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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lseworld 2

지민의 아빠 박철웅은 우선순위가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의 첫 번째 우선순위가 ‘가족’이 아니라 ‘산’이었다는 건, 이 모든 불행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박철웅은 대한민국 대표 산악인이다. 그는 한국인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부친을 따라 막 걸음마를 뗄 무렵부터 국내의 산들을 타기 시작했다. 그는 정복자인 부친의 피를 물려받은 것에 더하여 국가와 기업들의 아낌없는 후원에 힘입어 20대가 되기 전 에베레스트 등 8000m급 히말라야 거봉 14좌를 모두 완등 하는 쾌거를 이뤘다. 최연소 기네스 기록을 갈아치우며 국위 선양한 그에게 온 국민의 찬사가 쏟아졌다. 그의 성공을 마냥 기뻐만 할 수 없는 이는 세상에 단 한명 뿐이었다. 그의 아내, 김은주 말이다.


김은주는 지나치게 지고지순한 여자였다. 연애시절과 결혼 이후를 합쳐 도합 15년, 1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일 년에 서너 번 볼까 말까한 철웅에게 단 한 번도 서운한 소리를 한 적이 없으니 말다한 것이었다. 은주는 늘 자신의 자리에서 철웅을 기다렸다. 철웅은 은주가 또 다른 산 같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인생의 모든 탐험이 끝나는 날, 자신을 시험했던 험준한 산등성이를 뒤로하고 아내의 품에 몸을 누이리라 결심했다. 철웅에게 은주는 한없이 고맙고 애틋한 사람이었다. 비록 우선순위에서 ‘산’에게 밀렸을지언정 말이다.


은주는 철웅이 어떠한 결정을 내려도 지지해주었다. 아버지를 넘어서기 위하여 히말라야 14좌를 무산소 등정하겠다고 했을 때도, 동료의 시신을 수습하러 희망원정대를 꾸린다 했을 때도, 갑작스럽게 알파인 스쿨을 열어 후계자를 양성한다고 결정했을 때도… 늘 지지해 주었다. 그래서 철웅은 은주가 제 철학과 열망을 모두 이해하는 줄로만 알았다.


「부탁이 있어요….」


췌장암 4기였다. 은주는 병마저도 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생명을 잠식하는 것으로 얻었다. 더 이상 손 쓸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관조적인 표정을 짓던 아내가 무서웠다. 당신 얼마나 참아온 거야? 얼마나 오랜 세월을 버텨온 거야? 죽음은 은주에게 차라리 안식 같은 게 아닐까? 철웅은 죄책감에 괴로워했다.


「꼭 들어줘야 해요.」


병상의 은주가 파리한 손으로 박철웅을 붙들었다. 은주의 안색이 지나치게 창백했으나 철웅은 너스콜을 누르지 않고 침착한 태도로 은주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철웅은 이것이 은주의 마지막임을 직감할 수 있었다. 산을 오르내리며 정상과 무덤, 빛과 어둠, 삶과 죽음의 순간을 무수히 체험한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은주는 간병인 침대에 잠든 어린 지민에게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절대로, 절대로 안 돼요.」


철웅을 붙든 악력이 점점 세졌다. 회광반조回光返照라는 말이 있다. 해가 지기 직전에 일시적으로 햇살이 강하게 비추어 하늘이 밝아지는 현상 혹은 사람이 죽기 직전에 잠시 원기를 되찾는 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은주가 딱 그 짝이었다. 은주는 전에 없이 또렷한 눈빛으로 철웅을 쳐다보면서 처음으로 그에게 요구했다. 아니, 명령했다.


「지민이는 절대로 안 돼.」

「….」

「절대로 산에 오르게 하지 마.」


철웅은 대답하지 못했다. 겁에 질려 고개를 살짝 끄덕였을 뿐이다. 그 미세한 움직임을 확인한 은주는 팔을 침대로 툭 떨궜다. 곧이어 은주의 눈이 감기고 몸에서 생명이 빠져나가는 것이 보였다. 무시무시한 유언이었다.


그쯤의 철웅은 은주를 간병하는 동시에 자신이 설립한 알파인 스쿨에서 후배들을 양성하는일에 힘쓰고 있었다. 철웅이 훈련시키는 이중에는 이제 막 초등학교 고학년에 접어든 철웅의 친아들 지민도 있었다. 철웅은 그의 아버지가 그러하였듯 지민이 자신을 따라 산악인이 되길 원했다. 지민은 철웅과는 다르게 타고난 신체조건이나 체력이 썩 훌륭한 편은 아니었지만 체계적인 훈련과 적절한 지원이 따라 주면 엘리트 산악인 타이틀 달아주는 거야 어렵지 않겠다 싶었다.


철웅은 지민에게 모든 것을 물려 줄 생각이었다. 산으로부터 얻은 깨달음, 드높은 명예, 축적한 부, 국내 전무후무한 알파인 스쿨까지도.


헌데 은주의 유언으로 그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철웅은 깊은 고민에 빠졌으나 자신의 우선순위를 따르기로 결정했다. 그의 두 번째 우선순위는 ‘은주’였다. 철웅은 지민을 훈련시키는 것을 관뒀다.


