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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아이 2 : 어른의 고뇌


선예 - maybe







박지민은 나쁜 학생은 아니었다. 여기서 ‘나쁜’이라 함은, 윤기의 기준에서 ‘술을 마시지 않고’, ‘흡연하지 않고’, ‘오토바이를 타지 않는’ 이라는 말로 대체 될 수 있다. 윤기도 윤기 나름대로 파란만장한 학창시절을 보내었고 할 짓 못할 짓 다 해보았다고 자부한다. 윤기가 생각하는 ‘나쁜’ 것은 삥을 뜯거나, 남을 때리거나, 선생님에게 대들거나 하는 타인지향적인 것이 아니었다. 술을 마심으로서, 담배를 태움으로서, 오토바이를 탐으로서 자기 자신을 해하는 행위야 말로 진정으로 나쁜 거라 생각했다. 다행히 박지민은 저런 나쁜 짓들을 하지 않았다. 왜냐면, 그럴 돈이 없었기 때문에.


“이거 수도꼭지 왜이래?”

“날이 추워서 그래요.”

“뭐야.. 11월 초인데 벌써부터 동파야?”

“사실 원래 기분 내킬 때만 나와요.”


지 기분 내킬 때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라니, 윤기는 해도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어 찔끔찔끔 방울을 내보내고 있는 수도꼭지를 야무지게 잠… 그려다 과한 악력 때문에 수도꼭지를 맨손으로 뽑아 버리고 말았다. 끼릭- 소리와 함께 뽑힌 수도꼭지는 녹이 슨 내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지민이 뽑힌 수도꼭지를 보며 못살아.. 라고 중얼거렸다. 어차피 내일쯤 사람을 부를 작정이었는데 괜히 민망스러워진 상황에 윤기는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고쳐줄게.”

“당연하죠.”


지민은 윤기에게 도움을 받는 처지이지만 늘 당당했다. 윤기의 눈에 그런 태도가 고깝거나 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오히려 윤기는 퉁퉁 거리는 지민이 귀여웠다. 다 큰 사내자식이 왜 귀여워 보이는지는 며느리도 모를 일이라 윤기도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윤기는 지민을 도와주기로 결정한 다음부터 물심양면으로 지민에게 원조를 해주었다. 한 달에 꼬박꼬박 붙이는 생활비 외에도, 각종 음식들, 옷, 신발, 가방까지 세세하게 챙겨 주었다. 덕분에 윤기는 학식도 못 먹는 생활을 영위하고 있었지만 마음만은 뿌듯했다. 자신이 이렇게 이타적인 사람이었나 스스로 감탄하며 지민의 아빠를 자처하고 나선 윤기는, 요즘 고등학생들 사이에서 유행한다 하는 것들은 모조리 지민의 품에 안겨주었다. 그렇게 몇 달을 지민을 입히고, 먹이는 데에 힘쓰다보니 엄마가 보내주는 생활비가 동이 났다. 제가 못 먹고, 못 입는 건 상관없는데 당장 지민이 문제였다. 윤기는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어요.”

“……….”

“형.”

“………….”

“형!”

“어?!”


지민에게 문제를 풀라하고 자신은 깜빡 졸았나 보다. 괴고 있던 손바닥에서 벗어난 윤기의 턱이 그대로 앉은뱅이책상과 충돌할 뻔 했다.


“어어? 다 풀었냐?”

“…침 닦아요.”


윤기는 민망한 얼굴로 슈릅 침을 삼켰다. 지민의 표정이 안 좋았다. 공부 가르쳐 준답시고 앉혀 놓고 제가 졸다니 지민이 어이없겠다 싶었다. 윤기는 틈만 나면 감기려는 눈을 부릅뜬 다음 지민이 푼 문제들을 채점했다. 지민은 아예 머리가 없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기초가 부족했다. 시험기간에는 어쩔 수 없이 내신공부를 해야 했지만 시험기간이 아닐 때에는 중학교 문제집으로 이차방정식부터 차근차근 가르쳐 주었다. 지민이 말을 잘 알아듣는 타입이라서 가르치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문제는 매일 밤 9시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는 윤기의 체력이었다.


