 자랑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넌 맨날 술이나 퍼먹고 다니지? 이런 데 와본 적 있어? 아니, 제대로 된 데이트를 해본 적은 있어? 피해의식에 사로잡혔다.


“넌 데이트할 때 뭐하는데?”


난 주로 떡치지.. 지민은 튀어나올 뻔한 그 말을 가까스로 삼켰다.


“그냥 영화보고.. 뭐.. 그랬지. 야. 너 왜 보자고 했어? 이거 데이트 맞지?”


지민이 턱을 괴면서 물었다. 태형은 마른 침을 삼켰다. 얘가 미쳤나? 훅훅 들어오네?


“응. 할 말도 있고.”


태형이 가방에서 네이비색 하드커버 노트를 두 권 꺼냈다. 지민은 순간 흠칫했다. 체육대회 때 태형이 교환을 요청하며 건네 준 노트와 비슷하게 생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흠칫한 것은 지민 뿐 태형은 별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런 일이 있었던 줄도 모르겠지.


“이게 뭐야?”

“복기.”

“뭐? 복귀?”

“아니 복기. 복기 몰라?”

“..바둑 끝나고 되짚어 보는 거?”

“응. 그거 해야 해.”

“….”

“우리도 그거 하자.”


지민은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자신 앞에 놓인 노트를 쳐다봤다. 태형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


“여기다가 우리 전에 사귈 때 싸웠던 거, 서운했던 일, 후회했던 거 다 써보자. 그리고 하나하나 고쳐나가 보는 거야. 어때? 괜찮지?”

“….”

“내가 시범적으로 한 개 써봤어. 이거 봐.”


내 기억 속에서 가장 처음 서운했던 일. 박지민이랑 한창 썸 탈 때(나 그때 상병), 싸지방에서 네이트 온으로 박지민한테 버블파이터 하자고 했는데 까였다. 일주일 뒤에 또 하자고 했는데 또 까였다. 서운해서 좀 뭐라 하니까 박지민이 맞춤법 지적함.


지민은 한참 반응이 없었다. 뭐가 잘못됐나? 태형은 긴장해서 지민의 얼굴을 살폈다. 지민의 표정이 안 좋았다.


“너 나랑 장난하려고 다시 사귀자고 그런 거냐?”


지민이 노트를 책상 위로 집어던지며 물었다. 태형도 지민의 비협조적인 태도에 화가 났다.


“이게 왜 장난이야? 나 진지해. 너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임하고 있어.”

“너 네가 하는 짓이 말이 된다고 생각해? 구질구질한 거 끄집어내서 뭐하자는 건데?”

“뭐가 잘못된 건지 알아봐야지.”

“어차피 다 지나간 일이잖-”

“지민아.”


태형이 낮은 목소리로 지민을 불렀다.


“지민아. 우린 미래가 없잖아.”


지민은 말문이 막혔다.


“다룰 수 있는 게 과거 밖에 없어.”

“….”


지민은 제 앞에 놓인 시퍼런 공책을 죽어라 노려봤다. 눈에 힘을 주지 않으면 울컥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지민은 성난 제스츄어로 공책을 집어 들고 일어섰다. 태형이 지민의 손목을 잡아챘다.


“뭐야?”

“알았어. 네 말대로 할게.”

“어디 가는데?”

“집 간다.”

“뭐?”


지민은 손목을 비틀어 빼내려 했다. 태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태형은 지민의 손목을 꽉 틀어쥐고 놔주지 않았다. 손목에 가해진 힘이 너무 세서 지민은 아- 신음했다. 태형은 부리부리한 삼백안의 눈으로 지민을 노려봤다.


“너 아직도 그 습관 못 고쳤어?”

“야. 좀 놔! 아파!”

“맘에 안 들면 사람 내버려두고 도망가는 거?”

“목소리 좀 줄여. 미친새끼야.”


둘은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카페내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었다. 지민이 후 한숨을 내쉬었다. 이러다가 페이스북에 공공장소에서 싸우는 게이커플로 업로드 되겠네.


“앉을게. 놔.”

“….”


태형은 그제 서야 내팽겨 치듯 지민을 놔줬다. 지민은 콩콩 뒤로 밀려났다. 손목에 자국이 선명했다. 지민은 속으로 소새끼, 말새끼, 개새끼 갖가지 새끼새끼를 찾으면서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지민이 앉는 것을 확인한 태형 역시 자리에 앉았다.