어린 지민은 어리둥절했다. 엄마가 병상에 누워있을 때조차 기초체력훈련과 클라이밍 수업을 빠지지 못하게 했던 아빠가 갑자기 알파인 스쿨에 나올 필요가 없다고 했다. 아빠의 우선순위를 죽은 엄마만큼이나 잘 알던 지민은 불안감에 휩싸였다. 아빠가 금방이라도 자신을 버리고 떠날 것만 같았다. 아빠만큼 강하지 않아서, 눈앞의 벽을 오르지 못해서! 지민은 철웅에게 좀 더 잘 하겠다고, 잘 할 수 있다고 매달렸으나 철웅은 단호했다. 철웅은 지민의 치열한 생존투쟁을 모르고 단순히 떼를 쓴다고만 생각했다. 그래서 지민이 보내는 S.O.S 신호를 보지 못했다.


철웅은 기괴한 방식으로 지민을 대신할 아이를 찾기로 했다. 철웅은 그를 후원하는 대기업과 협력하여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하였는데, 그 활동의 내용인즉슨 전국의 보육원을 돌면서 고아들을 알파인 스쿨 캠프로 초대하는 것이었다. 초대받은 아이들에게는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최신 구스다운의류가 선물로 주어졌기에 보육원 아이들은 철웅의 캠프에 참여하기 위해 혈안이었다.


지민은 아빠가 ‘새 아들’을 찾고 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열 세 살 지민의 마음은 울화와 반항심으로 가득 찼다.

「악!」


그래서 지민은 더 이상 클라이밍을 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자신의 깜냥에 얼토당토 않는 코스를 시도하는 치기어린 짓을 벌였다. 그리고 곧, 여름동안 목숨을 불태운 매미가 고목나무에서 뚝 떨어져나가듯 천장에서부터 추락했다. 성인남성이었다면 척추가 골절되었을 법한 큰 사고였으나 아이인데다가 보통 사람들 보다 훨씬 유연한 몸을 가진 것이 천운으로 작용하여 오른다리가 아작나는 정도로 끝났다. 철웅은 대노했다. 지민은 철웅이 화내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억울하고 서럽고 철웅이 미웠다. 부자지간의 골은 그렇게 깊어갔다.


지민은 깁스를 하고서라도 꼬박꼬박 알파인 스쿨에 출석도장을 찍었다. 형형색색한 눈으로 아빠의 새 아들 후보들을 지켜보는 것이 지민의 일과가 되었다.


누가 내 동생이 되는지 한번 봐보자.


지민은 이를 까득까득 갈면서도 알파인 스쿨에 드나드는 아이들을 제 나름대로 평가했다. 대부분이 생전 처음 경험하는 사치스런 나들이에 철없이 신나 캠프 일정은 뒷전이었다. 지민은 안도했다. 그래, 이걸 진지하게 생각하는 애는 없을 거야. 이게 뭔 줄 알고? 이 힘든 걸 해내는 애는 없어. 없을 거…


「우와아!」


환호성 소리가 들렸다. 아이들이 천장을 향해 고개를 쳐들고 있었다. 지민은 아이들의 시선을 따라갔다. 삐쩍 마른 아이하나가 지민이 실패했던 코스를 타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거침없이. 마른 장작개비 같은 몸에서 나오는 것이라고 상상할 수 없는 근력이었다. 어떤 계산을 하고 손을 뻗는 게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혹은 필사적으로 아이는 정상에 도달했다. 지민은 두려운 눈으로 정상에 오른 아이와 지상에서 아이를 바라보는 철웅의 얼굴을 번갈아 보았다.


엄밀히 말하면 알파인 스쿨에서 가르치는 클라이밍과 실제 빙벽을 타는 일을 비교하는 것은 발야구와 야구를 동일선상에 두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짓이다. 그래서 지민도 처음에는 철웅이 벌이는 일들을 조금 우습게 생각했다. 하지만 그 아이를 본 순간, 그 순간 지민은 철웅이 찾으려 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강한 승부욕, 타고난 체력와 센스, 필사의 의지… 뭐 그런 것들의 결합체. 딱 한 단어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강렬한 아우라. 그 아우라를 가진 아이가 지민의 인생에 출현했다. 그 첫 장면 만으로도 지민은 아이와 자신이 지독하게 엮일 운명임을 직감했다.











운명은 생각보다 더 이르게 지민을 찾아왔다. 철웅은 아이를 발견한 그 해에 지민 앞에 크리스마스 선물과 함께 아이를 드밀었다. 괴이한 짓거리가 아닐 수 없었다.


「지민아. 정국이야.」


원래 이름일까? 아니면 철웅이 새로 만든 것일까? 아이의 이름을 들은 지민의 머리에 가장 먼저 떠오른 의문은 그거였다.


「오늘부터 우리 집에서 같이 살 거야.」

「…내가 얘랑 왜 같이 살아?」

「정국이는 이제 네 동생이니까.」

「얘가 왜 내 동생인데?」


지민은 정국을 흘겨보며 물었다. 질투로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가까이서 본 정국은 생각보다 더 초라한 몰골이었다. 잘 먹지 못해 피부는 거칠었고 열한 살이라더니 덩치가 일이학년 애들보다도 작았다. 푸석푸석한 머리에는 비듬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것들이 내려 앉아있었으며, 입가에는 버짐이, 눈에는 눈곱이 잔뜩 끼어있었다. 어린 지민은 인정할 수 없었다. 얘가 내 동생이라고? 나랑 같은 집에 살고, 학교도 같이 다녀야 한다고? 모든 것이 부당하다고 여겨졌다.