“졸려요?”

“어, 어 좀…. 형이 어제 교수님을 일을 좀 도와드렸더니….”


이것은 구라였다. 아르바이트하느라, 지민을 만나느라 교수님 얼굴 못 뵌 지가 일주일이 넘어갔다.


“어어, 다 맞았네. 잘했다.”


손을 들어 뒷머리를 쓰다듬어 주려 했는데 지도 남자라고 윤기의 손을 피했다. 윤기는 시계를 보았다 10시였다. 이 달동네를 내려가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면 족히 11시는 넘을 것이다. 윤기는 등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피곤을 외면하면서 슬슬 가방을 챙겼다.


“그래 여기까지 숙제하고.. 근데 너 요즘 숙제 잘 안 한다. 농땡이 치지 마.”


사실이었다. 처음 몇 달은 아주 성실하게 해오더니 요새는 성의 없이 몇 자 끄적거리고 안 해 오는 날도 잦았다. 벌어진 격차를 따라잡으려면 더 분발해도 모자랄 텐데.


“형.”

“응?”

“피곤해 보여요.”


어 나 존나 피곤해. 라고 솔직히 말할 수 없는 노릇이라 윤기는 아니라며 손을 휘휘 저었다. 가방을 다 챙긴 윤기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때였다. 지민의 작은 손이 윤기가 걸친 야상의 끄트머리를 잡아당겼다.


“자고 갈래요?”


윤기는 일어나려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 지민을 내려다보았다. 이게 깜찍한 게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내가?”

“네.”

“여기서?”

“그럼 밖에서 잘래요?”

“아, 아니.”


당황한 윤기는 얼떨결에 철푸덕 주저앉았다. 지민이 순식간에 상을 치우고 윤기 몫의 이부자리를 깔았다. 수도는 아까 고장 나서 못 씻어요. 그냥 자요. 베개까지 꼼꼼히 챙겨주고 불을 끈 지민이 등을 돌려 누웠다. 눈 깜짝할 새 벌어진 일이었다. 윤기는 마른 지민의 어깨를 응시하면서 알딸딸한 기분으로 가방을 벗고, 양말도 벗고, 야상도 벗고, 남방의 단추도 몇 개 푸른 뒤 자리에 누웠다. 아까까지만 해도 졸려서 눈이 다 감겼었는데 지민의 숨소리만 들리는 방안에 가만히 누워있으려니까 자꾸만 정신이 또릿또릿 해지고 잠이 달아났다.


윤기는 몇 시간동안 그 차분한 숨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다… 문득, 정말 문득, 갑자기, 아주 갑자기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아, 내가 얘를 좋아하는 구나.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혔다. 어떻게 그런 중요한 사실을 그 시점에, 그딴 식으로 깨달을 수가 있을까? 윤기는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대머리 되고 싶어서 그래?”

“시발.. 뭐래.”


남준은 윤기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깨소금 맛인지, 열심히 작성하던 레포트도 뒤로하고 윤기에게 바짝 의자를 갖다 댔다.


“왜.. 뭐가 고민인데?”

“됐어. 복붙이나 잘해.”


남준이 해피캠퍼스에서 레포트를 사는 데에 쓴 돈만 이만원이 넘었다. 물론 그건 다 윤기의 핸드폰 소액결제였다. 왜냐하면 남준이 윤기 몫의 레포트까지 편집-제출 해주기로 했기 때문이다. 남준은 윤기의 타박에 다시 무선 마우스를 잡으며 걱정해줘도 지랄이라며 중얼거렸다.


윤기는 다시 깊은 사색에 빠져들었다. 허나 윤기의 사고는 제대로 된 연산을 하지 못했다. 제 마음에 지민라는 인풋을 하면 분명 동정이나 연민 같은 아웃풋이 나와야 되는데, 자꾸 정체모를 솜털 같은 감정이 뿅뿅 쏟아져 나오니 흥부가 기가 막힐 노릇이었다. 한참 동안 종이컵 끝을 씹어 먹던 윤기는 종국엔 빈 종이컵을 우악스럽게 구기면서 남준을 불렀다.


“야 김남준.”