“짜증이 나면 말로 해. 너 그거 상대방 무시하는 행동이야. 너한테 질리게 만들어.”

“….”


내가 왜 여기까지 불려 와서 이 따위 소리를 듣고 있는 거지? 지민은 크게 한숨을 쉬었다. 아, 모르겠다. 모르겠어.


“나도 써올게.”

“그래.”

“근데 나 진짜 피곤해. 어제 잠도 많이 못 잤고..”


씨발.. 집 가서 무한도전이나 보고 싶다.


“2시에 깼다며?”


태형이 의심의 눈초리를 했다. 지민은 아차 싶었다.


“서, 선잠 잤어.”


후.. 오늘 왜 이러냐? 숙취인가? 원래 거짓말 졸라 잘하는데. 다행히 태형은 눈치 챈 기색이 아니었다. 둔한 놈.


“내가 코엑스 메가박스 예매했어. 영화 7시 시작이니까 여기서 좀만 있다가 코엑스 가서 저녁먹자.”

“뭐? 왜 나한테 묻지도 않고!”

“너 오늘 약속 없다며!”


지민은 기가 막혔다. 이거 순 제 맘대로야! 변한 거 하나도 없어! 내 탓만 하는 것 까지 모조리 다! 지민은 집에 가자마자 이걸 복기노트에 써주겠다고 다짐했다.


“맘대로 해라. 그래.”


지민이 기권을 선언했다. 이 미친 또라이 새끼.. 누가 손해인지 해보자. 저거 내가 아주 까맣게 물들여 줄게. 지민의 안광이 노트의 색깔만큼이나 푸르게 빛났다.












“그거 사게?”


지민과 태형은 카페에서 두 시간 내내 입씨름을 하고 코엑스로 이동했다. 코엑스에는 주말을 맞아 데이트 나온 커플들이 천지사방에 깔려있었다. 둘은 우노피자에 들어가 피자를 세 판을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해치웠다. 둘 다 정신적인 스트레스에 더하여 침이 마르도록 한 설전 탓에 에너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상태였던 것이다. 이번에도 계산은 태형이 했다. 태형은 카드를 꺼내는 지민을 저지하면서 카운터 직원에게 자신의 카드를 내밀었다. 밥값이 10만원이나 나왔다. 피자 세 판에 로제스파게티 등 온갖 메뉴를 추가하고 맥주를 넉 잔이나 마셨기 때문이다. 태형은 문자로 도착한 결제내역을 보고 기함했다. 그러게 내가 낸다고 했지? 지민이 빈정거렸다. 유나랑 먹을 때는 이만큼 나온 적 없어. 태형이 졸라 얄미운 소리만 골라서 했다. 지민은 앞서가는 태형 뒤통수에 침을 뱉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먹고도 시간이 남아 코엑스에 입점한 매장들을 둘러봤다. 별로 살만한 브랜드가 없었다. 둘은 현대백화점으로 넘어갔다. 태형은 조금 귀찮은 기색이었지만 지민은 봄옷 살 생각에 신이 났다. 톰브라운 매장에서 지민이 멈춰 섰다. S/S 신상이라는 버튼다운 옥스포드 셔츠를 붙들고 움직일 생각을 안했다.


“입어 봐.”

“어? ..어.”


지민은 탈의실에 들어가 셔츠를 입고나왔다. 태형이 괜찮다고 칭찬해줬다. 지민의 눈에도 괜찮아보였다. 지민은 점원을 불러 한 사이즈 큰 걸로 갖다 달라했다. 태형의 머리 위에 물음표가 떴다. 지금 입은 사이즈가 딱인데?


“몇 개월로 해드릴까요?”

“일시불해주세요.”


지민 혼자 왔으면 무이자 3개월을 때렸을 가격이지만 태형 앞이라 그럴 수 없었다. 셔츠는 디자인이 꽤 잘빠졌다. 아르마니 보다는 못해도 민대리 취향에 크게 어긋나지 않을 것 같았다. 한 사이즈 크게 사길 잘한 것 같다. 나보다 어깨는.. 조금 더 넓었던 거 같아.