「아빠가 그러기로 결정했어.」

「왜?!」

「지민아.」

「난 싫어!」

「박지민!」

「우리 집에서 나가라고 해!」


지민은 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갔다. 노골적인 거부의 표시였다.


지민이 방에서 울분을 삼키고 있는 사이 정국은 철웅으로부터 ‘제대로’ 씻으라는 얘기를 들었다. 오늘 철웅이 데리러 온다하여 새벽부터 목욕재계를 하였는데 아무래도 철웅의 수준에는 맞지 않았나보다. 정국은 자신을 불결한 것 보듯 보던 지민의 눈빛을 상기했다. 내가 너무 더러워서 그런 건가?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지민이라면 그럴 수도 있었다. 정국은 쉽게 납득했다. 알파인 스쿨에서 처음 봤을 때도 그러했지만 지민은 코앞에서 봐도 티 한 점이 없었다. 정국은 살아생전 지민만큼 흠결이 없는 존재를 만난 적이 없었다. 홍조가 살짝 떠 있는 뽀얀 볼은 수년 전 국립박물관에 견학 갔을 때 보았던 도자기의 표면처럼 매끄러웠다. 지민의 결 좋은 흑발은 그 주인이 조금이라도 자세를 바꾸면 움직임에 따라 부드럽게 춤을 췄는데 꼭 민들레 홀씨가 바람에 흩날리는 것 같았다. 또렷한 감정을 담고 있는 눈, 아기오리의 부리처럼 튀어나온 입술, 지민에게서 나던 좋은 향기….


정국에게 철웅이 지옥 같던 보육원 생활을 끝내 준 구세주라면, 이 집은 천국이고, 지민은 그 천국에 사는 천사였다.


「앗, 뜨거!」


정국은 무심코 레버를 당겼다가 갑작스럽게 퍼부어진 뜨거운 물에 화들짝 놀라 샤워부스에서 뛰쳐나갔다. 하마터면 화상을 입을 뻔 했다. 온 피부가 다 얼얼했다. 정국은 조심조심 부스 안으로 들어가 레버를 찬물 쪽으로 조금 기울였다. 알맞은 온도의 온수가 콸콸 쏟아져 나왔다. 한번 씻을라치면 너댓명이 함께 들어가야 하는, 타일이 다 깨져 시멘트 바닥이 훤히 드러난 공용샤워장에서 탈출했다는 실감이 났다. 여기, 자신과 새아버지 그리고 천사가 사는 이 집은, 한 겨울에도 찬물로 물 칠을 해야 하는 곳이 아니었다. 그 사실이 정국을 설레게 만들었다.


정국은 오랜 시간 공들여서 꼼꼼히 씻었다.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철웅이 지민이 어릴 때 입던 내의를 들고 서 있었다. 철웅은 중요부위를 손으로 가리고 쭈볏쭈볏거리는 정국을 보곤 내심 놀랐다. 원래도 똘망똘망한 인상이긴 했지만 꾀죄죄함에 가려 그냥저냥 귀여운 정도였는데 이제 보니 이목구비 주차가 아주 환상적이었다. 잘 먹이고, 잘 입히면… 여자 깨나 울릴 인물로 자랄 공산이 커 보였다.


철웅은 정국에게 내의들을 안겨주며 입으라했다. 정국은 지민의 냄새가 배인 파자마를 꿰어 입었다.


「정국아. 밥솥에 밥 있으니 배고프면 냉장고에 반찬 꺼내서 먹고.」

「네.」


정국은 철웅을 올려다보면서 순하게 대답했다.


「김치냉장고 옆에 보면 과자도 있어. 아저씨… 아니, 아빠는 잠깐 나갔다와야 하거든?」

「네.」

「심심하면 티브이 보고. 아, 형 불러서 같이 보자고 해. 알았지?」

「…네.」


크리스마스에 조차 공사가 다망했던 철웅은 막 형제가 된 둘을 남겨두고 기어이 집을 나섰다.


정국은 철웅이 알려준 대로 스스로 저녁을 해결했다. 김치냉장고 옆에서 과자봉지도 찾아냈다. 철웅의 취향인건지 죄다 건빵뿐이었다. 정국은 건빵봉지를 끌어안고 거실 쇼파에 앉아 굳게 닫힌 지민의 방문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민의 방문에는 산타를 위해 준비해놓은 커다란 빨간 양말이 달려있었다.


「….」


정국은 지민의 방문 앞으로 향했다. 그리고 건빵봉지에서 빼낸 별사탕을 양말 안에 넣었다.


나를 미워하는 나의 형.


정국은 오늘 밤, 아니 한동안은 이 문이 쉽게 열릴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민은 정국을 괴롭히는 유치한 짓은 하지 않았으나 없는 사람 취급했다. 정국과는 눈도 마주치려 들지 않았다. 지민의 살벌한 태도 때문에 정국은 언감생심 지민에게 말 걸어볼 엄두조차 못 냈다. 겨울방학 내내 살얼음판 위를 걷는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러던 중 그 꼴을 보다 못한 철웅이 정국을 지민의 방으로 몰아넣는 강수를 두었다. 몸을 부대끼다보면 친해질 거라는 일차원적인 사고의 발로였다.