“지금 예민한 작업 중이야. 건들지 마.”


적절하게 한 문장씩 배치해가는 남준의 뒤통수를 후려 깠다. 새꺄 지금 그게 문제가 아냐. 내가 지금 후원을 빙자해서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다고, 친구가 원조교제 비슷한 걸 하고 있단 말이야. 그것도 호모원조교제. 들어는 봤냐? 응?


“내 주변에 좀, 좀 환경이 불우한 친구가 있어. 최근에 알게 된.. 근데 그 친구를 보면 막.. 막 아무 대가도 없이 이것저것 다 퍼주고 싶단 말이야. 이게 뭘까? 걔, 걔가 불쌍해서 그런 거겠지?”

“네가 불쌍하다고 이것저것 퍼줄 애냐?”


사실 측은지심은 지구와 명왕성 사이 거리만큼이나 윤기에게 동떨어져 있는 단어였다. 윤기는 초딩 때 남들 다 산다던 크리스마스 씰 조차 사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봉사활동은 물론 헌혈을 해 본 적도 없다. 심지어 윤기의 생활신조는 “내 코가 석자다.”이다. 괜한 오지랖부리지 말고 자신의 인생이나 똑바로 챙기자는 마음가짐으로 평생을 살아온 것이다. 그런데 이 모든 역사를 부정하고, 윤기는 지민에게 이전의 윤기와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심각하게.. 끌리고 있었다.


남준은 윤기의 질문을 받고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명쾌하게 대답했다.


“죽을 때나 됐나 보지.”

“..뒤질래?”

“아님, 걔가 존나 특별하거나.”


꽝- 하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윤기는 하늘에서 떨어진 돌덩이를 정면으로 맞은 사람처럼 경악한 표정을 한 채 입을 쩍 벌렸다. 특별? 트으으윽별? 그럼 내가 진짜 게, 게...


“그래서 너 요즘 누구 만나는데?”


남준의 질문을 받은 윤기는 어떤 대답도 하지 못하고 후다닥 카페를 나올 수밖에 없었다.











사람은 누구나 특별해 지길 원한다. 특별함에 대한 욕망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래서 관종과 허언증 환자들이 생겨나는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의 선택옵션이아니라 필수 구성요소라는 거다. 누구에게 특별해 지고 누구를 특별히 여긴다는 것, 그건 분명 좋은 의미지만 때때로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한다. 특별하게 생각해선 안 되는 대상을 특별하게 여겼을 때는 더더욱.


“아아아악!”


윤기는 지민이네 집으로 향하는 124개의 계단 중 91번째의 계단에서 좌절해 무너지고 말았다. 윤기는 머릿속은 특별함에 대한 고뇌로 가득 차 있었다. 고아, 고등학생, 불우이웃.. 다른 걸 다 떠나 남자! 절대로 특별해지면 안 되는 대상에게 특별함을 느꼈다. 윤기는 자신이 어째서 지민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꼈나, 그 원인부터 차근차근 짚어보려 노력했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보아도 무릎을 탁 칠만 한 포인트가 없었다. 이 기분은 마치 ‘철학이 현대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란 주제로 레포트 첫 문단을 시작할 때의 감정과 비슷했다. 존나 막막하단 소리다.


윤기는 힘이 없는 손으로 파란대문을 밀었다. 끼이이이익- 이 대문은 열 때마다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는데, 이 소리가 나면 지민은 한 달음에 윤기를 마중 나오곤 했다. 헌데 오늘은 한참이 지나도록 지민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뭐야, 얘가 왜 이렇게 조용해?


윤기는 응차응차 이고 온 시장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작게 지민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짝 열린 방문 사이로 지민의 등이 보였다. 귀와 어깨 사이에 전화기를 끼어놓고 손으로는 열심히 무언가를 받아 적고 있다. 저렇게 사적인 모습의 지민은 오랜만이라 윤기는 쉽게 지민을 부르지 못하고 방문 밖에서 기웃거렸다.


“네, 알았어요. 다시 전화 드릴게요. 네….”


통화가 끝났는지 지민이 들고 있던 수화기를 내려놓고 무언가 받아 적은 메모지를 뚫어져라 보았다. 근래에 볼 수 없었던 수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 윤기는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지민이 화들짝 놀라며 뒤를 돌아봤다.