“아, 그리고 포장해주세요. 추가금액 있으면 같이 결제해주시구요.”

“너 입을 거 아니었어?”


어느 새 계산하는 지민 곁에 선 태형이 그렇게 물었다. 지민은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태형의 눈썹이 꿈틀했다. 도대체 뭔 생각을 하고 있는지 가늠이 하나도 안 되네. 원래 지민이 저렇게 속을 알 수 없는 타입이었나? 아니었는데.. 부처님 손바닥 보듯 훤히 보였었는데. 점원에게서 쇼핑백을 건네받는 지민을 보면서 태형은 저도모르게 한숨을 폭 쉬었다.


영화는 그저 그랬다. 태형의 취향도, 지민의 취향도 아니었다. 사실 태형은 격정적 멜로를 즐기는 지민의 취향을 이해할 수 없었고, 지민은 내용 없는 액션물에 열광하는 태형의 취향을 질색했다. 그래서 선택한 차선책의 블록버스터영화. 그냥 무난했던 거 같다. 둘은 심심한 표정으로 극장을 나왔다.


“아! 야! 너 펜있지? 펜펜!”


남은 팝콘을 버리던 지민이 별안간 다급하게 펜을 찾았다. 태형은 지민의 채근에 가방에서 허겁지겁 펜을 꺼냈다. 지민은 입을 벌린 태형의 가방 안에서 자신의 복기노트를 집어 들었다. 지민이 복기노트를 벽에 대고 무언가를 미친놈처럼 휘갈겨 쓰기 시작했다. 막 영화관을 나온 사람들이 통로를 지나가면서 곁눈질로 흘끔흘끔 지민을 구경했다. 옆에 있던 태형은 쪽이 팔려 죽을 지경이었다.


“야. 꼭 여기서 이래야겠냐? 집 가서 써온다며.”

“까먹을 까봐.”


샥샥샥샥. 지민은 글을 마침없이 써내려갔다. 사람들이 모두 빠져나간 후에야 지민이 방점을 찍었다. 그리고 의기양양한 얼굴로 자신의 복기노트를 태형의 눈앞에 드밀었다.


영화 보다가 얼탱이 없었던 일 1. 김태형이랑 같이 어벤져스를 보러 갔었다. 팝콘 사는 데서 우연히 미영이 커플 만났는데 미영이 커플도 어벤져스를 본대서 어쩌다보니 더블데이트처럼 되어버렸다. 어벤져스를 보고 나왔다. 김태형이 갑자기 미친놈처럼 개화내기 시작하더니 지 혼자 엘리베이터 타러갔다. 미영이가 나한테 김태형 왜 저러냐고 그랬다. 나는 친구한테도 쪽팔리고 화난 이유도 안 말해주는 김태형 짜증나서 울었다. 김태형 그 날 진짜 미친놈이었다. 그러고선 밤에 나더러 왜 안 따라왔냐고 뭐라 했다. 진짜 미친놈이다.


“야. 이거는 네가 그때!”

“또 있어. 뒷장 봐봐.”


영화 보다가 얼탱이 없었던 일 2. 김태형이랑 광해보기 전에 싸웠다. 이유는 모르겠다. 김태형이 잘못했던 거 같다. 아무튼 김태형 또 개화냈다. 영화 시작하기 전까지 화냈다. 그러더니 영화 못 보겠다고 뛰쳐나감. 리얼 또라이. 나 혼자 광해 보고 나왔다. 나오니까 영화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더라. 사과하려고 기다린 줄 알았는데 화내려고 기다린 거였다. 무서운 새끼... 나보고 어떻게 안 따라 나올 수 있냐며 개윽박 질렀다. 영화 끝날 때까지 거기 서 있는 집념.. 또라이 인증이다. 그러고선 나중에 광해 천 만 넘으니까 나 때문에 못 봤다고 한 번 더 관람시켰다. 나 지루해서 잤는데 그거 가지고 또 뭐라 함. 대단한 놈.


“나 이거 진짜 억울해!”


태형이 으어! 천장을 향해 포효했다. 분개하는 태형을 보니 깨소금 맛이었다. 태형을 만난 이후 처음으로 지민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지민은 허리를 뒤로 꺾으면서 웃다가.. 웃다가..


“어? 박지민!”