「으어어어!! 내 방이야!! 나가!! 나가아!!」

「뚝 안 그쳐?!」


정국은 베개를 품에 안고 지민의 침대 옆에 서서 어쩔 줄 몰라 했다. 방 안의 지민은 자신더러 나가라며 자지러지게 울고, 문 밖에서는 철웅이 소리를 질러댔다. 난감해서 식은땀이 다 흘렀다. 정국은 저러다 지민이 졸도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보육원에서 그런 경우를 자주 보았다. 자신을 버리고 떠난 엄마아빠 때문에 울다 기절하는 아이들말이다. 정국은 그 통곡소리를 들을 때마다 귀를 틀어막고 우는 아이의 입을 처 막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단 한명도 예외는 없었는데… 그랬는데… 지민이 우는 건 달랐다.


「정국이랑 같이 자!!!」

「으어어어!!」


더 울까봐 걱정이 됐다. 지민이 울음을 그칠 수만 있다면 방 밖이 아니라 집 밖에서도 자도 괜찮을 것 같았다. 정국은 당장 방에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철웅에게 밉보일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했다.


「나가아! 나가!」


정국은 차마 나가진 못하고 지민과 최대한 멀리 떨어진 방구석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들고 있던 베개를 방바닥에 놓고 벽 쪽을 향해 머리를 뉘인 후 몸을 웅크렸다. 이 작은 영역을 절대 벗어나지 않겠다는 의지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지민의 방은 보일러 온기로 훈훈하긴 했지만 정국이 누운 곳은 베란다 확장 공사 인해 웃풍이 들었기 때문에 어린아이가 이불도 없이 자기엔 무리였다.


「끄흡….」


수분이란 수분은 다 쏟아낸 지민이 침대 위로 벌러덩 누웠다. 눈두덩이 퉁퉁 부어서 좁아진 시야에 정국의 모습이 포착되었다. 방구석에 기어들어가 누워있는 작은 등이 보였다. 이곳에 온 건 자신의 의지가 아니며 당신을 울릴 생각도 없었다고 변호하는 등이었다.


「….」


…그렇게 불쌍한 척 알면 재워 줄줄 알고?


잠깐 마음이 흔들릴 뻔 했던 지민은 부러 코웃음을 치면서 등을 돌렸다. 온수매트가 깔린 따듯한 침대에 누워 극세사 이불을 정수리까지 당겨 덮었다. 이불 속은 불쾌할 정도로 후끈했다. 진을 뺀 탓인지 묘하게 마음이 불편한 와중에도 수마가 찾아왔다. 지민은 까무룩 잠에 들었다.


「허억, 헉, 헉…!」


온수매트의 온도가 너무 높았던 걸까? 지민은 한밤중에 이불을 떨치고 일어났다. 온 몸이 땀에 절어있었다. 젖은 내의가 살갗에 끈적하게 달라붙었다. 아, 더워…. 지민은 끄응 신음을 흘리면서 주변을 둘러보다가 정국의 존재를 발견했다. 벽을 보고 누웠던 정국은 잠결에 몸을 뒤척인 건지 지민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무드등 빛이 정국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쳤다. 지민은 정국과 가족이 된지 한 달 만에 정국을 제대로 보았다. 한 달 동안 끼니를 잘 챙겨먹은 정국의 볼에는 보기 좋게 살이 붙어있었다. 푸석했던 머리카락은 영양을 제대로 공급받아 한눈에 보아도 보드라워 보였고, 각질이 잔뜩 돋아있던 입술은 반질반질하게 정리되었으며, 버짐과 눈곱은 자취를 감췄다. 내리깔린 정국의 속눈썹이 여자애들이 가지고 노는 인형의 그것처럼 빽빽했다. 티브이에 나오는 아역 배우 같았다. 아니, 그보다도 생김새가 섬세했다. 쟤가 저렇게 생겼었나? 미美를 향한 호기심이 분노의 눈을 가렸다. 지민은 저도 모르게 침대에서 내려가 정국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


가까이서 보니 기분이 더 이상했다. 머릿속 한 켠이 간질간질한, 심장 어딘가가 찌릿찌릿한, 단전이 울렁울렁거리는…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각이 몰아쳤다. 지민은 자신을 홀리려는 요사스러운 어떤 것을 떨쳐내려고 고개를 세차게 흔들었다. 그리고 다시 정국을 내려다보았다.


「너무 심했나….」


이젠 정국이 안쓰러워 보이기까지 했다. 자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는데… 이상한 일이었다. 지민은 스스로를 이해할 수 없어하면서도 침대로 가 극세사 이불을 들어올렸다. 어차피 토퍼 위에 매트이불이 있으니 자신은 그것을 덮고 자면 되고 이건 쟤한테 덮어줘야 겠,


「헉!」


이불을 한 아름 안고 돌아선 지민은 정국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자신을 올려다보는 것을 발견하고 놀라서 엉덩방아를 찧었다.