“무슨 전화야?”

“형 왔어요?”


윤기의 물음에 대답은커녕 지민은 급하게 쪽지를 구겨 주머니 안에 넣었다. 윤기는 미심쩍은 기분이 들었지만 지민에게도 프라이버시라는 것이 있으니까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심각한 일이면 희망나눔회 쪽에서 먼저 연락을 하겠지.


“이거 장 봐온 거예요? 뭐 샀어요?”


지민은 윤기의 몸을 밀어내고 나간 거실에서 커다란 비닐봉지를 뒤적였다. 라면, 쌀, 카레가루, 참치 등등이 쏟아져 나오는 장바구니를 부스럭 대던 지민이 윤기에게 밥 먹었냐고 물었다.


“아니 아직.”

“밥 먼저 먹어요. 오늘 빨리 안 가도 괜찮죠?”


지민은 방 한편에 조악하게 자리 잡고 있는 주방으로 가더니 통통통 소리를 내며 무언가를 열심히 연성했다. 지민이 해주는 밥을 먹는 것이 처음도 아닌데 요리하는 지민의 뒷모습을 보고 있으려니까 윤기의 가슴 한쪽이 뻑적지근해졌다.


“박지민.”

“왜요.”


지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대답했다.


“너 그러고 있으니까 꼭 새색시 같다.”


통. 일정하게 도마를 두드리던 칼이 순간 정지했다. 거실에 침묵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 침묵은 윤기를 당황케 했다. 제가 내뱉는 말에 지민이 기분나빠할 만한 내용이 있었나 급하게 되새겨 보았다.


“그럼 형이 신랑이에요?”


뒤돌아 맹랑하게 되묻는 지민의 질문 덕에 윤기는 턱이 빠질 뻔 했다. 시, 신랑? 윤기의 얼굴이 금방이라도 김을 내뿜을 듯 달아올랐다. 지민이 어떤 생각으로 저보고 신랑이라 칭한 건지는 알 수 없었으나 그 단어가 윤기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당했다. 윤기의 뇌는 이미 그림 같은 집에서 지민과 신혼을 즐기는 민윤기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상상은 지민이 윤기 앞에 밥그릇을 내려놓을 때까지 계속 되었다. 윤기는 넋 나간 표정으로 하얀 고봉밥을 응시했다. 지민이 윤기의 눈앞에 손을 휘휘 흔들어 보였다. 응?


“밥 안 먹어요?”

“어? 어.. 먹지, 먹지..”


윤기는 수저로 잔뜩 퍼 올린 밥을 반찬도 없이 입에 우겨넣었다. 한 숟갈, 두 숟갈… 기계적으로 구강운동을 하는 윤기를 흘끔 쳐다 본 지민이 구운 스팸 한 조각을 윤기의 밥 위에 올려 주었다.


“무슨 사람이 밥만 먹어. 반찬도 좀 먹고 그래요.”


윤기는 밥 위에 올라가 있는 분홍색의 스팸조각을 한번, 뚱한 표정으로 물을 마시는 지민의 얼굴을 한번 보았다. 머리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복잡해졌다. 미친 게 틀림없다. 미치지 않고서야..


“형 근데 수도꼭지 언제 고쳤어요?”


어떻게 얘를 데리고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가 있겠는가?











며칠 동안 윤기는 사춘기 시절에도 해보지 못했던 감정에 대한 고민으로 밤을 지새웠다. 겨울이 가까웠기 때문에 밤은 드럽게도 길었다. 자취방 침대에서 1분에 한번 꼴로 자세를 바꾸며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고 있을 때, 항상 답 대신 떠오르는 것은 그날그날 보았던 지민의 얼굴이었다. 무슨 케이블 방송도 아니건만, 재방 삼방 사방 오방 육방까지.. 지민의 일거수일투족이 틈만 나면 리플레이됐다.