으억! 지민은 느닷없이 들린 자신의 이름에 놀라서 뒤를 돌아봤다. 미영이었다. 옆에는 정국도 있었다. 둘은 영화를 보고 나오는 길인지 손에 팝콘통과 음료수를 들고 있었다. 지민의 심장이 발밑으로 뚝 떨어졌다. 미영은 지민 옆에 서있는 태형을 발견하더니 입을 쩌억 벌리고 둘에게 다가왔다.


“뭐, 뭐, 뭐야? 너네 둘이 영화 봤어?”

“….” , “….”


미영은 태형과 지민의 사이를 아는 유일한 친구였다. 둘은 말문이 막혀서 눈알만 데록데록 굴렸다. 그 미묘한 분위기를.. 미영은 물론 정국까지 캐치했다.


“어. 영화 봤어. 너 결혼식 전에 만나서 회포도 좀 풀 겸. 나 청첩장도 줄 겸. 겸사겸사.”


태형이 객쩍어하면서 대답했다. 미영은 안면을 굳히고 지민 뒤로 바짝 붙어 섰다. 미영이 속삭였다. 쟤 뭐라는 거야? 너네 뭐냐? 지민 역시 미영에게 속삭였다. 그렇게 됐어. 나중에 설명할게.


“근데 이 분은..”


태형이 정국을 눈짓으로 가리키며 미영에게 물었다.


“어? 어. 내 예랑이! 인사해!”


미영이 정국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웃었다. 지민은 식은땀을 훔쳤다. 다행이다. 김태형이 못 알아봤구나. 그러면 얘도-


“아 씁-”


정국이 갑자기 입술을 감싸 쥐면서 인상을 찡그렸다. 자세히 보니 입술 끝에 피딱지가 져있었다. 태형의 작품이다. 미영이 자기 괜찮아? 라고 묻자 정국은 과하게 아픈 표정을 지으면서 좀 따갑네.. 하고 중얼거렸다. 지민은 잠시 숨 쉬는 것을 까먹었다.


“다치셨나 봐요..”


눈썰미라곤 약에 쓸래도 없는 김태형이 안타까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정국이 태형을 향해 씨익 웃었다.


“네. 개한테 물렸어요.”

“자기. 개한테 물린 거였어?”


미영도 처음 듣는 소린가보다. 미영이 호들갑을 떨며 광견병 주사 같은 거 맞아야하는 거 아니냐고 물었다. 정국이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냐. 미친개는 아니었어. 되게 쬐끄만 애였어.”

“어쩌다 개한테 물렸어.. 진짜 괜찮은 거 맞지이?”

“응응. 괜찮아. 개가 수컷이었는데 내가 옆에 있는 암컷을 좀 귀여,”

“미영아!!! 어디 가던 길이니!!!”

“꺅! 놀랐잖아! 왜 소리를 지르고 난리야! 나 임산부라고!”


정국은 지민이 용쓰는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귀엽네.


“우리 이제 저녁 먹으려고 했지이~ 너네 식전이면 쪼인할래?”


미영이 일어나선 안 되는 일을 제안했다. 지민은 미친 듯이 고개를 가로로 저었다.


“아니, 아니, 아니, 아니. 괜찮아. 우리 영화보기 전에 먹었-”

“그래요. 같이 먹어요. 맥주도 한 잔씩 하면서. 미영이는 쥬스 마셔.”


정국이 미영을 거들었다. 지민의 낯은 흙빛이 되었다. 지민은 제발 거절해 달란 눈으로 태형을 쳐다봤다. 자신이 나서면 정국을 자극할 것 같아서였다. 허나 지민의 바램과 다르게 태형은 그 눈빛을 잘못 해석했다.


“난 괜찮은데?”


시발.. 잊고 있었다. 너랑은 손발 맞은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걸.


“그럼 가시죠.”

“어머어머! 나 너무 신난다. 가자가자~”


미영이 지민을 잡아끌었다. 지민은 영혼이 탈탈 털린 채 미영에게 끌려가면서 뒤를 돌아봤다.


정국과 태형. 두 남자가 어슬렁어슬렁 둘을 따라오고 있었다. 머리가 아찔했다.


아, 진심.. 아버지 날 보고 있다면 정답을 알려줘.

@mysteryhomo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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