「뭐, 뭐야!」


지민이 정국에게 최초로 말을 건 순간이었다.


「….」


정국은 대꾸가 없었다. 그저 흔들림 없는 눈동자로 지민을 응시할 뿐이었다. 얘가 왜이래? 바닥에서 재웠다고 원망하는 건가? 지금 시비 거는 거야?


「…야.」

「….」


수 초가 지나도 정국은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설마 몽유병? 어렸을 적 약한 몽유병이 있어 눈뜨고 자는 것쯤이야 예삿일이었던 지민이었기에 떠올릴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 지민은 이불을 치워두고 정국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갔다. 지민 스스로는 자신의 몽유병 증세에 대해 기억하지 못했다. 다만 돌아가신 엄마 입을 통해서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에 가끔 눈을 뜨고 자고, 잠든 채 집 안을 돌아다니고, 해괴한 짓거리를 한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을 뿐이었다. 지민은 정국의 코앞까지 제 얼굴을 드밀었다. 그리고 정국의 눈앞에 휘휘 손을 흔들었다. 나도 이랬을라나? 이렇게 꼭 눈 못 감고 죽은 사람처럼…


타악-!

「헉!」


아까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놀랐다. 비명을 지르지 않은 것이 용했다. 정국이 손을 전광석화처럼 뻗쳐 지민의 손목을 움켜잡았기 때문이다. 초점 없이 고정되어있던 눈동자가 스르륵 위로 이동해 정확하게 지민을 조준했다. 지민은 숨 쉬는 것도 잊어버렸다. 온 몸의 털들이 다 기립했다. 얘는 정국이 아니라 귀신이다. 이제 날 잡아먹을 거야! 도망쳐야해! 지민이 용기를 내서 잡힌 팔목을 비틀려 할 때였다. 정국이 자리에서 반쯤 일어나며 손으로는 지민을 확 끌어당겼다. 둘 사이의 거리가 한 뼘도 안 되게 좁혀졌다. 정국은 지민을 똑바로 바라보면서 입을 열었다.


정국은 지민이 알지 못하는 언어를 한참이나 지껄였다.


지민이 감히 흉내 낼 수도 없는 소리였다. 영어나 일본어가 아닌 것은 확실했다. 인간의 언어가 맞는지도 의문이 들었다. 분명 사람 성대를 사용해서 내는 소리인데 짐승의 울음과 더 비슷했다. 흉측한 소리를 줄줄이 쏟아낸 정국이 어느 순간 스위치가 꺼진 것처럼 모든 행동을 뚝 멈췄다. 그리고 눈을 감더니 거짓말처럼 다시 잠에 들었다. 지민의 팔목을 놓지 않은 채로 말이다.


「….」


지민은 정국에게 잡힌 팔을 빼냈다. 그리고 엉덩이 걸음으로 정국으로부터 달아났다. 불시에 주먹따귀를 내어준 사람마냥 얼얼한 표정이 되어선 자신의 다리 사이를 확인했다. 축축했다. 오줌을 지려버린 것이었다. 다섯 살 이후론 침대에 지도 그린 역사가 없는 지민이었다. 지민의 얼굴은 금세 빨갛게 달아올랐다. 놀란 감정은 사라지고 수치심과 이 사태를 아무도 모르게 처리해야한다는 초조함이 밀려들었다. 지민은 가져온 이불을 정국의 몸통위로 던져놓고 밤새 뒷정리와 빨래를 했다. 정국이 내뱉은 ‘말’은 뒷전이 되었다.


다음 날, 정국은 포근함을 만끽하며 잠에서 깼다. 어젯밤에는 밀려드는 한기를 겨우 참고 잠을 이뤘던 것 같은데… 어떻게 된 일일까? 무거운 눈꺼풀을 들어올렸다.


「…!」


지민이 덮고 자던 이불이 제 몸 위에 덮어있는 걸 확인한 정국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다가 그 다음에는 놀랐고 또 기뻐했다가 종국에는 울 것 같은 기분이 되어버렸다.


「정국아. 일어났니? 밥 먹어야지.」


방문너머에서 집안일을 돌봐주는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국은 답지 않게 늦잠 자는 척을 했다. 지민은 먼저 일어난 것인지 이미 방 안에 없었다. 정국은 지민의 눈치를 보지 않고 이불 속을 뒹굴었다. 그 안에서 나가고 싶지 않았다. 형이 베푼, 형의 냄새가 나는 작은 공간에 머물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조금만, 조금만 더, 더…. 정국은 아주 오랜만에 무언가를 욕망하게 되었다.











철웅 가족이 거주하는 강남의 노른자 땅은 원체 소문이 빠른 동네였다. 지민이 다니는 명문초등학교의 학부모들은 브런치를 먹는답시고 모여 철웅네 새 식구에 대한 이야기를 실컷 떠들다가 집에 돌아가서 제 자식들에게 말을 조금씩 흘렸다. 정국은 입학 첫날부터 화제의 중심이 될 수밖에 없었다.