윤기는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지민을 멀리해야 하는지, 예전처럼 대해야 하는지, 가만히 있어야 하는지, 뭐라도 해야 하는 지.. 윤기는 애매모호한 것이라면 질색을 했다. 그래서 철학이나 윤리 같은 과목은 학을 뗐으며 언어영역도 항상 시에서 점수를 다 깎아 먹었다. 지금도 윤기는 이런 오리무중인 감정 말고 명쾌하고 확실한 답을 원했다.


그리고 답은 윤기가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윤기를 놀리듯, 불쑥 튀어나왔다.








윤기가 지민의 집에서 한번 자고 간 이후로도 번번이 지민은 윤기에게 잠자리를 권했다. 윤기는 적당한 구실을 만들어 내며 거절하곤 했지만 몇 번을 그러고 나니 지민이 나름대로 서운해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삐죽이는 입술 모양이라던가, 축 쳐진 눈썹 같은 걸로.


“여기 베개요.”


지민이 윤기의 품으로 베개를 던졌다. 품 안에 떨어지는 베개를 나이스캐치한 윤기는 거의 반 억지로 이부자리 위에 앉아있었다. 물론 졸리고 피곤하긴 했다.


“잘 자요. 형.”


참 쉽게 말하고 이불을 뒤집어쓰는 지민을 보다가 윤기는 요새 들어 쑥쑥 빠지기 시작한 제 머리털을 다시 한 번 쥐어뜯었다. 하지만 이미 자고 가겠다한 걸 도로 무를 수는 없어 윤기는 양말과 겉옷을 벗어놓고 한일자로 누워 천장을 보았다. 역시나 잠이 오지 않았다. 지민의 쌔근쌔근한 숨소리를 들으며 또랑또랑한 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새벽이 다 되어서야 눈을 감은 것 같은데................








팔에 쥐가 났다.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난 적은 몇 번인가 있어도 팔에 쥐가 난 적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라 윤기는 당황하며 잠에서 깨었다. 묵직하니 움직이지 않는 오른팔을 들썩이려 액션을 취했다.


“헙.”


윤기는 제 눈을 의심했다. 지민이었다. 분명 다른 이불을 덮고 잤는데 어떻게 유입된 건지 몰라도 지금 이 순간 지민은 제 팔을 베고 아기처럼 웅크려 자고 있었다. 아슬아슬한 거리에 위치한 지민의 속눈썹을 내려다보는 윤기의 심장은 2심방 2심실이 아니라 20심방 20심실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난리법석을 떨었다. 쿵,쾅,쿵,쾅. 윤기는 그 패닉와중에도 이성적인 사고를 하려 노력했지만 내려다보이는 지민의 뽀얀 쇄골에 결국 K.O.를 선언하고 말았다.


슬금슬금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이? 남자라면 누구나 하나쯤은 가지고 있고 하나 이상 가지고 있다면 큰일 날 그 물건이. 아침 발기 따위가 아니었다. 윤기는 그 정도는 구분할 수 있었다. 목이 늘어난 지민의 하얀 티셔츠는 지민이 뒤척일 때 마다 감질 맛나게 속살을 보여주었고, 사실 그런 건 윤기가 안 보기만 하면 될 일이었지만 윤기는 그 곳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윤기의 물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여차하면 맞닿아 있는 지민의 허벅지를 찌를 기세로.


“우음..”


지민이 윤기의 팔뚝에 크게 머리를 부볐다. 윤기는 온 몸의 솜털이 바짝 서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지민의 움직임에 하얀 티셔츠가 크게 들썩이며 이내 유두를 보였다.


윤기는 더 이상 남자의 본능을 참지 못하고 지민의 티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새벽공기에 차게 식은 윤기의 손 때문에 지민이 작게 웅얼거렸지만 윤기의 행동을 저지 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니었다. 윤기는 뭐에 홀린 사람처럼 지민의 허리를 만지작거렸다. 손끝에 감기는 연한 살의 감촉이 미칠 것 같았다. 아직 어려서 그런지 뼈대도 가늘한 것이.. 윤기는 자신의 숨이 거칠어진다는 자각은 있었지만 멈출 자제력은 없었다.


눈앞이 새까맣게 된 윤기가 기어코 지민의 츄리닝 밴드에 손을 댈 때였다.


“....형?”