「쟤야, 쟤! 쟤가 박지민 동생이래.」

「헐. 진짜 하나두 안 닮았다.」

「당연하지. 빠가야. 입양했다잖어. 박지민네 아빠가 직접 골랐다는데?」

「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싸가지 없이.」

「진짜야! 우리 엄마가 그랬어!」

「맞아. 박지민 아빠가 박지민 대신 산 데려가려고 뽑은 거래.」

「구라. 진심?」

「어! 우리 형이 박지민 아빠네 학원에서 운동하잖아. 하루 종일 쟤만 봐주고 있대. 박지민은 아무것도 안하고 앉아서 그거만 보고 있고.」

「그냥 다리 다쳐서 그런 거 아님?」

「박지민이 그래서 쟤 존나 싫어해.」


정국과 동갑인 4학년 아이들뿐만 아니라 6학년 지민의 친구들까지 몰려와서 정국을 구경했다. 그들이 교실창문에 옹기종기 매달려 지껄이는 소리가 정국의 귀에 와서 콕콕 박혔다. 박지민이 그래서 쟤 존나 싫어해. 그 말이 좀처럼 잊혀 지지 않고 귓가에 맴돌았다. 박지민이 그래서 쟤 존나 싫어해. 박지민이 쟤 싫어해. 박지민이… 형이 나를 싫어해.


정국은 며칠 동안 철창 안에 갇힌 원숭이 꼴로 지냈다. 남자아이들은 노골적으로 정국을 따돌렸고, 여자아이들은 정국의 외모에 혹해 몇 번 말을 걸었지만 또래 이성을 상대해본 일이 적은 정국이 그들을 무뚝뚝하게 무시하기 일쑤라 이내 험담의 대상이 되었다. 정국은 학교에서의 시간을 묵묵히 버텨냈다. 수업은 따라가기 버거웠고, 아이들은 짜증나게 굴었으며, 시간은 지독하게 가지 않았으나 그걸 모두 견디면 정국이 하루 중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 왔다.


정국은 중앙현관에서 지민을 기다렸다. 오늘은 4학년이 4교시까지만 하는 날이라 두 시간이나 지민을 기다려야했다. 정국은 중앙현관에 설치된 긴 수조를 관찰하며 시간을 죽였다. 딩동댕동. 이윽고 6교시를 마치는 종이 울렸다. 정국은 퍼뜩 고개를 들어 중앙계단을 바라보았다. 머지않아 성질 급한 아이들이 앞 다퉈 쏟아져 나오고, 그 다음으로는 학교 앞에 대기하고 있는 대형학원 차에 타야하는 아이들이 단어장을 들고 내려왔다. 그렇게 한 무리, 두 무리, 세 무리를 보내고 나서야 지민이 등장했다. 지민은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내려오다가 정국을 발견하고는 입을 합 다물었다. 정국은 지민 무리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지민은 한숨을 폭 쉬었다. 정국과 지민의 하굣길을 묶어버린 건 철웅의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4학년과 6학년의 시간표가 다르단 건 자식들 학교생활에 무심한 철웅이 고려하지 못한 내용이다. 지민은 크게 반발했으나 철웅의 권위 앞에서는 소용이 없었다. 가사도우미에게 둘이 같이 하교하는지 확인 좀 해달라고 말까지 해놓은 상태라 지민은 어쩔 수 없이 정국과 함께 귀가했다. 정국이 지민 뒤를 멀찍이 떨어져 따라가는 모양새로 말이다.


「야. 나 먼저 간다.」

「피방 안 가?」

「어.」


지민은 그저께 친구들이랑 PC방을 갔었다. 정국은 신경도 안 썼다. 한참 친구들과 피파를 하고 날이 어둑해질 때쯤 나왔는데 건물 입구에 정국이 서 있는 걸 발견했다. 건물 안이라 해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지라 많이 추웠을 거다. 아니나 다를까 정국은 입술이 보라색으로 변해있었다. 지민은 내심 놀랐지만 아닌 척 휙 가버렸고 친구들은 기함을 했다.


「뭐야! 같이 승급하기로 했잖아!」

「아, 몰라. 가방 줘.」


민호는 안 된다는 듯이 지민의 가방을 뒤로 숨겼다. 지민이 가방을 낚아채려고 몸을 날렸으나 깁스 때문에 움직임이 자유롭지 않아 크게 휘청거렸다. 민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민이 안달 내는 걸 보니 놀려먹는 재미가 있었나보다. 가방을 위로 들었다가 아래로 내렸다가 옆으로 돌렸다가 난리를 쳤다.


「아! 진짜! 걍 내놔라!」

「싫은데? 뭐 해줄 건데?」

「뭘 뭘 해줘!」

「뭐 해줄건데에~ 엇!」


정국이었다. 정국이 민호의 손에 들린 지민의 가방을 낚아챘다. 예상치 못했지만 순발력이 있었던 민호 역시 가방을 놓치지 않았지 때문에 둘 사이에서 가방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정국은 민호를 똑바로 쳐다봤다. 민호는 기분이 팍 상했다.


「뭐야?」

「….」

「너 뭐야? 안 놔?」

「….」

「이 새끼가 돌았나.」


민호가 막 주먹을 날리려고 할 때였다. 지민이 중간에 끼어들어 가방을 제 쪽으로 잡아당겼다.


「야. 됐어.」

「아, 씨발. 야. 얘 왜이래? 나 존나 꼬라보잖아. 지금!」


민호가 정국을 향해 소리쳤다. 말없이 박지민 졸졸 따라다니는 게 스토커 같아서 가뜩이나 맘에 안 들었는데 잘 됐다 싶었다.


「됐어. 그만해. 뭐 해주면 되는데?」

「….」


지민이 민호를 말렸다. 민호는 잠시 고민하더니 가방을 놨다.


「…생각해보고.」


지민은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을 받아서 멨다. 그리고 정국 쪽은 보지도 않고 혼자 학교를 빠져나갔다. 짜증이 나서 미칠 것 같았다. 그냥 맞게 놔둘걸! 내가 왜 걔를 챙겼지? 애들은 동생 감싼다고 생각했겠지! 내가 걔를 인정한 꼴이잖아! 지민은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휙 뒤돌았다. 역시나 정국이 멀지 않는 거리에서 지민을 따라오고 있었다.


「야!」


지민의 부름에 정국은 후다닥 달려갔다.


「너 나 따라오지 마!」

「….」

「따라오지 말라고!」

「….」

「따라오면 죽여 버린다!」

「….」

「내 눈에 띄지 말고! 나 가는 길로 다니지도 말고! 앞으로 너 알아서 집 가! 알았어?! 아빠한테 혼자 다닐 수 있다고 하란 말이야!」


지민은 성을 내고 뒤돌아서 갈 길을 갔다. 지민은 이제 될 대로 되라 싶었다. 아빠가 무서워서 말을 들었지만 더 이상은 못 참았다.


「정국이는 같이 안 왔니?」

「몰라요.」


물어보는 가사도우미를 무시하고 방으로 들어갔다. 아줌마가 이르면 이르는 거지 뭐! 몰라! 막 나가기로 결심하니 무서울 게 없었다. 지민은 침대에 드러누웠다. 달고 다니던 혹을 하나 뗀 것 같아서 마음이 후련했고 그래서인지 핸드폰을 조금 만지작거리다가 잠이 왔다.


「지민아.」

「…우음.」

「박지민. 일어나봐.」


지민은 자신을 흔들어 깨우는 손길에 부스스 눈을 떴다. 아빠였다. 철웅은 심각한 얼굴이었다.


「왜에….」

「정국이, 정국이 어디 있어? 오늘 정국이랑 같이 안 왔어? 어디 놀러 간다고 했니?」

「…?」


지민은 사태파악이 느렸다. 왜? 왜 나한테서 걔를 찾아? 지민은 반사적으로 벽시계를 확인했다. 시계는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

「박지민.」


지민의 아차한 표정을 캐치한 철웅이 지민을 엄하게 불렀다. 지민은 당황했다. 9시인데 아직도 안 왔다고? 설마 길을 잃어버린 건가? 말이 안 되잖아! 학교에서 집 오는 길 쯤이야..


내 눈에 띄지 말고! 나 가는 길로 다니지도 말고! 앞으로 너 알아서 집 가! 알았어?! 아빠한테 혼자 다닐 수 있다고 하란 말이야!


정국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말이 안 되는 게 아니었다. 정국이라면, 정국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었다. 자신에 말에 따라 다른 길을 찾는 바보 같은 짓을 할 수 있는 애였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아, 아빠. 내가 걔보고 따라오지 말라고 했는,」


쫘악-


바로 손바닥이 날아왔다. 태어나서 처음 맞아본 충격에 지민은 벙쪄 있다가 후두둑 눈물을 흘렸다.


「너 미쳤구나. 어!? 나가서 정국이 찾아와! 얼른!」


철웅은 경찰서에 전화를 하면서 밖으로 뛰쳐나갔다. 한참 엉엉 눈물을 짜내던 지민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민은 울면서 동네를 돌아다녔다. 지나가던 어른들이 괜찮냐고 말을 걸 정도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울음은 잦아들었지만 두려운 마음은 커져갔다. 정국이 없었다. 학교에서 집까지 그리 먼 거리가 아닌데… 혹시 유괴를 당한 걸까? 나 때문에? 지민은 덜컥 겁이 났다. 지민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지민은 혹시나 해서 학교로 향했다.


「…야.」


학교에 도착하기 직전, 그러니까 오후에 자신이 따라오지 말라고 했던 정확히 그 지점에 정국이 서 있었다. 지민은 PC방 건물 앞에서 느꼈던 감정을 또 느꼈다. 이번에는 더 강렬했다.


「너 바보 아냐?」

「….」

「너 바보 아니냐고.」

「….」


아니라는 말조차 안 한다. 정국은 칼바람에 얼굴이 하얗게 질려있었다. 정국의 손등은 어두운 곳에서도 확연히 보일만큼 빨갛게 부르터 있었다. 지민은 왈칵 눈물이 터졌다.


「여기 있으면 어떻게 하냐고 멍청아!」


지민이 정국 앞에서 펑펑 울었다. 정국은 어쩔 줄 몰라 했다. 그 모습마저도 바보 같았다.


「허읍… 따라…와.」

「….」

「따라오라고!」


정국이 고개를 끄덕였다. 둘이 1분쯤 걸었을까 지민이 걸음을 멈췄다. 목발을 가지고 나올 정신이 없어 그냥 돌아다녔더니 다리에 무리가 온 것이었다. 지민은 입술을 깨물었다. 정국은 지민의 변화를 귀신같이 알아채고 후다닥 지민의 앞으로가서 등을 보이고 앉았다.