지민이 어렵게 눈을 뜨고 있었다. 하도 만지작대니 일어났다 보다. 아니 아침이라서 일어난 건가? 윤기의 머릿속이 어지럽게 엉켜갔다. 윤기는 대고 있던 손을 화들짝해서 거두고 벌떡 일어났다. 윤기의 팔을 베고 있던 지민의 머리가 바닥과 충돌해서 쿵소리를 냈다. 지민은 잠이 다 깬 건지 허겁지겁 짐을 챙기는 윤기를 불렀다. 뭐해요?


“가, 가봐야 해.”

“…새벽 6신데?”


윤기는 지민의 물음을 무시하고 신발도 대충 신는 둥 마는 둥 꿰어 넣고 파란 대문을 나왔다. 쌀쌀한 새벽 공기가 윤기의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맙소사.”


자신는 정말 천하의 십새끼였던 것이다.












지민에게 욕정을 느꼈다는 사실은 윤기에게 무거운 짐이 되었다. 윤기는 지민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죄의식 때문에도 그랬지만…


“돌겠네. 진짜.”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여전히 지민에게 흥분한다는 사실이었다. 그것도 이전보다 더 심하게. 이제는 꿈에도 지민이 나왔다. 내용은 별거 없었다. 주로 벗고 나온다는 게 문제지. 윤기는 왜 자신의 엄마가 자신을 이 따위로 나았을까 하는 패륜적인 고민에 빠졌다가 아니지 내가 문제야 내가 존나 십새끼라서 그래 라는 자책에 빠졌다가 하는 식으로 감정소모에 힘썼다.


이대로 지민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지민에게 자신의 사정을 소상히 설명할 수도 없었다. 그건 자신의 호의를 갖고 했던 행동들마저 순식간에 파렴치한의 밑밥으로 탈바꿈 시킬만한 이야기였다. 윤기는 이유 없이 지민의 집에 가지 않았고, 지민의 전화를 피했다.


자신도 한심하다는 자각은 있었다. 이런 식으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을 거라는 생각도 물론 가지고 있었다.




윤기가 지민의 전화를 딱 12번 쯤 씹었을 때쯤 문자 한통이 왔다.


「형얘기좀해요」


윤기는 고민하다가 지민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민은 한 번에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형? 형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요!

“어?”

-제가 전화 몇 번이나 했는데.. 전화 안 왔어요?

“아, 아니. 근데 왜? 무슨 일 있어?”

-....형이 안 왔잖아요.


한 톤 낮아진 지민의 목소리를 들은 윤기는 할 말을 찾지 못해 아, 응, 저.. 따위를 중얼거렸다. 난처해하는 윤기를 기색을 읽었는지 지민이 윤기 대신 말을 했다.


-무슨 일 있어요?


일이야 많지….


“아니. 그냥 좀...”

-….

“….”

-….

“저기 지민아.”


윤기는 폰을 고쳐 잡으며 내도록 생각하고 있던 얘기를 꺼내기로 결심했다.


“내가 이번에 학교에서 교수님 일을 도와주게 됐어. 그래서 말인데”

-..네.

“이제 너네 집에 못 갈 것 같아.”


지민은 한참 말이 없었다.


“물론 돈은 꼬박꼬박 붙여줄 거야!”

-….

“진짜야! 네 계좌로 매달 보내는 만큼.. 아니 그것보다 더 줄게.”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지민의 숨소리가 불안했다.


윤기는 그제 서야 제 말에 지민이 상처 받을 수도 있다는 자각이 들었다. 윤기는 급하게 지민의 이름을 불렀다. 하지만 이미 전화는 끊어져 있었다. 다시 한 번 지민에게 전화를 걸려 했지만 망설여졌다. 여기서 지민의 기분을 풀어주고, 다시 지민에게 돌아간다면.. 자신의 감정은 걷잡을 수 없어 질 지도 모른다. 아니, 확실히 그럴 것이다. 물론 처음이야 이렇게 미안하고, 안타깝고, 슬프지만.. 결국 아무렇지도 않아 질 거라고


이게 최선의 선택이라고 윤기는 스스로를 달랬다.

@mysteryhomogi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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