「뭐야….」

「다리 아프니까….」

「됐어. 나와.」

「계속 걸으면 다리 빨리 안 나을 텐데….」


집까지 10분은 더 걸어야했다. 지민은 정국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정국에게 업혔다. 사실 맞은 뺨도 너무 아프고 다리도 찌릿찌릿해서 걱정이 되던 참이었다. 저보다 작은 정국에게 업힌다는 사실이 자존심 상하긴 했으나 지금은 이것저것 따질 힘이 없었다. 정국은 지민을 쉽게 업었다. 정국은 형이 자신에게 업혔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집으로 가는 10분이 너무 짧게 느껴졌다.


철웅은 정국에게 업혀 들어오는 지민을 보더니 기가 막힌 표정을 지었다.


「운동장에서!」

「….」

「운동장에서 놀다 왔어요! 죄송해요….」


눈치 빠른 정국이 지민을 변호했다. 정국에 등에서 내려온 지민은 아무 말 없이 죄인처럼 서 있었다. 철웅은 둘을 내려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정국이 앞으로는 늦지 말고. 늦으면 꼭 전화주고.」

「…네.」

「가서 씻고 와. 박지민 너는 아빠랑 얘기 좀 하자.」


정국은 지민을 두고 발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철웅의 태도가 고압적이라 하는 수 없이 화장실로 들어갔다. 철웅은 지민을 앞에 세워두고 또 한참 말이 없었다.


「아빠가 때린 거 미안하다.」


무뚝뚝한 철웅의 사과에 지민의 눈물샘이 또 터졌다. 지민이 엉엉울자 철웅은 지민을 안아줬다.


「저도 잘못 했어요….」

「앞으론 다신 정국이한테 그러지마.」

「네에….」

「너 정국이가 왜 저 나이까지 보육원에 있었는지 아니?」

「….」

「정국이는 우리랑 가족이 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랑 가족이 되었던 적이 있어.」

「…!」

「근데 그 사람들이 정국이를 다시 보육원으로 돌려보냈대. 파양…이라는 말 알지?」


지민은 충격을 받아서 고개를 끄덕이지도 못했다.


「왜냐면 그 집 친아들이 정국이를 너무 싫어해서… 그래서 그런 몹쓸 짓을 했다는 거야.」


정국은 보육원에서 나이가 많은 편이었다. 예쁘장한 외모 덕에 어릴 때 입양이 되었지만 철웅 말대로 파양 당했고 그 기록 때문인지 그 후로는 사람들이 입양을 꺼려했다. 정국에게 뭔가 문제가 있을 거라고 지레 짐작한 거였다.


「지민아. 정국이는 우리 가족이야. 아빠는 정국이를 돌려보내지 않을 거야.」

「….」

「이제 마음을 좀 열고 정국이를 받아주면 안 될까?」


지민은 오래 고민하다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국이 샤워를 마치고 방에 들어왔을 때 지민은 이미 벽을 향해 누운 상태였다. 정국은 익숙하게 바닥에 요를 깔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몸이 으슬으슬한 게 감기에 걸릴 것 같았다.


「야.」


예상치 못한 지민의 부름에 정국은 놀란 토끼 눈이 되어 지민을 쳐다봤다. 지민은 여전히 벽을 향해 누워있었다.


「침대에서 자.」


정국은 그 말을 한 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침대에서 자라고.」


그러다가 이내 알아듣고는 울컥해버렸다. 정국은 눈물이 날 것 같은 기분을 꽉꽉 누르면서 지민의 침대로 다가갔다. 조심스럽게 이불을 들추고 그 안에 누웠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아까 지민을 업고 올 때처럼 말이다. 정국은 정자세로 누워 똘망똘망하게 천장을 쳐다봤다.


「미안해.」


정국은 지민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아… 형이 지금… 미안하다고…. 정국은 겨우겨우 눈물을 참아냈다. 떨리는 가슴과 벅차오르는 감정을 진정시키고 지민을 향해 누웠다.


「형.」


민호에게 뭔가 해주겠다던 지민이 생각났다.


「미안하면요….」


자신에게도 뭔가 하나는 해주지 않을까?


「소원 하나 들어 주세요….」


하나면, 하나면 된다. 바라는 건 한 가지뿐이다.


의외의 반응에 지민은 몸을 휙 돌렸다.


「뭐?」


정국과 눈이 마주쳤다. 정국은 한 없이 순종적이고 맑은 눈으로 지민을 쳐다보았다. 그 눈을 마주하고 있자니 기분이 한도 끝도 없이 이상해졌다. 정국이 입술을 뗐다.


「미워하지 마요.」

「….」

「저 미워하지 마요.」


바라는 건 그것 하나뿐이에요.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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깔라만시 원액을 마시면 으엑? 이게 뭐야 하시듯..

저의 마이너함 원액 백푸로입니다..^ㅁ^ 좀 쓰셨죠..? 요즘 희석해서 탈 생각을 안하네욤! 히히..히힣..

엘스월드는 중단편입니당! 빨리 끝내고 연재 달릴게요 @_@~~!!

@mysteryhomo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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